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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저수지 설계 기준, 이대로 괜찮은가?

[취재파일] 저수지 설계 기준, 이대로 괜찮은가?
북상하던 장마전선이 다시 약해지고 있다. 7월의 첫날인 오늘은 장마가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낮 기온이 30도 안팎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장마전선은 일요일인 내일(2일) 다시 활성화되면서 중부지방에도 본격적인 장맛비를 뿌릴 것이란 예보다. 예년보다 7~8일 늦은 지각 장마다.

시작은 늦었지만 장마 초기 강수량은 많을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내일과 모레 중부지방에는 최고 200mm가 넘는 큰 비를 예상하고 있다.  특히 다음 주 내내 장마전선이 중부와 남부지방을 오르내리면서 영향을 줄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가뭄이 심했던 것을 생각하면 피해가 나지 않는 범위에서 충분한 비가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실제로 올해 1월 1일부터 6월 27일까지 전국 평균 강수량은 217.4mm로 예년 강수량 440mm의 50% 수준이다. 전남은 예년의 43%로 가장 적었고 충남이 예년의 46%, 서울과 경기는 예년의 47%수준이다. 1973년 전국 기상관측망이 가동된 이후 강수량이 가장 적었다. 단순히 강수량만 고려하면 1973년 이후 최악의 가뭄이다. 기록적으로 비가 적게 내리면서 논과 밭은 타들어 갔고 저수지도 쩍쩍 갈라진 바닥을 드러냈다.

농림축산식품부 집계에 따르면 6월 29일 현재 전국적으로 가뭄 면적은 9,441ha로 논 물마름 면적이 7,764ha, 밭 시들음 면적은 1,677ha다. 당장 급수를 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는 면적도 2,134ha나 된다. 가까이에 물을 끌어올 만한 하천도 없고 저수지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된 만큼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저수지는 사전을 찾아보면 흐르는 물을 저장하여 물의 과다 또는 과소를 조절하는 인공 수리시설이라고 되어 있다. 물이 부족하면 저장했던 물을 흘려보내고 물이 너무 많이 내려갈 것 같으면 물을 좀 잡아두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단지 올해뿐 아니라 해마다 봄만 되면 바닥을 드러내고 마는 저수지, 과연 사전적인 의미 그대로 물의 과다 또는 과소를 조절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을까?

한국농어촌공사에 현재 각 저수지가 어느 정도의 가뭄까지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물어봤다. 공사에서는 “한발빈도”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어떤 저수지의 설계 시 적용된 한발 빈도가 10년이라면 10년에 한 번 올 정도의 가뭄이 발생하더라도 주변 지역에 물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저수지를 설계했다는 뜻이 된다. 쉽게 말하면 저수지 물그릇 크기가 10년에 한 번 오는 가뭄도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물그릇이라는 뜻이다.

‘농업 생산기반 정비 사업계획 설계기준’에 따르면 <농업용 저수지에서는 관개 시기별 수요량과 10년 빈도 한발 시의 공급량을 기준>으로 저수지를 설계하게 되어 있다. 한발빈도 10년에 맞게 저수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가뭄이 심한 경기도에 있는 저수지 118개와 충남에 있는 저수지 228개를 보면 80% 이상이 설계 기준인 10년 한발빈도에 맞춰 저수지가 만들어져 있다. 대표적인 저수지를 봐도 대부분 설계기준인 한발빈도 10년에 맞게 만들어져 있다 (아래 표 참고, 자료: 한국농어촌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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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어촌공사 관리 저수지의 지역별 한발빈도 적용 현황" data-captionyn="N" id="i201064802"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0630/201064802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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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주요 저수지 한발빈도(경기남부, 충남 서북부)" data-captionyn="N" id="i201064803"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0630/201064803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애당초 10년에 한 번 나타나는 가뭄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저수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올해처럼 기록적인 가뭄이 발생할 경우 바닥을 드러내는 것은 어찌 보면 극히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최근 들어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는 일이 잦아진다는 게 문제다. 해마다 봄만 되면 이곳저곳의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냈다는 뉴스가 나온다. 말이 한발빈도 10년의 저수지이지 만약 저수지에 물이 가득 차 있지 않을 경우, 예를 들어 50%의 물이 차있다면 10년이 아니라 5년에 한번 나타나는 크지 않은 가뭄이 와도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농어촌공사도 최근 들어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는 일이 잦아졌다고 밝히고 있다. 한발빈도 10년 기준의 저수지 물그릇으로는 최근 자주 나타나고 있는 가뭄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공사 측도 기후변화가 원인이 아닌가 하는 분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저수지 설계 시 한발빈도 10년이라는 기준을 정한 것은 1982년이라고 공사는 밝히고 있다. 당시‘농업 생산기반 정비 사업계획 설계기준’을 만들면서 정해졌다는 것이다. 1982년은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었던 시기가 아니다. 설계 기준을 정할 때 기후변화라는 것은 고려할 사항이 아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저수지 설계 기준을 만들면서 가뭄보다는 홍수에 더 크게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농업 생산기반 정비 사업 계획 설계 기준’을 보면 <농업용 댐의 설계홍수량은 200년 확률홍수량, 기왕 최대홍수량, 지역 최대홍수량 중 큰 값을 설계홍수량으로 하며 필댐(돌이나 흙을 완만하게 쌓아올려 만든 댐)에서는 20%를 증가시킨 유량을 기준으로 하되 붕괴에 따른 인적, 물적 피해가 크게 예상 되는 지구는 가능최대홍수량을 설계홍수량으로 한다>로 되어 있다.

저수지를 설계할 때에는 200년에 한 번 발생할 수 있는 대홍수에도 저수지 안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설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저수지를 보면 제방 한쪽에 물이 넘칠 경우 흐를 수 있는 방류 시설(물넘이 시설)이 되어 있는데 200년에 한 번 발생하는 홍수가 나도 물을 충분히 잘 방류해서 저수지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저수지 제방이 붕괴하면 하류 지역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안전에 신경을 쓴 부분일 것이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저수지 건설의 근본적인 목적은 홍수 발생 시 물을 가둬 두고 가뭄이 발생했을 때는 물을 공급하는 것이다. 200년에 한 번 발생하는 홍수 시 물을 안전하게 방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작 10년에 1번 발생할 수 있는 정도의 가뭄을 생각해 저수지 물그릇을 만든 것이 지금 시대에 적절한 것인지 짚어봐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 35년 전 기준이 지금도 타당한지도 반드시 뜯어봐야 할 것이다. 물그릇이 작으면 홍수 발생 시 물을 많이 저장할 수도 없고 가뭄 발생 시 공급할 수 있는 물의 양 또한 적을 수밖에 없다. 정작 필요할 때 제구실을 제대로 못하게 되는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 가속화될수록 기록적인 폭우가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더욱 더 극심한 가뭄이 잦아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특히 한두 해 가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비가 적게 내리면서 가뭄이 이어지는 메가 가뭄(Mega Drought)까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학계는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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