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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주의 친절한 경제] 'A4 닭장'에서 친환경 달걀?…밀집 사육이 부른 비극

<앵커>

친절한 경제, 오늘(17일)은 권애리 기자와 살충제 달걀에 관련한 얘기 좀 더 깊게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권 기자,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사실 이번 사건 계속 전해드리고 있습니다만, 제일 그런 게 아이들 있는 집이라든가 이런 데서는 조금 비싸더라도 괜찮겠지 하고 친환경 달걀을 사서 먹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서 지금 살충제가 나왔다는 게 사실 더 충격적이에요.

<기자>

네, 사실 친환경 달걀이라고 하면 절대 살충제가 나와서는 안 됩니다. 이런 먹을거리로 인한 문제가 나올 때마다 얘기가 많이 나오는, "나오긴 했지만, 기준치를 넘겼다. 아니다." 이런 논쟁 자체가 친환경 달걀에서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지금까지 문제의 달걀이 나와서 유통이 금지된 농장이 모두 6곳인데요, 사실 살충제 자체가 검출된 곳은 모두 7곳이었습니다. 그중에 6곳이 친환경 농장이었고요.

그런데 계속 유통이 허가된 한 곳이 있습니다. 전북 순창의 한 친환경 농장의 달걀인데요, 여기는 달걀에서 비펜트린이라는 살충제가 나오긴 했지만, 정해진 기준치에 미달했기 때문에 유통이 돼도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농장은 처음부터 친환경 인증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냥 아무 인증 없는 달걀로 팔아야 되는 거죠.

사실 이번에 드러난 문제들이 굉장히 많지만, 이 친환경 인증을 믿을 수 없게 됐다는 점이 큰 문제입니다.

농축산물 농가의 친환경 인증은 1년에 한 번씩 하는데요, 정부와 민간업체들이 인증을 같이하다가, 지난 6월부터 이 인증작업은 민간 업체들만 하고요. 정부는 관리·감독을 한다고 돼 있습니다.

정부와 함께 인증작업을 하던 몇 년 전에도 부실인증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문제가 더 대대적으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겠죠.

<앵커>

그러니까요. 친환경 인증을 일반 국민분들은 정부가 해주는 줄 알고 정말 철석같이 믿고 있었을 텐데, 굉장히 황당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농장들이 친환경적으로 운영하기가 어려운 구조도 있다고요?

<기자>

네, 일단 달걀 포장에 친환경 마크들을 보시고 사시잖아요. 초록색인데, 그 마크 안을 자세히 보면 내용이 굉장히 세분화 돼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인증이 '무항생제'라고 쓰여있는 인증입니다. 이 기준을 충족한다는 달걀 농장은 전국에 765곳, 전체의 53%나 됩니다.

이 무항생제 인증받은 곳 중에서 이번에 문제의 친환경 농장들이 나왔습니다. 이 무항생제 인증이 친환경 인증 중에 가장 일반적일 수밖에 없는 게 일정 기간 이상 항생제만 쓰지 않으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닭 한 마리당 A4용지만 한 데서 꼼짝달싹 못 하고 자라는, 이번 사태가 터지면서 지적이 많이 나온 케이지형 사육, 밀집 사육이 가능합니다.

이런 사육방식이 여러 가지로 문제를 만들지만, 살충제를 안 쓰고 닭 진드기 번식을 막기도 굉장히 힘든 구조입니다.

살충제를 닭에 바로 쓰면 안 된다는 걸 잘 지키시는 친환경 농가들도 많이 있겠지만, 이런 문제가 있다 보니, 좀 쓰면 안 될까 하다가 이번에 적발된 친환경 농가들처럼 될 수가 있다는 거죠.

<앵커>

유럽에서는 지금 저런 식의 케이지 사육을 못 하게 하고 있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2012년부터 전면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OECD도 지난 6월에 낸 보고서가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자꾸 AI나 구제역이 발생하는 큰 원인으로 이 밀집 사육이 꼽혔었습니다.

이런 환경이 아닌 농장들도 우리나라에 있긴 합니다. 그 녹색 마크 안에 '동물복지' 또는 '유기농'이라고 쓰여있는 곳들입니다.

이런 곳들은 닭 9마리가 최소한 1㎡ 이상의 공간에서 움직이면서, 가능한 원래 본능대로 살 수 있게 해주는 곳들입니다.

동물복지 마크는 수의사의 자문을 받으면, 친환경 마크 없는 농장처럼 살충제를 사용할 수 있고요. 유기농, 유기 축산은 그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국내 1천450여 곳 달걀 농장 중에서 동물복지 농장은 93곳, 유기농은 15곳밖에 안 됩니다.

사육량도 많이 줄고 비용 문제가 있기도 하겠지만, 현재 이런 동물복지 달걀들 중에는 밀집 사육을 하는 브랜드 달걀과 가격이 비슷한 곳들도 있습니다.

이번 살충제 달걀 사태를 기회로 삼아서, 축산환경 개선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논의해 볼 때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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