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동물 복지 먹거리', 얼마나 더 지불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는 닭을 좁은 공간에 가둬놓고 키워서 살충제를 썼습니다. 앞으로는 원래 닭이 살던 대로 풀어놓고 키우면서 화약약품을 안쓰면 되는 겁니다. 시장에는, 이제 그런 상품이 쏟아질 겁니다"

한 대형마트 직원의 말입니다. 이번 살충제 달걀 사건으로 '동물복지 상품'이 시장에 쏟아질 거라는 겁니다. 실제로 그렇게 될 거라고 치죠. 그렇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크게 2가지인데, 하나는 '비싼 가격'이고, 나머지 하나는 "진짜 정직하게 키운 동물복지 상품이라고 믿을 수 있나"라는 '신뢰도' 문제입니다.

● '동물 복지'의 대원칙…"동물 본래의 습성대로"

동물 복지, 추상적입니다. 그 누구도, 말 못하는 동물들에게 "너희가 생각하는 복지란 무엇이니?“라고 물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물복지를 규정하고 있는 동물보호법에는 이렇게 정해놨습니다.

가축 본래의 습성에 맞춰 고통, 상해로부터 자유롭고, 공포나 스트레스 없이 키우는 농장을 동물복지 농장으로 인증한다는 겁니다.
동물 복지
쉽게 말해 닭이면 닭, 소면 소, 돼지면 돼지 모두 원래 살던 방식에 맞춰 키워보자는 겁니다. 동물의 습성대로 키우는 것이 동물 복지의 핵심입니다. 이 기준에 맞췄다면, 좁은 공간에 가둬 놓고 살충제를 뿌리면서 닭을 키워 '살충제 달걀'을 생산하는 농장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  동물 복지 → 튼튼 → 無화학약품 → 안심먹거리

원래 이 동물복지나 동물복지농장이라는 개념은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에서 도입했다기보다는 사육되는 동물의 권리를 지켜준다는 측면에서 도입됐습니다. 그런데, 동물복지 사육방식을 도입한 농장에서, 동물이 튼튼하게 자라고, 병에 강해지고, 그래서 항생제가 필요 없어지고, 살충제 같은 화학 약품을 쓸 일이 없어지고, 건강한 먹거리를 원하는 소비자에게까지 '긍정적 효과'가 이어지면서 일반 소비자도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동물 복지
강원도 횡성에 있는 한 목장에는 500마리의 소가 있습니다. 이 소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방목됩니다. 어슬렁거리면서 걷고 - 물론 때에 따라서는 아주 빠르게 달리기도 합니다 - 풀을 뜯어먹습니다. 뜯어먹는 풀의 양이 많아 목초지를 3~4개로 구분해서 풀들이 다시 자라날 시간을 줍니다.

 이 소들이 튼튼하게 자라면서 약이나 화학약품 쓸 일이 없어지는 겁니다. 물론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가겠지만, 소들은 확실히 튼튼해진다고 합니다. 목장주인 조태철 대표는 "병에 대한 저항력도 높아지고 그래서 이제 특별하게 살충제든지 항생제든지 이런 거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는 겁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동물 복지
"방목하면 뭐가 좋습니까?"

돌아온 대답은 이렇습니다. "운동량이 늘어나고, 초지에서 풀을 마음대로 뜯어먹고, 번식도 좋아지고, 사료비도 절감되고, 이런 효과 때문에 방목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요즘 살충제 달걀 때문에 화학 약품에 관심이 높은데요"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소를 축사 안에 가둬 키우게 되면 그 안에 각종 세균이든지 바이러스든지 이런 것들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방목을 하게 되면 그런 위험성이 줄어들게 되는 거죠"

● '돼지는 온돌을 좋아한다'…스트레스를 줄여라

이번에는 최신 시설의 돼지 농장에 입니다. 경기도 이천에 있습니다.
동물 복지
돼지는 자라면서 '물어뜯는 욕구'가 있습니다. 이 농장에는 그런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돼지 장난감을 매달아 놨습니다. 가끔 돼지들이 서로를 물어뜯어 상처를 내기도 하는데, 그걸 방지할 수도 있겠죠.
동물 복지
돼지는 또 배 따뜻한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온돌을 만들어 놨습니다. 전부 온돌로 만들면 배설물 청소와 배수가 어려워 방 구석구석마다 '온돌 코너'를 따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동물 복지
이런 시설의 목적은 가축을 스트레스 덜 받고, 건강하게 키우겠다는 겁니다. 이 업체의 배해균 팀장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때문에 항생제나 기본 치료제 같은 것들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건강함을 유지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  문제는 '가격'…가격차이 10% 이내일 경우 '성공'

