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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해맑던 청년은 이제 사진으로만…' 미국 대학생 웜비어의 죽음

정윤식 기자 jys@sbs.co.kr

작성 2017.06.20 13:48 수정 2017.06.20 14:20 조회 재생수17,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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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리포트+] 해맑던 청년은 이제 사진으로만… 미국 대학생 웜비어의 죽음
"우리의 아들 오토 웜비어가 끔찍한 학대로 사망했다"

북한에 붙잡혀 있다가 17개월 만에 혼수상태로 풀려났던 미국 대학생 22살 웜비어가 결국 오늘(20일) 숨졌습니다. 꿈에 그리던 고향인 미국 신시내티로 돌아온 지 엿새만입니다. 가족들은 고문과 학대가 웜비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웜비어가 두 눈으로 가족도 보지 못한 채 끝내 숨지자 미국인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잔혹한 북한 정권"이라며 격한 말을 쏟아냈습니다.

■ 22살 미국 청년은 왜 북한에 억류당했나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3학년이던 웜비어는 지난해 1월 영 파이어니어 투어스(Young Pioneer Tours)라는 여행사를 통해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영 파이어니어는 중국 시안에 본사를 둔 북한여행 전문 여행사로 미국과 유럽 청년들을 대상으로 북한여행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미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평양 곳곳을 여행하던 웜비어는 그러나 평양 양각도 호텔에서 전격 체포됩니다. 호텔 안에 있는 정치 선전물을 훔치려 했다는 죄목이었습니다. 웜비어는 체포 한 달 뒤 북한 당국이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호텔에서 선전 전단을 훔친 것이 맞다"고 울면서 자백하며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자백하며 선처 구한 웜비어* 오토 웜비어 / 2016년 2월 기자회견
"저는 양각도 호텔에서 관계자 외 출입금지 지역에서 정치적 구호물을 떼어내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북한 국민과 북한 정부에 사과합니다. 용서를 구합니다. 제 인생을 구할 수 있도록 어떤 방법으로든 도움을 청합니다. 저는 북한 정부와 국민 여러분들의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북한은 웜비어에게 국가전복기도죄라는 혐의를 적용해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했습니다. 웜비어가 억류되자, 미국 정부는 북한에 석방 협상을 제의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건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 반가량의 시간이 흐른 지난 5월 북한은 갑자기 미국 측에 연락을 취합니다.

억류 중인 미국인 4명과 관련해 협상을 원한다고 통보한 겁니다. 조셉 윤 미 국무부 특사가 뉴욕에서 주유엔 북한 대사를 만나게 되고, 웜비어와 관련된 충격적인 소식을 접합니다. 웜비어가 여행을 떠날 때와 같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 '식중독' 때문이라는 北…미 언론 "고문당했다"

웜비어의 상태를 보고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조셉 윤 특사를 단장으로 대표단을 평양에 급파합니다. 웜비어가 혼수상태에 빠진 걸 직접 확인한 미국 의료진은 인도적 차원의 조건 없는 석방을 요구합니다. 북한은 웜비어를 석방합니다. 하지만 건강하게 여행을 떠났던 22살 대학생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삭발하고 코에 호스를 꽂은 채 생명유지장치에 의지해 들것에 실려 비행기에서 내리는 웜비어의 모습이 공개되자 미국민들은 분노했습니다. 웜비어가 심각한 뇌 손상에 따른 식물인간 상태라는 의료진의 발표까지 나오자 분노는 커졌습니다.

북한 당국은 웜비어가 지난해 3월 수면제를 먹고 의식불명상태가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식중독의 일종인 '보툴리누스중독증'에 걸린 뒤 수면제를 먹었다가 의식을 찾지 못했다는 겁니다.
미국 신시내티 주립병원 측의 주장그러나 미국 의료진은 북한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습니다. 미국 신시내티 주립병원 측은 "웜비어는 광범위한 뇌 조직 손상을 입은 상태로 식중독에 걸렸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며 "대개 이런 경우는 심폐 정지로 인해 뇌에 충분한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서 일부 뇌 조직이 괴사해 발생한다"고 말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미 고위 관리를 인용해 "웜비어가 북한에 구금돼 있는 동안 반복적으로 구타를 당했다는 내용의 정보 보고를 미 행정부가 최근 입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웜비어가 가혹 행위를 받아 사망했을 가능성을 시사한 겁니다.

■ 북-미 관계 경색국면 이어질 듯

웜비어가 숨지자 가족들은 "아들이 최악의 정권으로부터 짐승 같은 취급을 당했다는 걸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호소했습니다. 미국 언론들도 웜비어 사망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며, 미국의 대북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웜비어 가족들의 분노웜비어가 북한 당국의 가혹 행위로 위중한 상태에 빠진 것으로 드러날 경우 여론이 들끓고, 트럼프 정부가 초강경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 성명을 통해 "희생자를 애도하면서 미국은 다시 한번 북한 정권의 잔혹성을 규탄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웜비어 석방을 계기로 미국과 대화에 나설 수 있을 거라 내심 기대했을지 모르나 현실은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듯합니다.

(기획·구성: 정윤식 / 디자인: 안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