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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인천 삼형제섬을 걷다 ①

[라이프] 인천 삼형제섬을 걷다 ①
인천삼형제길
가끔은 걸어야 할 곳을 선택하는 것도 고민이다. 그리고 답사기랍시고 무언가를 쓰면서 어쭙잖은 스스로의 밑천을 드러내는 일도 고민이다. 한편으론, 그 밑천이라는 것이 가소롭기 그지없는지라, 가끔은 자판을 앞에 두고 부족함을 풀어내는 그 뻔뻔한 행위조차도 자책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 고민스럽고 자책하는 마음의 밑바닥에는 불필요한 의욕이 개입돼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내놓으려 할 때, 또는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할 때가, 아마도 그 순간일 것이다. 그러한 의욕 과잉은 결국 발걸음을 꼬이게도 하고, 또 나자빠지게도 하는 것이리라. 과유불급이야말로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해 놓은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천삼형제길
돌아보면 새삼 그렇게 중요한 것도, 또 그렇게 의미 있는 것도, 반대로 그렇게 무의미하고 하찮은 것도 없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별한 것은 그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것일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사는 일이 아니던가. 그런 이유로 정작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넘어 대상 속으로 들어가 그 대상이 간직한 내면의 속살과 마주할 수 있는 '앎'의 크기와 관찰 내지 관조, 그리고 이해의 시선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말은 그럴듯하지만 실상이야 그렇게 녹록하기만 할 것인가. 다만 부족함과 다투다 이내 고꾸라질지라도 그 다툼을 멈추지 않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만큼은 해본다. 그렇게 또, 그 다툼에서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맹렬한 추격의 의지만큼은 잃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하지만, 이마저도 두고 볼 일이다.
인천삼형제길
단순하게 살아갈 때 대담해질 수 있고, 낯선 땅과 가슴으로 만날 수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대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단순해야 한다고…. 단순하게 살아갈 때 대담해질 수 있고, 낯선 땅과 가슴으로 만날 수 있으며, 열정과 호기심을 좇아 독립심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새로운 길을 걷게 하는 힘마저도 결국 '단순하게'라는 삶의 자세에서 비롯된다는 말이다.
 
그 단순함에 약간의 용기가 더해진다면, 우왕좌왕, 우물쭈물, 흐리멍덩하게 선택의 기로에서 방황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라고 충고한다.
인천삼형제길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순간의 인식이나 깨달음만으로는 삶이 변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특히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의 경우에는) 그 인식을 자신 안에서 다독이며 체화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결국 이마저도 가야 할 길 중 하나라는 말이다. 길은 땅 위에도, 마음의 어느 지점에도 뻗어 있으니, 그야말로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고, 또 다양한 것이리라.
 
그렇게 단순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선 길이 해안 누리길인 <인천 삼형제 섬길>이다.

● '신분증 없으면 못가요.'
인천삼형제길
문제는 지나치게 단순한 마음으로 떠난 길이라, 도서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신분증을 챙기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서 망연자실해진다. 막다른 길 앞에 선 기분이 바로 이 기분이리라.
 
주말의 선착장은 인파로 시끌벅적했고, 그만큼의 줄을 서서 간신히 차례가 되었건만, 매표소 직원의 한 마디에 삼형제섬을 걸으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신분증 없으면 못가요.'
 
헐~ 동행했던 친구는 실망이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게 어쩌냐…ㅠㅠ
인천삼형제길
타고자 했던 배는 떠나고, 배 떠난 후의 매표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썰물 후의 갯벌 마냥 차라리 썰렁하기까지 하다. 그 와중에 갈 곳 몰라 멍 때리고 있는 우리 둘만이 매표소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가 안쓰럽게 보였는지 매표소 직원 왈, 신분증 사진은 있느냐고 묻는다. 왜요?
 
직원은 신분증 사진이라도 있으면 배를 탈 수 있다는 희망고문 같은 낭보를 전해준다. 그 순간 스마트폰을 폭풍 검색해 온갖 저장소를 뒤졌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더니, 가고자 하는 마음이 하늘에 닿았음인지 10여 분의 검색 끝에 구름(클라우드) 속에 살포시 숨어있던 운전면허증과 대면하는 감격을 누리게 된다. 섬으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고작 10여 분이면 도착하는 섬에 가기 위한 소동치고는 지나치게 요란스러웠던 것이다. 동행을 자처한 친구를 이제야 볼 면목이 생겼다.
인천삼형제길
배표를 손에 쥐니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다. 느긋하게 선착장을 둘러보는 여유까지 생긴다. 한가로운 바다를 거슬러 선착장으로 다가서는 배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래, 가자! 갈매기들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던지 목을 빼고 배를 기다린다.
 
