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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신광수의 친필 작별 시 발견…"머리를 들어보니 섭섭하더라"

권애리 기자 ailee17@sbs.co.kr

작성 2017.08.13 15:14 조회 재생수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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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18세기 신광수의 친필 작별 시 발견…"머리를 들어보니 섭섭하더라"
사실적인 필치의 시문으로 유명했던 18세기 선비 석북 신광수가 영조 40년인 1764년 법정 정범조와 헤어질 때 지은 송별시가 발견됐습니다.

강신애 한성대 교수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고서점에서 찾은 신광수의 '학가증법정동귀'를 분석한 논문이 한국서지학회의 학술지 서지학연구에 실렸습니다.

강 교수가 발굴한 학가증법정동귀는 가로 37.5㎝, 세로 26㎝ 크기의 종이에 쓰여있으며, 신광수의 문집인 '석북집' 8권에 실렸으나 내용이 일부 다르고, 석북의 친필이 담겨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신광수는 영조 27년인 1750년에 진사에 급제했으나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고, 영릉참봉을 시작으로 연천현감, 영월부사 등을 지내며 높은 관직에 오르지 못했지만, 조선 후기 남인 시단의 대표적 시인으로 꼽힌 문인입니다.

채제공은 석북에 대해 "특히 시에 뛰어나 시격이 높은 것은 당나라의 시와 같았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학가증법정동귀는 "신선이 탄 배가 내일 출발한다고 하니 병 때문에 나아가 이별하지 못하고 머리를 들어보니 너무 섭섭하더라." 같은 구절을 담고 있습니다.

석북은 정범조를 '학' 같은 인물로 비유하면서, 한양의 객이 돼 경쟁하며 살던 정범조가 이를 부끄럽게 여겨 양 날개를 퍼덕이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석북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새장에 갇혀 머리가 허옇게 된 것이 가련했고, 정범조가 가는 곳을 바라보며 따라갈 수 없었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강 교수는 학가증법정동귀의 내용뿐만 아니라 서체도 주목할 만하다며, 신광수의 글씨가 중국의 명필인 왕희지의 필법에 가깝다고 평가했습니다.

강 교수는 또, "석북은 남인 지배층은 물론이고 양인과 천민, 노비, 기생과도 어울리며 시를 지어줬다"며 "학가증법정동귀는 그의 글씨체를 잘 보여주는 진필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진=강신애 교수 제공/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