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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규슈 올레 분투기(奮鬪記) 2 - 가라쓰(唐津) 코스 ②

[라이프] 규슈 올레 분투기(奮鬪記) 2 - 가라쓰(唐津) 코스 ②
▶ [라이프] 규슈 올레 분투기(奮鬪記) 2 - 가라쓰(唐津) 코스 ①


규슈올레 가라쓰 코스 28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인생의 방향을 작가로 전환했던 코엘료는, 어디론가 떠나는 이에게 '목적지를 정하라. 미련 없이 떠나라. 다른 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교감하라'고 충고한다.

문득, 길 가에 피어 있는 이름조차 생소한 꽃들에게도 마음이 가고,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희미한 향기라도 맡고 싶어지는 짧은 휴지(休止)의 순간들이 어쩌면 걷는 이를 행복하게 한다는 생각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다른 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교감하라'는 코엘료의 충고가 아니라도, 세상은 누군가와 더불어 존재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규슈올레 가라쓰 코스 29
규슈올레 가라쓰 코스 29-1
규슈올레를 걷다보면, 가끔 논밭길을 에둘러 철조망과 전기 배선들이 쳐져 있음을 본다. 아무래도 짐승들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그러한 장치들이 품고 있는 위험은, '가시철조망 주의'라는 한글 경고문으로 지나는 이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농장주는 당연한 의무인 양 도보 여행자를 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길은 어디론가 뻗어 있고, 사람들은 그 길 위에 펼쳐놓은 소소한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걷는다.
규슈올레 가라쓰 코스 30
사르트르의 표현을 빌리면, '존재한다는 것이 걷는 것이다. 인간은 걸을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고 한다. 아마도 걸을 수 없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마저도 사라진다는 뜻일 게다. 새삼 살아 있음을, 세상 속에 존재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오늘도 맹렬히 걸어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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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벗어나자,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은 전형적인 시골 마을로, 바람 소리만이 골목길을 서성댈 뿐, 어디에도 기척을 느낄 수가 없다. 우리 역시 덩달아 살금살금…조심스러워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띄는 어느 집의 벽에 걸려 있는 한글 안내문.

삐뚤빼뚤 쓴 글씨지만, 글자 하나하나에 정성이 느껴진다. 내용은 올레꾼에게 건네는 위로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가마를 방문해 달라는 초청장이다. 가마의 이름은 <히나타(炎向) 가마(窯)>다.

그러고 보니, 규슈올레 소개 책자에서 본 기억이 난다. 나고야성터를 벗어나면 평화로운 마을길로 접어들고, 그 마을 안에는 일본의 3대 다기(茶器)로 유명한, 가라쓰 도자기를 생산하는 '히나타요(炎向窯)'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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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입구에는 우는 건지, 하품을 하고 있는 건지, 정체불명의 개구리 세 마리가 호객을 하고 있다. 귀여운 것들…. 팔을 잡아끌진 않았지만, 못이기는 척 끌려 들어가 본다.  

밖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놈들이 태어난 가마가 있다. 다기(茶器)인지 아니면 사발인지 모르나, 여러 개의 그릇들이 빚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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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인상 좋은 부부가 그들의 작품을 빚고, 한편으론 지나는 이들에게 그들의 작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대충 둘러보고 가려는데, 부부가 합창이라도 하듯 무슨 말인가를 한다. 당연히 못 알아듣는다. 언어의 차이로 인한 소통불가의 그 막막함이라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눈치만큼은 9단 아래 8단 정도는 된다는 사실이다. 손으로 위층을 가리키며, 갤…뭐라고 한다. 아! 갤러리? 주인장 부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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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에는 소박한 작품들이 손님을 맞는다. 여주인장께서 이런 저런 소개를 하신다. 그냥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도 같다. 그래서 알고 있는 몇 개의 일본어 단어 중 하나인 '스고이'(すごい, 굉장하다, 훌륭하다는 뜻을 가진 일본말)를 후렴구로 덧붙인다. 여주인장께서 흐뭇해하신다.

