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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규슈 올레 분투기(奮鬪記) 2 - 가라쓰(唐津) 코스 ①

[라이프] 규슈 올레 분투기(奮鬪記) 2 - 가라쓰(唐津) 코스 ①
"진정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
그것은 곧 긴 여행을 시도하는 것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서한집>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그의 책, <월든>에서, "어떤 활동이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지를 생각하지 말고, 그 활동이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함에 있어, 그 결과가 가져올 이해득실을 따지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인간관계에서도 그러하다. 나한테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 그런데 그 도움이란 게 현실적인 이익과 관련되어 있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현실적인 이익은 대체로 성공과 돈이라는 현실적 목표와 관련되어 있고, 그 성공과 돈은 종교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 자체로 물신(物神), 신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규슈올레 가라쓰코스 1-1
그렇게 성공과 돈이라는 현실적인 이익만을 좇으며 살아온 날들.

물질적 부와 성공에의 달음박질에는 브레이크조차 없었으니, 그 달음박질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는 애당초 생각할 이유도, 틈도 없었을 것이다. 오로지 성공과 부만이 살아야 할 유일한 존재이유였고, 또 그렇게 이를 앙다물고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중 운 좋은 소수는 그토록 원하던 성공과 부를 얻는다. 하지만 정상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건, 오히려 공허하고 외로운 느낌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한 마디로 '정상에서의 외로움'이다.

하물며 성공과 돈을 좇아 달려왔지만, 그것을 얻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래서 많은 우리는 '외로운' 것이다.
<월든><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의 작가, 데이비드 소로우" data-captionyn="N" id="i201073965"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0724/201073965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소로는, 1845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 있는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하나 짓고 살았다. 그는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노동에만 전념해야 하는 삶을 거부하고, 자급자족하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선택한다. 그렇게 그가 살아낸 2년여의 삶의 기록이 명저, <월든>이다.

그는 책에서, 1년에 6주 정도만 일하면, 생계비를 충당할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 외의 많은 시간들은 걷거나 산책을 하거나, 더러는 공부하며 오롯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사용했던 것이다. 

물론, 고도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겐 꿈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대량 소비를 통해서 스스로 잘(?) 살고 있음을 증명하고, 값비싼 물건의 소유 여부에 따라 행복의 크기가 달라지는 이 사회에서는 얼토당토않은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소로우가 살았던 월든 호숫가 오두막집
하지만, 삶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증적인 삶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야 백인백색(百人百色)이지 않은가.  

소로 역시 '나는 결코 누구도 내 생활방식을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세상의 사람들이 제작기 다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로가 <월든>에서 보여준 삶의 모습들은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규슈올레 가라쓰코스 4
이른 아침부터 태양은 예열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 예열의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심히 노골적이라, 기대 반 우려 반, 일단 부딪혀 보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시작이 반이라니, 길 위에 있는 우리는 벌써 반은 걸은 셈이니, 크게 위안이 된다.
가라쓰 코스 지도
오늘 걸어야 할 길은 규슈올레 코스 중, 가라쓰(唐津) 코스.

가라쓰(唐津)는 대륙과의 요충지로 예부터 바닷길을 이용해 사람과 물자, 문화교류가 활발했던 항구도시다. 지난번 걸은 야메코스와는 달리, 제주를 꼭 닮은 바다를 에둘러 해안 올레가 이어진다니, 은근 기대가 된다.
다자이후 천만궁 신사
매년 합격이나 학업 성취를 기원하는 참배객이 많이 모인다.
가라쓰 코스는 '다자이후 천만궁 신사(神社)'에서 시작된다. 

