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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저작권과 사행성 사이, 인형뽑기의 딜레마

한승환 기자 hsh15@sbs.co.kr

작성 2017.06.10 20:03 수정 2017.06.13 17:26 조회 재생수2,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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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보신 분도 있으시겠지만 목동 SBS 사옥 1층 로비에는 커다란 인형뽑기 기계가 있습니다. 웬만한 어린이 키만 한 오리 캐릭터 인형이 들어있는데, 워낙 손재주가 부족한 저는 다른 사람들이 인형을 뽑는 모습을 그저 부러워하며 바라볼 뿐입니다. 그런데, 그 큰 인형을 뽑아도 가져갈 수 있는 건 자그마한 인형입니다. 처음에는 방송사 로비에 기계를 놓아두고 너무 야박한 것 아니냐고 생각했는데, 오해였습니다.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소비자 가격 5천 원을 넘는 경품을 제공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었던 겁니다. (SBS 인형뽑기 기계 옆에도 이런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거리에 있는 인형뽑기방에 가보면 주로 알록달록하고 귀여운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 인형이 들어있는 기계가 많습니다. 이 인형의 소비자 가격이 얼마일까요.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20cm 안팎이라면 당연히 5천 원이 넘어갑니다. 인형뽑기방에서 대량으로 구매하면 싸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다시 살펴보지만 법령에는 ‘소비자 가격’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업주가 얼마에 사오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뜻일 겁니다.

이 지점에서 딜레마가 생깁니다.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좋은 인형을 가져다놓고 싶지만 법령 때문에 할 수가 없습니다. 정품만 취급하는 곳이라는 팻말을 내건 인형뽑기방에 가서 라벨을 확인해봤는데, 정품 인형이 맞았습니다. 그렇지만 5천 원 제한을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광고하는 셈이 되어 버립니다. 무려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관세청이 대규모로 적발한 가짜 인형들은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가짜 인형이라서 조악한 수준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압수된 인형들을 직접 보니 언뜻 봐서는 구별해낼 수 없었습니다. 만져보면 촉감의 차이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가짜 제품을 들여놓으면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일입니다. 

인형뽑기방 업주들은 5천 원 제한은 10년 전인 지난 2007년에 정해진 뒤로 바뀐 적이 없다며, 현실을 고려해 제공할 수 있는 경품 금액을 올려달라고 정부에 촉구하고 있습니다. 일견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해당 법령이 인형뽑기 기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자칫 사행성 게임을 조장하는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관세청이 지난 4월부터 약 한 달 동안 집중 단속을 통해 압수한 인형은 52만여 개나 됩니다. 샘플을 뽑아 검사한 결과이기는 해도 일부 인형에서는 유해물질도 검출됐습니다. 이런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업자는 가짜 인형을 만들어 밀수하고, 당국은 단속하는 일이 끝없이 반복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5천 원어치를 넘지 않는 작은 인형만 취급하면 될 일이고, 실제로 정품 업체들도 작은 캐릭터 인형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만 가뜩이나 뽑기 확률 때문에 시끄러웠던 인형뽑기방 업계에 또 하나의 큰 악재가 드리워진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사진=SBS 8뉴스 화면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