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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WC] 위기 속 출항 신태용호, 관건은 '자신감·소통·협력'

[러시아 WC] 위기 속 출항 신태용호, 관건은 '자신감·소통·협력'
또 한 번의 구원 등판이다. 신태용 감독이 '9회 말 2사' 위기 상황에 놓인 한국 축구 마운드에 또 한 번 구원투수로 오른다. 단순히 회수만 놓고 봐도 벌써 세번 등판이다. 더욱이 이번에 맡게 된 국가대표팀은 월드컵 탈락이라는 '역대급 위기'와 마주하고 있다. 신태용 감독이 또 한 번 훌륭히 세이브를 추가할 수 있을지는 이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4일 파주에 위치한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2017년도 6차 회의가 소집됐다. 이날 기술위 회의에는 지난달 말 신임 기술위원장에 임명된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비롯해 신임 기술위로 위촉된 FC서울 황선홍 감독, 수원 삼성의 서정원 감독과 K리그 챌린지 성남 FC의 박경훈 감독 등 축구계 '브레인'들이 총출동 됐다. 오전 9시에 시작된 기술위는 마라톤 회의 끝에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마무리 됐을 정도로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회의 직후 브리핑장에 들어선 김호곤 신임 기술위원장이 '신태용' 카드를 꺼내든 이후 탄성과 탄식은 곳곳에서 교차하고 있다. 분위기는 대략 두 가지다. 또 다시 과거에 안주하기 보다 연속성과 소통에 초점을 맞추고 젊은 지도자를 중용한 결정에는 대체로 박수가 나온다. 이미 언론을 통해 자의 반, 타의 반 지속적으로 이름이 거론되어온 '허정무 현 프로축구연맹 부총재 카드 1순위'에 대한 반감은 이 대목과 맥락을 같이 했다.

실제로 신태용 감독은 상당히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동안 본의 아니게 다양한 상황에서 대표팀 '소방수' 역할을 맡아왔다. 그리고 특급 소방수 역할은 여러 연령별 대표팀을 거쳐 이제는 국가대표팀 사령탑에까지 이르게 됐다. 대표팀 감독은 흔히 독이 든 성배라 불리지만 사실 지도자의 길을 걷는 모든 축구인들에게는 하나의 꿈이기도 하다. 그 자리가 가지고 있는 막중한 책임과 역할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에 감독직을 맡게 됐지만 감독직을 맡는 일 자체가 불행이 아닌 이유다.

더욱이 상황은 최악이지만 '신태용 카드'가 더 후한 점수를 얻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앞서 언급했던 상황들이 기폭제가 됐다. '감독 돌려막기'에 익숙한 한국 축구계에서 신태용 감독은 최근 몇 년 상황과 자리를 막론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나름의 소신과 철학을 바탕으로 유쾌하고 성실히 수행해 내는 모습을 보여왔다. 감독 선임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호곤 기술위원장 역시 "신태용 감독이 큰 성공은 없었을지 몰라도 꾸준히 성과는 있었다. 다양한 대표팀을 두루 맡으면서 팀 운영 노하우를 쌓은 것이 오히려 지금의 대표팀과 신태용 감독에게는 강점이 될 것으로 본다. 실패의 경험까지도 감독에게는 큰 자산이 되어있을 것이다"며 기대를 드러냈다.

신태용 감독은 지난 2014년 브라질월드컵 이후 위기를 맞은 국가대표팀이 신임 감독을 구하지 못해 수장이 공석으로 남아 있던 기간 감독대행으로 지휘봉을 잡으며 처음 대표팀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대행 체제로 치른 A매치 친선전에서 화끈한 공격 축구를 선보여 침체됐던 대표팀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 넣었고, 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한 2014년 말 이후에는 사실상 대표팀 수석코치 역할을 맡아 감독과 선수들을 보좌하며 2015년 호주에서 치러진 아시안컵 준우승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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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부터 시작된 대표팀 코칭 스태프 경력은 올해로 3년째. 비교적 짧은 기간에 해당하지만 마치 제트코스터를 탄 듯 빠르게 변한 상황 탓에 신태용 감독은 자의 반, 타의 반 굵직 굵직한 국제대회들을 치르며 소위 '가성비 갑'인 감독이 됐다. 특히 지난 2015년 호주 아시안컵 이후 국가대표팀이 아닌 연령별 사령탑으로 자리를 이동하며 또 한 차례 분기점을 돌았다. 투병 중에 세상을 떠난 故이광종 감독의 빈 자리를 대신해 U-23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으며 올림픽 최종예선과 리우 올림픽 본선을 지휘했다. 손흥민 등이 와일드 카드로 합류하면서 다시 한 번 올림픽 메달을 노렸지만 아쉽게도 리우 올림픽에서는 8강에 머물러야 했다.

올림픽 이후 성인대표팀 코치직에서도 물러 난 신태용 감독은 또 다시 연령을 낮춰 지난해 말 U-20 대표팀 감독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2017 FIFA U-20 월드컵을 채 1년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전임 안익수 감독이 성적 부진 등의 이유로 물러나게 되면서 또 '소방수' 역할을 맡은 것. 신태용 감독은 6개월 정도였던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팀을 정비하고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월드컵 대회를 준비하는 강도 높은 '경험'까지 쌓았다. 대회 초반 돌풍을 일으키며 큰 기대를 받다 16강에서 일정을 조기 마감한 것은 신태용 감독에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교훈을 남겼다.