919년에 창건된 다자이후 천만궁 신사는 일본의 유명한 학자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眞)를 학문의 신으로 모시는 있는 신사(神社)다. 그런 이유로 매년 합격이나 학업 성취를 기원하는 참배객이 많이 모인다고 한다.
규슈올레 가라쓰코스 6-2
우리가 방문한 그날도 학업 성취와 시험 합격을 기원하는 많은 이들이 그들의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찰이나 교회 등에서 보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디를 가든 다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규슈올레 가라쓰코스 7
규슈올레 가라쓰코스 7-1
가라쓰 코스의 입구에는 소소하지만 나름 시작점임을 알리는 아치가 있다. 기둥에 한글로 쓰여 있는 환영문구가 도보 여행자를 미소 짓게 한다.

그리고 규슈올레의 출발점과 종점에는 대체로 대나무를 깎아 만든 수십 개의 지팡이가 통에 담겨져 있다. 걷는 이들을 위한 배려인지라, 새삼 고맙고 마음이 따스해진다.
규슈올레 가라쓰코스 8
길의 시작은 다행스럽게도 숲길이다.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오래 된 숲이 가진 기운은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그러니 들뜨지 않는다. 가야 할 길 앞에서 스스로 겸손해지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면, 숲이든 사람이든 '오래됨'이 간직하는 깊은 성찰과 너그러움이 있다. 숲의 정령들이 전하는 배려와 보살핌이 느껴진다.

지난밤, 객지에서의 여유로움이 준 선물(?)이었던 숙취마저도 숲 안에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넓은 분지가 나타난다. '호리 히데하루 진영터(堀秀治陣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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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영터가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은, 이곳이 임진왜란의 전초기지였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이곳에다 진영을 차려 놓고 임진왜란을 준비했던 것이다.

가라쓰가 한자로는 당진(唐津)인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당진(唐津)시와 비슷한 이유다. 당(唐)나라를 향해있는 진(津), 즉 나루라는 뜻으로, 대륙으로 나아가는 관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곳 가라쓰가 대륙으로 나아가는 전진기지였던 것이다.

그들은 이렇듯 오랫동안 임진왜란을 준비했고, 조선은 이를 알지 못하였거나, 또는 당파의 작은 이해에 갈려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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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나고야 성터 주변에는 전국 160명이 넘는 다이묘(*일본 중세시대의 지방 영주)가 집결되어 만든 130개 진영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국에서 징집된 수만 명의 병력이 주둔했던 곳 치고는 그 흔적이 광범위 하지는 않다. 이 중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 호리 히데하루(堀秀治) 등 23개의 진영터는 국가특별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어 돌담과 토루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일본통일 쟁패의 마지막 승리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이곳에서 진영을 꾸리고 조선 침략의 첨병 역할을 했던 것이다. 물론 당시 권력자였던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직접 가라쓰의 나고야성(城)에 머물면서 전국에서 몰려온 다이묘들을 지휘 통솔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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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통 가면극인 노(能)무대 터
5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산천(山川)은 의구하되 인걸(人傑)은 간데없고, 다만 진영터라는 흔적만 남아 그들의 철저한 침략 전쟁 준비를 증언하고 있다. 

특히 호리 히데하루 진영터는 유일하게 전체 터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다실(茶室)과 일본의 전통 가면극인 노(能)무대 터까지 있다. 오랜 기간 동안 머물면서 전쟁을 준비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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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숲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올레의 빨강 파랑 리본이 가는 길을 무심히 알려 준다. 지시하는 대로만 가라고 재촉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사실 올레 길을 걷다보면 이 올레 리본이 무척 반갑고, 또 그만큼 절대적인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걷다가 올레 리본이 나타날 즈음인데도 보이지 않으면 이내 불안, 초조가 밀려온다. 가고 있는 방향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를 확인할 방도는 리본과 이정표뿐이니, 그들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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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야메 코스를 걷다가는 길을 잃고 남의 과수원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길을 찾아 헤맨 적이 있었다. 그때 밭에서 일하시던 농부의 의심스런 눈초리에 마음은 더 바빠지고, 한참을 헤맸었다. 그러다 만난 올레 리본. 반갑다는 표현은 조금 부족하고, 차라리 고마웠다. 그러니 올레 리본은 말 그대로 길 위의 지휘자이면서, 참으로 성실한 안내자인 것이다.

