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
그것은 곧 긴 여행을 시도하는 것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서한집>
그것은 곧 긴 여행을 시도하는 것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서한집>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그의 책, <월든>에서, "어떤 활동이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지를 생각하지 말고, 그 활동이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함에 있어, 그 결과가 가져올 이해득실을 따지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인간관계에서도 그러하다. 나한테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 그런데 그 도움이란 게 현실적인 이익과 관련되어 있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현실적인 이익은 대체로 성공과 돈이라는 현실적 목표와 관련되어 있고, 그 성공과 돈은 종교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 자체로 물신(物神), 신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물질적 부와 성공에의 달음박질에는 브레이크조차 없었으니, 그 달음박질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는 애당초 생각할 이유도, 틈도 없었을 것이다. 오로지 성공과 부만이 살아야 할 유일한 존재이유였고, 또 그렇게 이를 앙다물고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중 운 좋은 소수는 그토록 원하던 성공과 부를 얻는다. 하지만 정상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건, 오히려 공허하고 외로운 느낌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한 마디로 '정상에서의 외로움'이다.
하물며 성공과 돈을 좇아 달려왔지만, 그것을 얻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래서 많은 우리는 '외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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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책에서, 1년에 6주 정도만 일하면, 생계비를 충당할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 외의 많은 시간들은 걷거나 산책을 하거나, 더러는 공부하며 오롯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사용했던 것이다.
물론, 고도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겐 꿈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대량 소비를 통해서 스스로 잘(?) 살고 있음을 증명하고, 값비싼 물건의 소유 여부에 따라 행복의 크기가 달라지는 이 사회에서는 얼토당토않은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소로 역시 '나는 결코 누구도 내 생활방식을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세상의 사람들이 제작기 다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로가 <월든>에서 보여준 삶의 모습들은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니, 길 위에 있는 우리는 벌써 반은 걸은 셈이니, 크게 위안이 된다.
가라쓰(唐津)는 대륙과의 요충지로 예부터 바닷길을 이용해 사람과 물자, 문화교류가 활발했던 항구도시다. 지난번 걸은 야메코스와는 달리, 제주를 꼭 닮은 바다를 에둘러 해안 올레가 이어진다니, 은근 기대가 된다.
919년에 창건된 다자이후 천만궁 신사는 일본의 유명한 학자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眞)를 학문의 신으로 모시는 있는 신사(神社)다. 그런 이유로 매년 합격이나 학업 성취를 기원하는 참배객이 많이 모인다고 한다.
그리고 규슈올레의 출발점과 종점에는 대체로 대나무를 깎아 만든 수십 개의 지팡이가 통에 담겨져 있다. 걷는 이들을 위한 배려인지라, 새삼 고맙고 마음이 따스해진다.
지난밤, 객지에서의 여유로움이 준 선물(?)이었던 숙취마저도 숲 안에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넓은 분지가 나타난다. '호리 히데하루 진영터(堀秀治陣跡)'다.
가라쓰가 한자로는 당진(唐津)인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당진(唐津)시와 비슷한 이유다. 당(唐)나라를 향해있는 진(津), 즉 나루라는 뜻으로, 대륙으로 나아가는 관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곳 가라쓰가 대륙으로 나아가는 전진기지였던 것이다.
그들은 이렇듯 오랫동안 임진왜란을 준비했고, 조선은 이를 알지 못하였거나, 또는 당파의 작은 이해에 갈려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일본통일 쟁패의 마지막 승리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이곳에서 진영을 꾸리고 조선 침략의 첨병 역할을 했던 것이다. 물론 당시 권력자였던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직접 가라쓰의 나고야성(城)에 머물면서 전국에서 몰려온 다이묘들을 지휘 통솔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호리 히데하루 진영터는 유일하게 전체 터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다실(茶室)과 일본의 전통 가면극인 노(能)무대 터까지 있다. 오랜 기간 동안 머물면서 전쟁을 준비했다는 방증이다.
