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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중국과 북한은 혈맹"…시진핑의 의도는?

정성엽 기자 jsy@sbs.co.kr

작성 2017.07.12 10:16 조회 재생수3,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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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북한과 혈맹"

G20 정상회담 기간동안 이뤄진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팡 중국 주석이 했다는 이 말이 단연 화제입니다. 이 발언을 두고 "한중 정상회담 성과는 뭔지 몰라도, 시 주석의 속마음은 알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중국과 북한이 원래부터 그런 사이였는데,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라는 반응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발언 자체의 충격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정치권에선 중국과 북한이 혈맹 관계라고 실토(?)한 이상, 중국에 공들여봐야 '말짱 도루묵'이란 논리로 확산되는 듯 합니다. 자연스럽게 이런 논리는 한반도 문제를 '한미 대 북중 대결구도'로 양분하는 분위기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한중정상회담그런데 의아한 건 시진핑 주석이 왜 난데없이 "북한과 혈맹"이란 말을 꺼내든 걸까요? 그것도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한중 정상끼리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말입니다. 시 주석이 의도적으로 문 대통령에게 면박줄 의도가 아니라면, 한국 대통령과 단 둘이 만난 자리에서 뜬금없이 북한과의 혈맹임을 강조한 건 외교 관례상 납득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외교 결례를 밥먹듯(?) 한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서도 이런 경우는 듣지 못한 거 같습니다. 만약 시 주석의 발언이 의도적인 것이라면, 우리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할 중대 사안입니다. 하지만 시 주석의 발언을 알려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습니다.

시 주석의 혈맹 발언은 지난 6일 한중 정상회담이 끝난 뒤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백그라운드 브리핑에서 나온 내용입니다. 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중국의 더 적극적인 역할을 이야기했는데, 시 주석의 반응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중국이 지금까지 충분히 역할을 해왔다. 북한과는 혈맹관계를 맺어왔고, 한국과는 25년 전에 수교했고,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게 아니다. 중국과 북한과의 그런 관계를 감안할 때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는 게 시 주석의 발언 요지였습니다. 이 말을 그냥 직관적으로 해석하면 '중국은 북한과 혈맹이다. 혈맹인데도 중국은 역할을 충분히했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중국은 수교국과의 양자 관계를 5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중요도에 따라 단순 수교관계, 선린우호관계, 동반자관계, 전통적 우호협력관계, 혈맹 관계 순입니다. 1996년부터 이렇게 분류하고 있으니까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북한과는 지금 공식적으로 전통적 우호협력 관계입니다.

1992년 한중 수교와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뒤부턴 북한과 혈맹관계라고 지칭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 특성상 용어가 한번 이렇게 정해지면 정치권, 언론, 학계에서도 예외없이 일사분란합니다. 상황이 이런데 국가 최고 통치자인 시 주석이 이것을 거스르고 20년 넘게 퇴색된 북한과의 혈맹관계를 다시 부활시켰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가 20년을 거스를 만큼 호전될 만한 이슈가 있었나요? 오히려 악화될 일이 더 많았다고 보는 게 맞겠죠. 여러 사례가 있겠지만 특히 지난 5월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중국을 실명으로 겨냥해 '레드라인을 넘고 있다'고 비난한 것은 중국측에서조차 경악스러워했다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전언입니다.

이런 일화만 갖고 북중 관계가 근본적인 균열을 생기는 것으로 확대해서 볼 순 없지만, 그렇다고 북중 관계가 원활하다고도 볼 수도 없는 가장 최근 사례가 분명합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베이징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시 주석이 북한과 중국간의 역사 관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혈맹관계란 단어가 나온 게 아니겠냐"고 분석했습니다.

과거에는 북중이 혈맹 관계였는데, 이후 중국과 한국이 수교도 하고, 그런 사이 북중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래도 북한과 중국이 (비록 혈맹 관계라고 했던 이전 만큼은 아니지만) 전통적우호협력 관계는 여전하다고 설명했을거란 겁니다. 쉽게 말하면 중국 입장에선 지금은 북한이 예전에 혈맹관계였을 때처럼 말을 잘 듣는 상황도 아니고, 전통적우호협력관계 즉 국가 대 국가의 관계인데, 이런 상황에서도 중국은 북한에 대해 할 만큼 한 상황이라는 취지아니겠냐는 것입니다.한중 정상회담 (사진=연합뉴스)이런 해석대로라면 시 주석은 문 대통령 앞에서 중국과 북한과의 끈끈한 관계를 자랑했다가 보다는, 중국이 예전만큼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곤란한 상황에서 중국에게 지나치게 큰 역할을 주는 것에 대한 일종의 푸념(?)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중 정상회담에서의 혈맹 발언을 전달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백그라운드 브리핑이 끝난 뒤에 "중국이 북한 컨트롤에 애를 먹고 있다"는 취지의 설명을 했다고 합니다. 앞서 해석과 비슷한 맥락으로 읽히는 부분입니다.

어떤 회담이든 양자 회담에서 단 둘이 나눴던 얘기가 공개될 때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당사자들끼리 나눈 얘기가 통역을 거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다른 뉘앙스로 전달되기도 합니다. 이럴 때 회담 양측이 각각 설명한 내용을 맞춰보고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곤 하는데, 이번 혈맹 발언은 중국 측에선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어서 시 주석의 의중을 파악하기 더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특정 현안에 대한 양자간 일관된 입장 전체적인 맥락에서 의미를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진행해온 양국간의 일관된 입장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외교 채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오해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은 언제든지 연락해서 조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분명 북한과 혈맹 발언의 의도는 시진핑 주석 본인만이 알 것입니다. 또 중국이 북한에 대한 압박 요구가 거세지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본질적인 내용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발언의 앞뒤 맥락을 싹뚝 잘라버리고, '혈맹'이란 특정 단어만 놓고 자기 진영에 유리하도록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건 삼가야겠습니다. 적어도 정치 진영간 문제가 아닌 국민 전체를 위한 중대사라면 더욱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