벽 한 귀퉁이에 '30% 세일'이라는 한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리 저리 둘러보고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고, 빈손으로 돌아 섰다. 그런데, 기껏 들어 온 손님이 아무 일 없듯이 나가면, 주인 입장에서는 가든지 말든지 나름 서운한 표시로 무관심해야 당연한데, 이 분들은 다르다. 굳이 입구까지 따라 나와서는 밝은 목소리로 잘 가라고(느낌상 그런 말이었던 같다)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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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잔(주인장이 비루…뭐라 해서 그런 줄 안다.) 두 개를 샀다. 그리고 여주인장께서 직접 만들었다는 개구리도 한 마리 샀다. 훌륭하다고 인사를 하니, 수줍어하신다. 가격도 착했다.

마을을 벗어날 즈음, 소풍을 다녀오는 아이들인지 아이들이 줄지어 재잘거리며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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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근처에 <하토미사키 소년 자연의 집>이라는, 우리로 치면 청소년 연수원이 있었다. 그 곳에서 연수중인 학생들이다.

그 소년, 소녀들이 우리를 보고, 끊임없이 '곤니찌와(こんにちは, 낮에 하는 인사말)'를 외친다. 우리도 길을 걸으며 그들과의 계속 되는 조우에, 곤니찌와를 수십 번은 복창해야만 했다. 

아이들이 건네는 인사가 반갑고, 즐거웠다. 시골 아이들 특유의 소박함과 순수함, 맑은 밝음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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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사람은 찾아오지만, 좋은 벗은 내가 찾아가서 사귀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길도, 세상 속의 그 무엇이든, 좋은 것은 내가 먼저 손 내밀고, 찾아가고, 안아야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얻듯이, 실천하는 사람만이 훌륭한 사람도 길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올레길이든, 인생길이든 '참여'를 위한 ‘작은 용기’가 필요한 이유다. 문득 먼저 인사를 건네는 행위마저도 배려이자 용기임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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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올레길의 훌륭한 동반자였던 지팡이가 어느 순간 짐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땅을 딛고 서 있어야 할 지팡이가 어깨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지팡이를 버릴 수도 없다. 기껏 걷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지팡이를 아무 곳에나 버린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지팡이는 올레길 끝까지 우리와 동행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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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길로 들어서자, 다행스럽게도 도로 표지판에도 한글로 표기가 되어 있다. 이곳을 찾아오는 우리나라 올레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리라.

산등성이의 길 위에 서자, 산 너머에 또 산이 있는 것은 우리네 길에서건 규슈의 길에서건 어디서나 마찬가지인 풍경이다. 별반 다를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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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미사키 캠핑장을 지나자, 여기부터는 해안길이다. 소개 책자가 말하는 대로 제주 올레의 그 해안길과 닮아 있다. 내 일천한 경험으로는, 섭지코지를 에둘러 갈 때의 그 길과 닮아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걷고, 또 걷는다. 달리 할 일도 없다. 다만, 어서 목적지가 눈앞에 나타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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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편으로는 목적지가 가까워져 온다는 사실에 작은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목적지는 도보여행의 일차적 완성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을 확인하는 장소도 되는지라, 어쩌면 이율배반의 대상이 바로 목적지라는 곳의 실체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다리는 무겁다. 길 위에 올레 표식이 가야할 곳을 가리키고 있다.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인지라, 다시금 다리에 힘을 주고 걸음을 떼어놓는다.

하토미사키(波戶岬)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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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미사키곶은 일본 규슈의 겐카이나다(현해탄)에 면한 해안과 섬들을 구역으로 하는 겐카이국정공원(玄海國定公園)의 주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눈앞에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다. 나고성터에서 바라보던 바다와는 다른 바다가 거기에 있었다. 도보여행자의 입장에서보자면, 막다른 곳이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 그래서 바다로 나아가고자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꿈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문득 섬나라 사람들에게 바다 저 너머에 대한 동경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대륙의 관문인 한반도를 그토록 오래, 또 끊임없이 괴롭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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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미사키곶(波戶岬)이란 이름의 의미는 '파도의 집'이다. 바다를 건너온 파도가 머무르며 쉬는 곳이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육지는 쉽사리 파도에게 곁을 내주지 않으니 파도는 쉼 없이 육지를 두드리고 또 부딪혀, 육지의 가장자리에 예술작품 같은 주상절리를 만들어 놓았다. 땅이 파도를 외면한 덕분에 자연은 주상절리를 얻은 것이다. 