올레의 빨강 파랑 리본이 가는 길을 무심히 알려 준다. 지시하는 대로만 가라고 재촉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사실 올레 길을 걷다보면 이 올레 리본이 무척 반갑고, 또 그만큼 절대적인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걷다가 올레 리본이 나타날 즈음인데도 보이지 않으면 이내 불안, 초조가 밀려온다. 가고 있는 방향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를 확인할 방도는 리본과 이정표뿐이니, 그들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한 것이다.
이쪽으로 가라면 이쪽이고, 저쪽으로 가라면 저쪽이다. 덤비거나 거역은 불가하다.
새로이 길을 내겠다고 덤비는 사람이야 뭘 못하겠느냐 마는, 기왕이면 리본이 가라는 대로 가는 게 신상에 좋다. 여러 번 이산 저산을 헤매본 결과이니 의심하지 마시라~
규슈 올레 길에서는 논이나 밭에서 농사일을 하는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을마저도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울타리를 대신하는 꽃들만이 지나는 이를 배웅한다.
마을을 벗어나자, 모내기를 끝낸 논들이 보인다.
짧은 논길을 지나자, 이내 또 산길로 접어든다. 길 지척에는 유자가 저 홀로 익어 간다. 더러는 수확하는 이 조차 없는지 땅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또 더러는 무거운 몸을 잔가지에 의지해 애처롭게 매달려 있다.
그런데, 이렇듯 훌륭한 길이건만, 걷는 사람들은 우리 밖에 없다. 규슈 올레 2일차이지만 길 위에서 엇갈려가거나 잠시나마 동행한 이가 한 명도 없다.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어설프게나마 인사를 나누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우연한 만남은 애초부터 기대난망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규슈올레 길 위에서만큼은 한국어 이정표가 아주 당연하다.
길이 깊다. 오랫동안 이 길을 지키고 있었을 낙엽들이 그 삶의 연륜만큼 깊게 쌓여 있다. 가끔은 스스로가 길이었음을 잊어버릴 수도 있을 만큼 행인의 흔적이 드물다. 떨어진 낙엽들은 여러 해 동안 그 자리에 반복적으로 쌓여 길은 스폰지를 품은 양 푹신하고 또 포근하다.
겨우 몇 발짝도 걷지 않은 이가 건방지게 내뱉을 말은 아니나, 충분히 공감이 간다. 몸 전체를 던지지는 못할지라도, 게으런 몸을 움직여, 그 몸을 이용해 스스로를 이동시킨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의미는 남다르기 때문이다.
엄살을 떨기는 했지만, 내리꽂히는 햇빛을 받으며 걷는 걸음에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고, 또 특별한 성취감을 얻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더러 흐르는 땀방울이 마치 훈장이라도 되는 양 반갑기도 한 것이다. 걸어보면 안다.
그나마 갈 곳이 있고, 그 곳을 향해 나아가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살아가는 모습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어설픈 개똥철학도 읊게 된다. 그런 이유로, 어디론가 가고 있는 내 자신과 만나고 있다는 사실에, 가끔은 스스로를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내 스스로는, 타자(他者)로서의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또 그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해보아야 할 숙제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나고야 성터(名護屋城跡)가 보인다.
봄의 나고야성은 벚꽃 천지일 듯하다. 성을 에둘러 벚나무들이 또 다른 성벽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 서면 이키섬(대마도와 규슈 섬 중간에 있는 작은 섬), 대마도, 현해탄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새삼 대륙 정벌의 꿈을 안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굳이 이곳에다 전초기지를 마련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500년을 넘게 견뎌 낸 성벽 위로는 코스모스 꽃을 닮은 국화의 일종인 금계국이 한 가득이다. 아마도 이 성벽에는 저 노란 금계국이 아니라도, 수많은 종류의 풀과 꽃들이 번갈아 가며 피고지고 했으리라.
성터를 에둘러 있는 길이 외려 고즈넉하다.
- 가라쓰 관광 협회 : TEL. 0955-74-3355
- 나고야성 관광 안내소 : TEL. 0955-82-5774
※ 가라쓰 관광 협회 : http://www.karatsu-kankou.jp/
※ 큐슈관광추진기구 : http://www.welcomekyushu.jp/kyushuolle/?mode=detail&id=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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