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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쓰촨 취재기 ② : 대지진 현장서 만난 뜻밖의 한류

정성엽 기자 jsy@sbs.co.kr

작성 2017.08.18 14:39 수정 2017.08.18 15:46 조회 재생수5,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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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쓰촨성 원촨(汶川)현은 2008년 대지진으로 8만 명이나 희생된 곳입니다. 원촨현 곳곳엔 아직도 그때의 참상의 흔적이 고스란이 남아 있습니다. 현(縣) 도로를 지나치다 보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산 사이로 바위더미가 흘러내린 흔적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당시의 참상을 빨리 잊으려고 최대한 신속하게 원촨현 복구 프로젝트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특히 원촨 현성(縣城)을, 우리로 따지면 읍(邑) 정도로 이해하면 되는 지역인데, 고층 아파트와 여느 도심 못지 않은 현대 시설로 복구해 놨습니다. 때문에 원촨 현성에서의 생활은 여유로운 일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원촨현 부근에선 여전히 강한 지진이 발생하고 있고, 원촨 현성 바로 앞은 여전히 위압적인 돌산이 버티고 있지만 말입니다.

주자이거우 지진 취재 출장시에 기사 작성을 위해 인터넷이 잘 터지는 곳이 필요한데, 내륙 마오(茂)현을 넘어 송판(松潘)현 가까이 올라갔다 다시 원촨현으로 내려왔던 날입니다. 어렵사리 기사는 보냈고, 늦은 저녁이라도 챙겨 먹어볼까 식당을 찾고 있는데, 어디선가 한국말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에이, 잘못 들었겠지, 여기가 어딘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분명 한국 노랫말이 들렸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상가 건물 앞 공터에서 원촨 아이들이 한국 아이돌 가수 노래를 틀어 놓고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신기하고도 반가운 마음에 얼른 그들에게 다가가서 한국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랬더니 중국인 소녀 4명이 한꺼번에 나를 둘러쌓고 환호(?)를 보내는 게 아니겠습니까? "정말 한국인이냐? 태어나서 한국 사람 처음 본다. 한국말 한번 해봐라" 소녀들은 마치 동물원에서 신기한 동물을 본 것처럼 들떠 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환대(?)에 적잖이 당황한 내가 "지금 춤을 추고 있는 곡이 한국 노래 맞느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엑소를 모르느냐?""고 놀랍다는 듯 반문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소녀들 중 2명은 엑소 팬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고, 나머지 소녀 2명은 방탄소년단 팬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한국 아이돌의 여러 노래를 보여줬습니다. "K-pop 실력 한번 볼 수 있을까?"라고 물었더니, 두 명의 소녀가 역시 한국 아이돌 그룹인 블랙핑크의 노래에 맞춰 춤을 췄습니다.



단지 인터넷으로만 춤을 익혔다는 소녀들의 춤실력은 보시는 것처럼 수준급입니다. 엑소 팬이라고 밝힌 두 소녀는 14살 장슈잉과 절친 천쉬였습니다. 장슈잉과 천쉬는 시간이 날 때마다 상가 공터에 나와 한국 음악을 틀어놓고 한국 아이돌 춤을 연습한다고 합니다.

K-pop은 자신들 뿐 아니라 원촨현에서도 굉장히 인기가 좋다고 하네요. 수많은 중국 음악과 외국 음악 중에 왜 굳이 K-pop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두 소녀는 K-pop엔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고 합니다. 그 또래만이 느낄 수 있는 멋같은 그런 거.. 두 소녀는 장례 희망도 K-pop과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원촨, 마오, 주자이거우현 일대는 중국 소수 민족인 창(羌)족과 티베트(藏)족이 많이 사는 지역입니다. 장슈잉과 천쉬도 한족이 아니라 중국 전역에 불과 30만 명 정도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창족입니다. 원촨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계속 살아왔고, 가까운 대도시인 청두(成都)외엔 다른 지역이나 외국은 나가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2008년 원촨 대지진을 너무 어려서 또렷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땐 그때 일이고 지금은 현재의 삶과 미래의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좌) 장슈잉, (우) 천쉬원촨현에 한국 사람은 커녕 조선족조차 본 적이 없다는 장슈잉과 천쉬에게 한국은 매우 특별한 곳이 틀림없나 봅니다. "여행을 베이징으로 갈래? 서울로 갈래?"라고 물었더니, 둘 다 지체없이 '서울'이라고 답했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돌 오빠들 때문이겠죠? 즉석에서 위챗 친구를 맺고 아쉬운 만남을 마무리했는데 베이징으로 돌아와보니 이들에게서 위챗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한국 라면을 어떻게 끓여야 맛있게 먹을 수 있냐"고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만큼 이들은 k-pop은 물론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굉장히 높았습니다. 다만 이들도 중국인인지라 한국인에게 예외없이 물어보는 질문을 하더군요. "사드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ㅎㅎ 한류 만큼이나 사드 영향력도 실감한 현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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