이쪽으로 가라면 이쪽이고, 저쪽으로 가라면 저쪽이다. 덤비거나 거역은 불가하다.

새로이 길을 내겠다고 덤비는 사람이야 뭘 못하겠느냐 마는, 기왕이면 리본이 가라는 대로 가는 게 신상에 좋다. 여러 번 이산 저산을 헤매본 결과이니 의심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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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지나면 마을이 나타난다.

규슈 올레 길에서는 논이나 밭에서 농사일을 하는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을마저도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울타리를 대신하는 꽃들만이 지나는 이를 배웅한다.

마을을 벗어나자, 모내기를 끝낸 논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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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은 우리나라의 여느 시골 논과 똑같다. 너무 이국적이어서 도리어 이국적이라 했지만, 이국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당황스러웠다는 말이 맞을 듯하다. 걷다가 순간순간 '여기가 어디? 일본 맞아?'라고 되묻게 된다. 진정 이 곳에서 떠나온 내 고향의 산과 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짧은 논길을 지나자, 이내 또 산길로 접어든다. 길 지척에는 유자가 저 홀로 익어 간다. 더러는 수확하는 이 조차 없는지 땅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또 더러는 무거운 몸을 잔가지에 의지해 애처롭게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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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하나만 따서 맛이라도 볼까 했지만, 혹여 모를 민폐 방지를 위해 참기로 한다. 아마도 여우가 느꼈을 신포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지하게 시거나 맛이 없었을 것이라고.   

그런데, 이렇듯 훌륭한 길이건만, 걷는 사람들은 우리 밖에 없다. 규슈 올레 2일차이지만 길 위에서 엇갈려가거나 잠시나마 동행한 이가 한 명도 없다.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어설프게나마 인사를 나누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우연한 만남은 애초부터 기대난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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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언어 탓인지는 몰라도, 길을 물어 보면 주민들도 올레길을 잘 모르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들도 이 길을 걷는 사람이 한국 사람인 것은 잘 아는 듯하다. 일본 사람에겐 등산이나 트레킹이 아직은 낯선 문화인지라, 올레길을 걷는 이는 당연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규슈올레 길 위에서만큼은 한국어 이정표가 아주 당연하다.

길이 깊다. 오랫동안 이 길을 지키고 있었을 낙엽들이 그 삶의 연륜만큼 깊게 쌓여 있다. 가끔은 스스로가 길이었음을 잊어버릴 수도 있을 만큼 행인의 흔적이 드물다. 떨어진 낙엽들은 여러 해 동안 그 자리에 반복적으로 쌓여 길은 스폰지를 품은 양 푹신하고 또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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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벗어난 길은 엉겅퀴 꽃의 배웅을 받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전진만이 숙명인 사람처럼 뒤를 돌아 볼 틈조차 없다. 오로지 전진! 또 전진! 뒤돌아봄은 낙오를 강제 할 뿐. 햇살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빨리 이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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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올리비에가 말했듯이, ‘도보여행의 결과는 정직하다. 몸 전체를 던지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새삼 실감한다. 

겨우 몇 발짝도 걷지 않은 이가 건방지게 내뱉을 말은 아니나, 충분히 공감이 간다. 몸 전체를 던지지는 못할지라도, 게으런 몸을 움직여, 그 몸을 이용해 스스로를 이동시킨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의미는 남다르기 때문이다.

