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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남북 체육 교류를 바란다면 '축구 경평전 부활'은 어떻습니까?

최근 북한 축구계 변화…AFC 무대서 경평전 부활 가능성

[취재파일] 남북 체육 교류를 바란다면 '축구 경평전 부활'은 어떻습니까?
 

"남북 단일팀, 아무도 찬성 안 합니다"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


● 외면받는 평창 올림픽 단일팀? 2030 월드컵 공동 개최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이 지난 20일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추진 의지를 밝히자,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포털사이트 댓글이 여론의 정확한 풍향계는 아니지만 부정적인 시선이 많습니다.

당사자인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 선수들은 황당하다는 입장입니다.
(왼쪽부터) 한수진, 조수지, 박종아 선수

"평창 올림픽 1승에 대한 꿈이나 목표에도 지장이 있지 않을까요." (한수진)

"북한 선수들이 와서 새로운 환경에서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 조수지)

"이러려고 아이스하키를 했나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하루 이틀 준비한 것도 아니고..." (박종아)


평창 올림픽 출전만을 꿈꾸며 피아니스트 길을 포기한 한수진,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나 홀로 서울 유학'을 해야 했던 박종아 등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성장기는 영화(국가대표2, 2016)로 제작됐을 정도로, 그야말로 극적입니다. 단일팀이 되면 이제껏 땀 흘려온 선수들 가운데 적어도 10명은 올림픽 꿈을 이룰 수 없습니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성장기는 영화로 각색될 만큼 극적이다.
스포츠를 활용해 꽉 막힌 남북 관계에 숨통을 터 보려 애쓰는 정부 입장에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주길 바랄 수도 있겠지만, 무엇을 위한 희생이냐는 반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 "일회성 이벤트, 남북 관계 개선에 도움 안 돼"

아무래도 명분이 부족합니다. 1991년 4월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 6월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 등에서 단일팀을 구성했을 때, 남과 북이 하나 된 모습을 보며 한반도 전역에 감동의 물결이 일렁였던 기억이 생생하지만 모두 일회성 이벤트에 그쳤고, 그 뒤로 남북 관계가 개선됐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선의는 이해할 만합니다. 지난 12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아니 인판티노 FIFA(국제축구연맹) 회장과 만나 "2030년 남과 북, 중국과 일본 동북아 4개국이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남과 북이 스포츠를 함께 하며 평화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뜻을 일관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판티노 FIFA 회장을 만나 2030년 FIFA 월드컵 공동개최를 희망 의사를 전했다.
이에 대해서도 반응은 냉랭합니다. "단독 개최를 희망하는 중국 혹은 일본이 응하겠냐?"는 현실적인 의심은 제쳐두더라도 "냉전 시대에나 통하던 논리", '철학의 빈곤'이라는 격한 반발도 나옵니다.

북한이 거듭된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평화를 위협해 국제적 제재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데다,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최근 사망한 마당에 남북 체육 교류는 '한 마디로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얘기'라는 겁니다. 어쨌든 23일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이 방한하면 남북 체육 교류는 어떤 식으로든 논의되겠지요. 
2016 리우올림픽 당시 기자와 만난 북한의 장웅 IOC 위원
● 경평전 부활…지속 가능한 남북 체육 교류 가능성

개인적으로 정치 논리에서 벗어나 남북 체육 교류는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축구 동아시안컵, 아시안컵 예선, 올림픽과 월드컵 등에서 북한 대표팀과 선수를 취재하며 숱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민족의 동질감을 확인할 수 있었고, 남북 선수들의 우정은 뭉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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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평창올림픽을 8개월 앞두고 진행되는 지금의 논의는 조금도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축구 경평전 부활’을 제안합니다.
경평전은 일제강점기 민족의 단합과 극일의 저항정신을 키운 본보기로 평가 받았다.
경평전은 서울과 평양을 대표하는 축구팀이 두 도시를 오가며 벌인 친선 축구 경기로 일제강점기였던 1929년 시작해 1946년 중단됐습니다. 광복 70주년이었던 2015년에도 정부가 문화 체육 교류의 일환으로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불발됐습니다.

그때보다 남과 북의 관계는 나아진 게 없지만 가능성은 분명 커졌습니다.

북한 축구가 변했습니다. 적극적으로 국제 무대에 나서고 있습니다. 북한축구협회는 여자 아시안컵 예선(지난 4월)과 남자 23세 이하 아시아선수권 예선(7월 예정)을 유치했습니다. 남자대표팀 사령탑은 노르웨이 출신 예른 안데르센 감독에게 맡겼습니다.

과거 월드컵 최종예선에선 태극기 게양, 애국가 연주 등을 거부해 우리 대표팀 평양 원정이 무산되기도 했지만 지난 4월 여자 아시안컵 예선에는 사상 처음으로 이를 모두 허용했습니다. 10여 명의 국내 취재진이 그 모습을 현장에서 취재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했습니다.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 게양된 태극기
AFC(아시아축구연맹)컵에 북한 축구팀이 참가한 것도 큰 변화입니다. AFC컵 대회는 K리그 상위권 팀들이 참가하는 AFC 챔피언스리그보다 한 단계 낮은 클럽 대항전입니다. 북한이 아시아 축구 클럽 대항전에 나온 건 26년 만입니다. 평양을 연고지로 삼은 두 팀, '4,25'와 '기관차'가 참가했는데 조별예선에서 나란히 2승 2무를 기록했습니다.

● 정몽규와 한은경, AFC를 움직인다면?

AFC컵이나 챔피언스리그에서 남과 북 축구팀이 격돌한다면 다른 그 어떤 이벤트보다 지속적이고 효과가 큰 체육 교류가 될 수 있습니다. K리그 FC서울과 평양 4.25의 대결은 '경평전의 부활'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현실적 제한은 있습니다. 먼저 K리그 팀들이 AFC컵에 참가할 수 있도록 환경이 바뀌어야 합니다. 현재 K리그 1위와 2위, FA컵 우승팀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직행합니다. 플레이오프를 거치는 팀까지 챔피언스리그에는 국내 팀 가운데 최대 4팀이 참가할 수 있지만 AFC컵에는 나서지 않습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AFC 부회장으로서 AFC 집행위원회에 참석하는 만큼 적극적으로 아시아 축구계를 설득한다면 K리그 클럽의 AFC컵 참가는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북한 축구팀이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할 조건을 갖춘다면 더 수준 높은 대결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북한 축구팀들이 AFC 클럽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합니다. 모든 선수를 대상으로 프로 계약을 진행하고, 축구단을 법인화 하는 등 까다로운 요건을 갖춰야만 하지만 북한 축구계 의지가 있다면 가능합니다.

한은경 북한축구협회 부회장이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한 부회장은 AFC 집행위원으로 최근에는 FIFA 평의회 위원 출마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한은경 북한축구협회 부회장 겸 AFC 집행위원
정몽규 회장과 한은경 부회장은 동아시안컵이나 AFC 총회, 집행위원회 현장에서 만나면 늘 반갑게 인사합니다. 같은 언어를 쓰니 소통에 제약이 없습니다. 두 사람이 뜻을 모으면 해마다 꾸준히 경평전을 볼 수도 있습니다. AFC 주관 국제 대회에서 만나면 불필요한 정치 논리에 휘말릴 가능성은 더 줄어듭니다.

FC서울 팬들의 평양 원정 응원, 평양 시민의 서울 방문까지 이어진다면 진정한 통일의 초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스페인 내전의 역사가 녹아있는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라이벌전 ‘엘 클리시코’ 못지않은 국제적 관심이 쏠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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