결국 대표팀에서 일한 기간에 비하면 경험한 대회나 상황의 범위가 상당한 것은 신태용 감독이 가진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2015 호주 아시안컵, 2016 브라질 리우 올림픽과 올해 우리나라에서 치른 U-20 월드컵 대회까지 포함하면 한 지도자가 연속성을 가지고 쉽게 경험하기 힘든 대회들을 모두 현장에서 지휘했다. 신태용 감독이 젊은 지도자들 중 차기 국가대표팀 감독 '1순위' 후보로 거론되어 온 이유기도 하다. 김호곤 기술위원장 역시 팀 운영능력의 노하우와 연속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런 장점은 신태용 감독이 무엇보다 선수들과의 소통에 있어 가장 큰 경쟁력을 갖는 지도자라는 '덕목'으로 이어진다. 소위 형님 리더십으로 불리는 신태용 감독의 리더십은 2016 리우 올림픽 당시 와일드 카드 손흥민을 비롯해 황희찬 등 다양한 재능들이 모인 올림픽 대표팀에서 큰 각광을 받았다. 2017년에는 23세 이하 대표팀보다 한 단계 더 낮은 연령대인 U-20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고 어린 선수들과의 소통에서도 경쟁력을 보였다.

요악하자면, 신태용 감독은 돌려막기의 '좋은 예'가 된 셈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탄성'이 탄식으로 바뀐다. 수많은 대중들은 감독 돌려막기가 지금까지 한국 축구에 어떤 병폐를 쌓아왔는지 잘 알고 있고, 실제로 그 가시적인 결과물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에 있다. 바로 홍명보 감독이다. 물론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갑작스럽게 클럽 지휘봉을 내려 놓고 대표팀 감독직을 임시로 수행했던 전북 최강희 감독이나 밀실 논의 끝에 경질된 조광래 감독 등에 이르기까지 '임기'를 보장받지 못하는 대표팀 감독, 특히 국내 지도자가 마신 '성배'의 결론은 예외없이 대부분 쓴 독약이 돼 지도자 본인에게나, 한국 축구 전반에 큰 생채기를 남겨 왔다.

많은 이들이 신태용 감독 선임에 다시 일말의 희망을 걸면서도 탄식을 놓지 못하는 것은 공교롭게도 그의 강점인 '젊은 지도자'라는 대목에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당장 두 달 뒤 월드컵 본선행에 실패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 될 경우 책임론의 한 가운데에 서야 하는 신태용 감독의 지도자 인생이 적지 않은 파행으로 치닫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태용 감독 개인의 문제를 넘어 한국 축구계가 또 한 명의 유능한 지도자를 '소모'하게 되는 불운과도 겹쳐진다.

양날의 검으로 불리는 자리에 또 한 번 구원 등판하게 된 신태용 감독에게는 그런 의미에서 적지 않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대표팀 분위기 회복이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최종예선을 식은 죽 먹듯이 손쉽게 통과할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탈락은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두려움이다. 이번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서 그런 두려움이 눈 앞의 공포로 다가 온 가장 큰 이유는 패배주의, 개인주의가 만연한 대표팀 내부 분위기였다는데 많은 축구전문가들이 입을 모은다. 성공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는 무색 무취의 지도자와 빈약한 팀 철학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젊은 선수들과 융합되며 결과적으로 최악의 시너지 효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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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최종예선 9차전인 이란전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빠른 시간안에 대표팀 분위기를 수습하고 전력을 극대화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하지만 현재 '내우외환'이 계속 되고 있는 국가대표팀은 무엇보다 떨어진 자신감을 회복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당면과제로 꼽힌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무대에 출전한 만큼 아시아에서는 최강의 위용을 유지해 왔지만 떨어질대로 떨어진 대표팀 분위기는 월드컵 본선행 실패와 마주하고 있을 만큼 큰 위기를 자초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꼽힌 것이 대표팀 내 소통 부족이다. 현역 시절 유쾌하고 적극적인 이미지로 한국 프로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였던 신태용 감독은 지도자가 된 뒤에도 스스로를 '난놈'이라 칭하며 톡톡 튀는 개성을 유지해 이목을 집중시켜 왔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는 그가 맡았던 클럽과 대표팀에서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는 '케미'의 하나가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지금 대표팀에 가장 절실한 '기운'이기도 하다.

월드컵 본선행 실패가 그의 지도자 인생을 망칠 것이라는 가정은 신태용 감독 스스로의 과오가 아닌 외부의 단정일 지도 모른다. 최악의 위기를 자초한 지금의 한국 축구가 처한 현실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축구인은 없겠지만, 그 책임을 신태용 감독이 혼자 떠맡을 이유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대표팀에 필요한 또 하나의 키워드는 승리를 향한 낙관이다. 무엇보다 그 낙관은 누군가 혼자만의 상상이 아니라 팀 전체의 협력을 바탕으로 해야한다. 위기가 왔을 때 위험이 아니라 기회를 보는 사람은 그만큼 승리를 강하게 확신한다. 팀의 전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리기 위해 하나가 되는 것 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더욱이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한 젊은 지도자의 미래에는 한국 축구의 미래도 오버랩 되어 있다. 축구계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다.

자신감 회복, 소통 그리고 협력.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자신의 축구인생에 있어 가장 어려운 패스를 받게 된 신태용 감독이 또 한 번 그 특유의 화끈한 스타일로 현재의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 지에는 수 많은 시선이 모아지게 됐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SBS스포츠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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