엄살을 떨기는 했지만, 내리꽂히는 햇빛을 받으며 걷는 걸음에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고, 또 특별한 성취감을 얻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더러 흐르는 땀방울이 마치 훈장이라도 되는 양 반갑기도 한 것이다. 걸어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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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비록 하찮은 움직임일지라도 움직이고 있음에 만족하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킨다. 달팽이의 움직임에도 나름의 우주는 존재한다지 않은가. 그리고 어차피 산다는 게 뭐 특별한 것도 아니니, 앞으로 가면 어떻고, 또 뒤로 가면 어떨 것인가. 움직이고 있음에 만족여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갈 곳이 있고, 그 곳을 향해 나아가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살아가는 모습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어설픈 개똥철학도 읊게 된다. 그런 이유로, 어디론가 가고 있는 내 자신과 만나고 있다는 사실에, 가끔은 스스로를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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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과정에 동행까지 있으니,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물론 '혼자' 걸어도 좋다. 고독과 동무하며 내 안의 여러 ‘나’와 대면하는 과정도 더없이 큰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실크로드를 걸었던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도보 여행은 홀로 걸으며, 고독하여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내 스스로는, 타자(他者)로서의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또 그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해보아야 할 숙제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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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에게도 이 올레길를 더불어 걷는 동행이 있다. 어쩌면 도반(道伴)인지도 모르겠다.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 둘이 어깨를 부딪히며, 땀도 좀 흘리며, 저질 체력을 안타까워하며 걷는다. 굳이 들려 줄 이야기도, 나눌 대단한 지식도 없지만, 함께 한다는 사실로 위안을 얻고, 삶을 배우는 중이다.

나고야 성터(名護屋城跡)가 보인다.
나고야성(城)
국가특별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나고야성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1592년에 조선 침략을 위해 축성한 성이다. 나고야 성은 일본에 남아있는 모모야마 시대(*1568년에서 1603년까지의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장악한 시대를 말한다.)의 성곽 중 최대급의 성터라고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일본은 임진왜란을 위해 이렇듯 대단한 전쟁 기지를 구축하고 침략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 상대방인 선조의 조선은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코앞의 재난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봄의 나고야성은 벚꽃 천지일 듯하다. 성을 에둘러 벚나무들이 또 다른 성벽을 이루고 있었다.
나고야성의 천수대
정상 부근으로 걸음을 옮기자, 커다란 비석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나고야 성터(名護屋城跡)의 천수대다.

이곳에 서면 이키섬(대마도와 규슈 섬 중간에 있는 작은 섬), 대마도, 현해탄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새삼 대륙 정벌의 꿈을 안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굳이 이곳에다 전초기지를 마련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나고야성에서 바라본 현해탄
그런데 걸으면서 처음으로 만난 바다였건만 아쉽게도, 그 바다는 낭만보다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한이 서린 바다였던지라, 감상의 여운보다는 역사라는 필터 너머의 애틋함이 느껴졌다.

500년을 넘게 견뎌 낸 성벽 위로는 코스모스 꽃을 닮은 국화의 일종인 금계국이 한 가득이다. 아마도 이 성벽에는 저 노란 금계국이 아니라도, 수많은 종류의 풀과 꽃들이 번갈아 가며 피고지고 했으리라.
규슈올레 가라쓰코스 25
규슈올레 가라쓰코스 25-1
조선 침략의 유적지인 이곳에서 휘날리는 올레 리본이 새삼 세상사의 무상함을 일깨어 주는 듯하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어차피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니 여기까지 와서 과거를 따져 묻는 것도 어쩌면 과한 일일지도 모른다. 역사란 다만 각자의 위치에서 돌아보고 계승과 반성을 통해 현재가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중사적 관점에서 보면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민중은 공히 피해자일 뿐이 아니던가.
규슈올레 가라쓰코스 26
규슈올레 가라쓰코스 26-1
이 나무는 얼마나 긴 세월을 살아냈을까? 나무에 빌붙어(기생인지 공생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살아가는 식물들이 나무의 연륜을 말해 주는 듯하다.

성터를 에둘러 있는 길이 외려 고즈넉하다.
규슈올레 가라쓰코스 27
## 규슈 올레 <가라쓰 코스> 정보 안내

- 가라쓰 관광 협회 : TEL. 0955-74-3355
- 나고야성 관광 안내소 : TEL. 0955-82-5774
※ 가라쓰 관광 협회 : http://www.karatsu-kankou.jp/
※ 큐슈관광추진기구 : http://www.welcomekyushu.jp/kyushuolle/?mode=detail&id=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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