배는 느릿느릿 바닷길을 걷는다. 굳이 서두르지 않더라도 가고자 한다면 속도의 문제일 뿐 결국엔 목적지에 닿게 된다는 사실을 카페리는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차라리 갈매기들만이 오락가락 부산을 떨고 분주하다. 그렇게 섬에 닿았다. 신도 선착장이다.

● 세 개의 섬이 모여 삼형제섬이 되다
인천삼형제길
인천 삼형제 섬이라 하면, 신도(信島)와 시도(矢島), 모도(茅島) 이 세 섬을 일컫는 말이다. 원래는 세 개의 섬이 별개의 섬이었지만 최근에는 각 섬을 연결하는 연도교가 놓이면서 사실상 하나의 섬이 되어 붙여진 이름이 '삼형제섬'이다.
 
인천삼형제길
섬의 길은 6월의 푸르름 속에서 산뜻한 얼굴로 도보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신도 선착장을 벗어난 길은 신도의 구봉산을 향해 뻗어 있다. 해발 178m의 나지막한 산이라 산책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더러 계절을 잊은 햇살이 한여름이라도 되는 양 내리쬐지만 신록의 푸르름이 가득한 숲은 충분히 훌륭한 그늘을 제공한다. 
인천삼형제길
한가로운 숲길이라, 느긋하게 발을 움직이기만 하면 길은 저절로 열린다. 아마도 4월의 봄날이었다면 벚꽃이 지천으로 피어 꽃사태를 경험했을 것 같은 길이다. 과거에는 임도(林道)였음 직한 길의 좌우에는 벚나무들의 기나긴 행렬이 산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를 더 갔을까. 길은 해송 숲을 지난다.
인천삼형제길
바다와 인접한 길을 걸을 때면 해송 군락을 만났을 때 유독 반갑다. 제대로 된 숲을 만난 기분이랄까? 왠지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푸근해짐을 느낀다. 주로 해안가에서 자생하는 해송은 곰솔, 또는 흑송이라고도 하는데, 풍성한 잎으로 너른 지붕같이 푸근한 느낌을 주는 육송에 비해, 해송은 줄기와 가지가 쭉쭉 뻗어 있어 날렵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을 준다.
 
그렇게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공간이 내어주는 원근감(遠近感) 때문에 사진가들이 해송 숲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특히나 오랜 세월 동안 더께가 더해진 소나무의 표피는 그 자체만으로도 연륜과 지난 세월의 풍상(風霜)이 깃들어 있는지라, 아무렇게나 찍어도 그림이 된다.
 
해송 숲을 지난 지 오래지 않아 크리스마스트리를 닮은 넝쿨을 만난다.
인천삼형제길
 
무심코 지나가려는데 동행한 친구가 이 넝쿨을 보고 반가워한다. 으름넝쿨이란다. 가을이면 열매가 열리는데 그 열매가 으름이고, 바나나를 닮아 일명 '조선바나나'라고 불리기도 한다는데, 친구의 말에 의하면 그 맛이 일품이란다. 가을에 다시 와야 하는 건가?
 
산을 내려오자, 도로에는 자전거를 타고 섬을 일주하는 행렬이 지나간다.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질주가 눈부시다.
 
● 시도를 걷다
인천삼형제길 12
썰물의 갯벌에 덩그러니 놓인 배 너머로 신도와 시도를 잇는 연도교가 보인다.
 
신도와 시도는 예전에는 완전 별개의 섬으로, 작은 배를 이용해 왕래를 하거나 간조 시에는 징검다리를 이용해 건너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1955년에 반(半)잠수 연도교를 건설하여 왕래가 자유로워졌고, 그러다가 마침내 지금의 연도교가 2004년에 착공하여 그 이듬해 완공이 되었다고 한다.
인천삼형제길
인천삼형제길
연도교를 걸으며 바라본 바다는 하늘빛이 투영되어서인지 하늘빛과 물빛이 구별되질 않을 만큼 푸르러 보인다. 그 순간 점점이 놓여있는 작은 섬들 너머로 공항을 벗어난 비행기가 창공을 가르며 솟구쳐 오른다. 새삼 이곳이 인천공항의 지척임을 깨닫게 된다.
 
