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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전 조율 없었는데…" 평이했던 기자회견 이유는?

[취재파일] "사전 조율 없었는데…" 평이했던 기자회견 이유는?
17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사전 조율이 없었다는 기자회견의 형식이 더 화제가 되는 분위기입니다. 실제로 청와대는 이번 회견을 준비하면서 상당한 모험을 했습니다.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예전에 했던 기자회견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기자 여러 명이 한꺼번에 손을 들거나 추가 질문 기회를 달라고 외치는 약간의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외국(흔히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주로 거론되는 것 같습니다)에서와 같은 생동감 넘치는 질의응답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외국의 노련한 기자들이 맡았다면 더 나았을까요? 한번 짚어보고자 합니다.

● “사전 조율 안 한다”는 靑 진심

‘사전 조율 없는 진짜 기자회견’에 대한 청와대의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준비 과정을 지켜본 입장에서 이 부분만은 정말 확실하게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청와대 입장에서는 형식은 둘째치고 100일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일주일 사이에 광복절 경축식,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보고대회 같은 큰 행사가 줄줄이 예정돼 있는데 여기에 100일 기자회견까지 한다는 게 부담스럽지 않을 리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건 다 몰라도 100일 기자회견만은 반드시 한다는 원칙 하에 준비를 했고 격의 없는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성과를 거둔 걸로 보입니다. 이번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향후 사전 조율을 전제로 한 대통령 기자회견은 불가능할 거란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일종의 이정표를 세운 셈입니다.

당초 청와대는 아예 질의응답의 사회 자체를 기자단에게 맡기고자 했습니다. 한마디로 ‘기자들이 알아서 질문해라’라는 뜻이었습니다. 취지는 좋았지만 대통령에게 질문 기회를 놓고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이해당사자인 기자가 질문자를 지명하는 건 논란의 소지가 컸습니다. 결국 청와대에서 맡기로 했고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는 게 가장 뒷말이 없을 거란 의견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답변에 집중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따라 (사실 이번 기자회견에서 가장 부담이 컸던 쪽은 대통령이었습니다. 질문 내용이 뭐가 나올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청와대의 대언론 창구인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악역’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실제 기자회견이 끝난 뒤 적지 않은 원망을 들어야 했습니다.
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사진=연합뉴스)
● ‘일문일답’(一問一答)의 함정

의도도 좋았고 다 좋았는데 왜 실제 실행해보니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걸까요?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는 일문일답이라는 형식에 있었습니다. 질문자가 묻고 대통령이 답하면 그걸로 해당 문답은 종결됐습니다. 다시 말해 답에 대한 후속이나 추가 질문이 불가능한 형식이었습니다. 통상 기자회견이나 간담회에서는 답변 내용을 토대로 추가 질문이 나오는 게 보통입니다. 긴장감과 생동감 있는 질문은 주로 이런 대목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애초부터 왜 그렇게 진행했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17일 기자회견의 분야는 외교안보, 정치, 경제, 사회, 기타 자유 질문 등 5가지 분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주제가 국정 전반입니다. 기자회견 대상자가 국정 전반을 책임진 대통령이니 질문 범위 역시 현안이란 현안은 모두 들어가는 겁니다. 

여기에 질의응답 시간은 1시간 남짓. 이 짧은 시간 안에 국정 현안 전반을 골고루 물어봐야 하다 보니 분야별로 질문 두 세 개, 많아야 서 너 개가 전부였습니다. 질문 기회 역시 추가 기회까지 다 포함해도 15번에 그쳤습니다. 회견장에 앉아 있던 기자가 217명이 있었으니까 참석자의 채 7%도 안 되는 사람에게만 질문 기회가 주어진 겁니다.

광범위한 주제를 놓고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다 물어보라고 하면 설사 사전 조율을 하지 않더라도 나올 수 있는 질문이란 게 엇비슷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포괄적이고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질문 말입니다. 여기에 질문 못한 사람이 수두룩 빽빽한데 자기 욕심껏 추가 질문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설사 추가 질문을 위해 손을 든다 해도 시켜줄 리도 만무하고요. 적극적인 취재 방식으로 유명한 미국 언론사들을 포함해 외신 기자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 현안별 질의응답이 대안

200명 넘는 기자들과 추가 질문까지 허용하면서 제대로 회견을 하려면 몇 시간도 부족할 수 있습니다. 국정 전반에 대한 기자회견은 질의응답에 상당한 한계가 있는 게 현실입니다.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게 현안별 브리핑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 앞에 직접 브리핑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 실제로 직접 춘추관을 찾아 국무총리 인선안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5월 19일에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발표 때는 직접 브리핑을 한 뒤 예정에 없던 질문까지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특정 현안에 대해 대통령이 질문을 받을 경우 휠씬 내실 있는 질의응답이 될 수 있습니다. 기자들도 한 가지 현안에 집중해 심도 있는 질문을 할 수 있고 또 답변 내용 중 불분명한 내용은 추가적으로 물어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 브리핑 후 그와 같은 기회가 없었다는 건 아쉬운 대목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기자회견 후 취재진과 악수 (사진=연합뉴스)
● 취재 문화 차이도

또 하나, 대통령과 기자의 질의응답 문화도 생각해볼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일정에 풀(pool : 출입기자 전체가 다 같이 동행 취재를 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를 감안해 기자단 중 몇 명이 대표로 취재한 뒤 내용을 공유하는 시스템) 취재를 들어가는 기자들은 해당 행사만 취재하고 빠지는 게 관례화 돼 있습니다. 현장을 취재할 뿐 대통령에게 직접 질문을 하지는 않습니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이기도 하지만 경호 문제로 대통령에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취재 현장에서의 이런 딱딱함은 휠씬 줄었습니다. 대통령이 취재 나온 기자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는가 하면 탈권위를 내세운 대통령답게 꼭 정해진 시간과 장소가 아니라도 선뜻 취재진에게 다가서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기자로서 현안 질문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른 건 아닌 듯 합니다.

미국은 취재 문화에 차이가 있습니다. 백악관 풀 기자들이 행사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관련 질문을 하는 것은 물론 해당 일정과 무관한 현안을 적극적으로 (경우에 따라선 공격적으로) 묻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문화적 차이이지만 생각해볼 대목이기도 합니다.

물론 기자회견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제도만 바꿔서 되는 건 아닙니다. 기자들도 현안에 대해 더 공부하고 보다 공정한 시각을 갖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청와대와 기자 모두의 노력이 한 데 합쳐질 때 진정 국민이 바라는 그런 소통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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