해안선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에는 단체 관광을 온 학생들의 재잘거림과 맑은 웃음들이 번져나고,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파도는 이따금씩 철썩댄다. 줄지어 늘어선 해송의 사열을 받으며 걷는 길 위에는 가야 할 방향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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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해질녘 석양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어도 좋을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광대한 바다와 그 바다 내음을 머금은 싱그러운 바람이 있어, 걷는 이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또 한편으로는 훌륭한 풍경은 걷는 이를 주저앉고 싶은 욕망에 부채질을 하기도 한다. 머무르면서 바라보고픈 그 욕망 말이다. 딱히 바쁠 것은 없지만, 그래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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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숲길을 지나면 길은 종점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언론인이었던, 티찌아노 테르짜니는 그의 책 <네 멋대로 살아라>에서 "살기 위해 노력해야 돼. 추억은, 과거는…나이든 자들의 몫"이라고 말한다. 

새삼 깨닫는다. 지금 이 순간, 걷는 일이야말로 살기 위한 노력 중 최고라는 사실을…땀 흘리며 걷는 육체야 말로 살아있다는 증거이면서, 오늘을 딛고 내일로 나아가는 실체적 노력이기도 한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걷는다는 실천적인 행위 속에서 나는 오롯이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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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에~'를 찾으면 그건 영락없는 노인네라고 한다. 실제 나이와 상관없이, 미래가 아닌 과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바로 나이 든 사람들의 특징이 아니던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우기기만 하면 되는가?

불현듯, '꼰대'가 아닌 '어른'이 되라는 채현국 선생의 말씀이 떠오른다. 꼰대는 과거와 권위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고, 어른은 미래와 배려, 참여를 통해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라 했던 것 같다.

나는 어느 편에 속하는지, 또 어느 편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정답은 분명한데, 정답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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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하토미사키 해수욕장이 보인다. 곱디고운 아치형 백사장이 아득하다. 이곳은 연인의 성지(戀人の聖地)로도 유명한 곳이다. 바로 일본의 3대 비련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사요히메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는 멸망하기 직전 일본에 원군을 요청한다. 이때 사요히메의 연인도 원군으로 떠나가게 되는데, 연인을 전쟁터로 떠나보낸 여인은 이별의 슬픔을 안고, 그리움에 사무치다 끝내 망부석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요부코의 사요히메 신사에는 그녀의 망부석이 남아있다고 한다.

어느 곳에나 있을 법한, 또 들어본 전설이기는 하나, 사요히메의 전설은 하토미사키 지역을 사랑의 성지로 만든 일등공신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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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가라쓰 코스의 종점이다. 아직은 조금 더 걸을 수 있는 체력이 남아 있음이 차라리 아쉬움이 된다.

하토미사키 해수욕장에는 제주 서귀포시가 가라쓰시(市)와 자매결연 20주년을 기념하여 2014년에 기증한 돌하르방이 있다. 마치 피날레 지점의 아치 같은 느낌을 준다.
규슈올레 가라쓰 코스 50
규슈올레 가라쓰 코스 50-1
해변가를 따라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외면하랴. 땀 냄새를 풍기며 들어선 포장마차에는 소라와 덜 말린 오징어 구이와 맥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라 4개가 1인분이고, 500엔이다. 오징어(또는 한치)는 한 마리에 600엔. 맛은 우리나라 여느 바닷가에서 먹던 그 맛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대가 상상하는 딱 그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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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쓰 코스를 평하자면, 걷기에 무난했고, 산과 들, 바다가 어우러져 있어 대체적으로 난이도 중하급의 길이었다는 생각이다. 풍광도, 길도 좋았다. 11km가 조금 넘는 여정으로, 4~5시간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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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슈 올레 가라쓰 코스 정보 안내

- 가라쓰역 관광안내소 : TEL 0955-72-4963
- 가라쓰 관광 협회 규슈 출장소 : TEL 0955-51-1052
- 나고야성 관광 안내소 : TEL 0955-82-5774
※ 가라쓰 관광협회 : http://www.karatsu-kankou.jp/
※ 큐슈 관광추진기구 : http://www.welcomekyushu.jp/kyushuolle/?mode=detail&id=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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