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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비닐 깔고 '쪽잠'…"버스 기사 졸음운전 예견된 인재"

[리포트+] 비닐 깔고 '쪽잠'…"버스 기사 졸음운전 예견된 인재"
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에서 광역버스가 앞서 가던 승용차를 덮치면서 7중 추돌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승용차 탑승자 2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사고의 원인은 버스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버스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이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에서도 졸음운전으로 4명이 숨지고 38명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고 이후 정부는 버스 운전기사의 휴식 시간을 보장하는 법도 만들었지만,'무용지물'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버스 운전기사들을 조합원으로 둔 자동차노동조합연맹은 이번 사고에 대해 "예견된 인재였다"라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 졸음운전 사고는 '예견된 인재'?

정부는 올 초 버스 운전기사들의 충분한 휴식을 위해 2시간 이상 연속운행 시 15분 이상 쉬게 하고 마지막 운행으로부터 최소 8시간의 휴식시간을 보장하도록 법을 개정했습니다. 이번 사고 버스 운전기사 업체 측은 법 규정에 따라 휴식을 제공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사고 전날, 버스 운전기사 김 모 씨의 첫 운행 시간은 새벽 5시였습니다. 김 씨는 600km가 넘는 거리를 13시간 동안 운행했고, 밤 11시가 돼서야 일을 끝냈습니다. 사고 당일에는 오전 7시 15분부터 운행을 시작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사고업체 소속 버스 기사]
"김 씨가 퇴근한 시간은 23시 30분이고, 집에 도착한 시간이 자정쯤이고, 씻고 잠자리에 든 게 12시 30분이라고 했어요."
*김 씨 일과 그래픽
버스 운전기사들은 법으로 보장되는 '8시간의 휴식'이 운행 시작과 종료를 기록하는 '단말기 상의 휴식'이라고 말합니다. 김 씨의 사례만 보더라도 단말기 상으로 일을 안 하는 시간은 8시간 반이지만, 출·퇴근 시간 등을 고려하면 8시간 이상 휴식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일반 근로자보다 900시간 넘게 일하는 버스 기사들

최근 공공운수노조가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버스기사들의 상황은 여실히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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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부터 20일까지 공공운수노조가 전국 44개 버스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버스 운전기사들의 평균 근무시간은 연간 3천122시간으로 일반 근로자 평균 노동시간인 2천228시간보다 약 900시간 많았습니다." data-captionyn="N" id="i201069509"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0712/201069509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준공영제 시내버스 운전자는 하루 10시간26분 민간업체 시내버스 기사는 하루 16시간46분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민간업체 가운데 가장 근무시간이 긴 곳은 시외버스 업체였습니다. 시외버스 기사의 경우, 하루 17시간8분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출·퇴근용 관광버스 운전자도 근무 조건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격일제나 복격일제를 운영하는 시내·외버스와 달리 매일 새벽 5시부터 저녁 8시까지 15시간 동안 운행하는 강행군입니다.

■ 기사들이 버스에서 눈 붙일 수밖에 없는 이유

SBS 취재진은 대기업 출·퇴근 버스를 운전했던 퇴직 기사를 만나, 버스 운전기사의 근무 환경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그는 일부 관광버스나 전세버스 기사들의 경우,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무리한 운전에 내몰리는 경우가 여전하다고 말했습니다.
잠을 못 자고 근무하는 경우가 많나요?
[퇴직 버스 기사]
"2~3시간 자는 날도 있고, 많이 자면 5시간 자고 나와요. 오전 6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까지 근무하는 게 기본 일정이고, 그 이후에 추가 일정이 잡히는 날이 많거든요. 평일이랑 주말 상관없이 회사에서 정해주는 데로 움직이는 거예요."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일정을 정해준다고요?
[퇴직 버스 기사]
"완전히 일방적인 통보죠. 그나마 주말 일정만 한 달 단위로 미리 알려주고, 평일엔 갑자기 일정이 생겼다고 알려주면 바로 투입되는 거예요. 오전에 출근 버스 일정 마치고, 바로 지방 일정을 통보받으면 당황스럽죠. 오전 근무 마치자마자 3~4시간 달려서 지방 다녀오면 새벽이고, 다음 날 출근은 해야 하니까 쪽잠 자고 바로 또 나가는 걸 반복하는 거죠. 이게 주말까지 이어지니까 눈 붙일 시간이 없어요."
출근 버스 이외에 다른 곳에도 동원된다는 건가요?
[퇴직 버스 기사]
"저는 회사 소속 버스였으니까, 회사 교육 일정이나 경조사 일정에 동원되는 일이 많았죠. 결혼식만 해도 지방에 내려가서 승객들 태우고 서울에 왔다가, 또다시 내려가야 하거든요. 예식 하는 동안 대기 했다가 끝나는 대로 승객들 태워서 부산이든 광주든 또 운전대를 잡는 거죠. 결혼식은 승객 태우려고 전날 밤에 미리 내려가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데 월급 얼마 안 되니까, 고급 호텔에서 잘 수는 없고 싸구려 여관이나 버스에서 자요. 몇몇 기사는 버스에서 잘 때 쓰려고 트렁크에 비닐장판을 갖고 다녀요."
■ 버스 기사는 무제한 연장 근무가 가능하다?

해외에서는 버스 운전기사가 장시간 운전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일본 버스 기사의 최대 운전 시간은 하루 9시간, 주 40시간입니다. 유럽연합(EU) 버스 기사들도 하루 최대 9시간까지만 운전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8시간 휴식을 취한 경우에 한해서만, 하루 최대 10시간까지 운전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도 근로기준법 59조에 따라, 5인 이상 사업장 내 근로자의 주당 근무시간을 40시간, 연장 근무를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운수업의 경우, '사용자가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한 경우에는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 근무를 하거나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습니다.

[정찬무 / 공공운수노조 국장]
"현행 근로기준법이 버스 노동자들을 무제한 연장 근무를 가능하게 하고 있는데, 그 부분이 폐지돼야 합니다. 또한 전체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종합적인 대응책이 세워져야 합니다."

(취재: 이호건, 안상우 / 기획·구성: 김도균, 장아람 / 디자인: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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