시도를 들어서면 막막하리만큼 긴 둑길이 나타난다. 둑길에는 해당화를 심어 놓았다. 그래서 길의 이름도 해당화 꽃길이다.
인천삼형제길 14
인천삼형제길 14-1
길은 그저 아득하다. 방파제 역할을 하는 둑을 경계로 한때는 바다를 품은 갯벌이었던 땅은 농지로, 염전으로 변해 있었다.
 
그 길 중간에 시도염전이 있다. 멀리서 바라볼 땐 모내기를 준비하느라 물을 댄 논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모습을 드러내는 염전과 소금창고. 소금창고는 어딜 가나 비슷한 모습이다. 넉넉하면서도 푸근한 아낙의 뒤태마냥 전형적인 소금창고의 모습을 보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염전이 맞다.
 
● 바닷물은 햇살을 받아들이고, 바람에 제 몸을 말려 소금이 된다
인천삼형제길
시도 염전은 백령도, 강화 석모도와 더불어 인천 지역 3대 염전 중 하나란다.
 
소금밭에는 햇살을 받아들이고, 바람에 제 몸을 말려, 머지않아 새하얀 소금으로 다시 태어날 바닷물이 그득하다. 그렇게 바닷물은 인간의 기다림 속에서 순백의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인천삼형제길
소금을 만드는 과정은 먼저 바닷물을 저수지에 모으고, 이어서 난치(제1증발지)로, 다시 누테(제2증발지)로 이동시키면서 염도를 높여나간다. 20일~25일이 걸리는 소금 생산 과정에 어쩌다 비라도 오면, 소금물을 저장하는 저장고 역할을 하는 해주(海宙:함수창고)로 우르르 몰려갔다가, 날이 갠 다음에야 다시 해주에서 나오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마지막 종착지인 결정지(結晶地)에서 바닷물은 새하얀 꽃을 피우고, 그렇게 소금이 되는 것이다.(*전라남도 홈페이지)
인천삼형제길
소금밭은 요즘 같은 6월의 메마른 햇살이 반가울 것이다. 머지않아 소금창고는 가득가득 채워지는 소금들로 괴로운 신음을 토해낼지도 모를 일이다.
 
짠 내음이 아득히 염전을 떠돌다 이내 산을 넘어 간다. 저 산 너머는 나 역시 가야 할 길이다. 바람을 따라 또 길을 재촉한다. 

● 갈림길은 언제나 선택을 강요한다
인천삼형제길
긴 둑길을 지나자, 길은 양편으로 나뉘어 선택을 강요한다. 수기 해변 방향과 개질 방향이다. '개질'이라…. 이름이 별나다. 경상도식으로 억지로 유추해 보면 '개'는 갯가, '질'은 '길'의 경상도식 발음이니, 대충 '바닷길'이라고 번역이 되는데, '바닷길'은 추정일 뿐, 실제 그 이름이 담고 있는 원래의 뜻은 알지 못한다.
 
개질은 밀물이 들면 물에 잠기는 잠수형 바닷길이다. 500여m 남짓한 길은 오가는 이 없는 고요 속에서 뜨거운 햇살을 튕겨내며 자못 거만하게 뻗어 있었다. 뻥 뚫려 있는 길이니 호기심을 자극하는 분위기나 산길이 주는 아늑함은 아예 기대를 말아야겠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걷는 이에게 특별한 느낌을 선사하지 않을까 싶다.
인천삼형제길
대체로 길게 뻗어있는 바닷길(특히 둑길)에서 경험하는 느낌 중 하나는 무료함이다. 처음에는 길게 일자로 뻗어있는, 저 멀리 아득히 끝이 보이는 길에도, 또 다른 끝이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지만, 걷노라면 이내 따분해진다. 오늘같이 햇살이 작렬하는 날엔 더 그렇다.
 
개질의 끝은 바다가 가로막고 있었다. 다시 돌아나가야 한다. 그나마 해안의 소나무가 드리워주는 그늘의 도움으로 수기해변으로 간다.
인천삼형제길

 
** 삼형제섬 가는 길
 
<대중교통>

공항철도 운서역에서 20번 버스 또는 영등포역에서 301-1번 버스, 인천역에서 307번 버스, 김포공항에서 리무진 버스 607번 버스를 이용해 삼목선착장 하차.
 
<자가용>

삼목선착장 주차장(주차비 무료)을 이용하면 된다. 
     
▶ [라이프] 인천 삼형제섬을 걷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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