가격이 궁금했습니다. 물론 좁은 곳에 가둬 놓고, 화학 약품의 세례를 듬뿍 받은 상품보다는 비쌉니다. 하지만 대형마트에 따르면 '동물복지' 쇠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이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동물복지 삼겹살은 100g에 2,830원으로 일반 삼겹살 2,600원에 비해 8.8% 비쌉니다. 가격 차이가 10% 안쪽까지 좁혀진 겁니다. 물론 여전히 물량이 딸려서 전국 모든 매장에 깔지 못하지만, 동물복지 삼겹살 매출은 꾸준히 늘어온 겁니다. 지난 1분기 4억1천만 원에서 2분기에는 4억9천만 원까지 매출이 늘었다고 합니다. 이번 살충제 달걀 사건 이전에도 상승 추세였으니까, 앞으로는 더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가격입니다. 실제로 동물복지 닭고기는 가격이 비싸서 실패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지난 초복에 한 대형마트가, 동물복지 닭고기를 7천8백 원에 내놨습니다. 일반 닭 가격은 5천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고, 지금은 매대에서 철수했습니다. 대형마트 직원은 "닭고기를 구입하는 고객들이 그만큼 비싼 대가를 지불할 의사가 없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동물 복지
이 사건 이후 유통업계에서는 일반 제품과의 가격 차이를 10% 수준까지 좁혀야 상품성이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졌습니다. 예를 들어, 일반 한우 1+ 등급 등심의 경우 100g에 9,400원인데, 동물복지 쇠고기는 100g에 10,300원으로 9.6% 비쌉니다. 워낙 '고가의 고기'이기 때문에 얼마나 매출이 늘어날지는 모르지만, 이마트의 경우, 동물복지 쇠고기를 올해 7월까지 지난해보다 18.3% 더 팔았다고 합니다.

물론 가격 차이 10%가 절대 기준은 아닙니다. 살충제 달걀 이후에는 10%보다 조금 더 차이가 나도 "확실히 안전하다"는 확신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확실히 안전하다"는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동물복지 상품'이 쏟아질텐데…'위반자 엄벌' 필요

이번에 살충제 달걀 사건 때문에 '친환경 상품'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했습니다. "내 아이가 먹으니까" "내가 먹으니까"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 속에서도 기꺼이 추가 비용을 지불했던 소비자들은 이제 뭘 믿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특히, 앞으로는 너도나도 친환경, 유기농, 동물 복지 같은 표현을 내세우면서 상품을 쏟아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근 농식품부의 '헛발질'을 지켜보면서 더 큰 한숨이 나오는 것도 믿을 곳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동물 복지 상품이 늘어나면, 경쟁을 통해 좋은 상품이 늘어나고, 가격도 떨어지는 효과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동물 복지라는 이름으로 과도하게 비싼 가격을 받고 있는 상품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유통업계에서는 앞으로 2~3달 동안, 소비자들이 얼마나 동물복지 상품을 선택하고, 어떤 브랜드를 찾느냐가 향후 시장 판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적표는 어떤 동물복지 브랜드가 "믿을만하다" 혹은 "정직하다"라는 소비자들의 믿음을 얻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안심 먹거리'로 돈 벌어보자는 생각에 무리한 마케팅을 펼치기 보다는 '안전'에 중점을 두고 마케팅을 벌이겠다고 강조하는 것도 한 번 잘못 했다가는 소비자들 마음에서 완전히 멀어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의 선택이 중요해진 겁니다. 

그런데 정작 소비자들이 선택을 하고, 판단을 할 만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농식품부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상품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열린 행정'이 필요합니다. 소비자들을 안심시키는 것, 먹거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모든 정보를 솔직히 공개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일입니다. '더 냉정해지고, 더 차가워진 소비자'가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협조할 때입니다.

물론 범 정부 차원에서, 국민을 속이는 '동물 복지' 상품을 만든 업체에 대해 강력한 법적 처벌과 식품업계 재진입을 막는 강력한 행정 처벌을 병행하는 '채찍'도 함께 마련해야 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