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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기억에 남는 일본 신문의 독자 투고들

[월드리포트] 기억에 남는 일본 신문의 독자 투고들
아침마다 일본 신문들을 읽습니다. 주로 일본정치 뉴스, 한일관계 뉴스, 북한 뉴스 등을 주의깊게 읽어봅니다. 그렇게 재미는 없습니다. 길거리에서 보는 보통 일본인들의 일상과 생각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일본인들의 생활과 고민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신문 투고란입니다. 최근 일본 인터넷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신문독자의 투고 글들을 소개합니다.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본인들의 고민과 생각을 한 번 살펴보시죠. (글상자 안에 전문 번역)
올해 3월20일 아사히 신문 '왜 아빠는 그렇게 회사에 오래 있어?'
아빠는 아침 내가 일어날 때쯤 집을 나가 밤에 제가 잘 때쯤에 돌아온다. 그래서 학교 행사에는 엄마가 갔고, 나도 그것에 특별히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친구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와의 차이에 대해 조금씩 고민을 하게 됐다. 친구 아빠는 휴일에 함께 쇼핑도 하고, 집에서 함께 식사도 한다. 난 그런 경험이 없다. 왜 아빠는 그렇게 회사에 오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 결국 아빠에게 물어봤다. "뭐? 그건 중요한 가족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서야" 아빠의 대답을 듣고, '그건 틀렸다'고 생각했다. 아빠도 중요한 가족의 일원인데, 아빠의 생활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 증거로 아빠의 얼굴은 늘 피곤에 찌들어 새파랗다. 광고회사 '덴츠'에서 여성 사원이 가혹한 노동환경을 참지 못해 자살을 해버리는 사건도 있었다. 정부도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근본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어른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일본은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어른이 돼서 일할 때 아이가 '왜 엄마는 그렇게 많이 일해?'라고 묻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본 인터넷에선 '아이들은 이렇게 느끼고 있구나'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1980년대 버블시기 이상형에 불과하다' '회사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더 이상 미담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등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도한 근로시간은 우리나라가 더 심각합니다. 2015년 OECD 기준으로 일본의 연간 근로시간은 1719시간, 한국은 2113시간입니다. (OECD 평균 1766시간)

일본은 주간 근로시간 60시간 이상을 근로자 건강에 위험한 수준으로 봅니다. 그래서 이 비율을 현재 8.2%에서 2020년까지 5% 이하로 낮출 예정입니다. 주간 법정 근로시간을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하루 빨리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물론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선 근로 분위기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느슨한 근무는 안 됩니다. 일본의 경우 아직도 상당수 직장에서 개인 휴대전화기 사용이 금지돼 있습니다. 일에 집중하라는 겁니다.
2015년7월21일 아사히 신문 '일본은 사랑할 수 없는 나라가 되어 간다'
우리들은 헤세이 시대(1989년 이후)에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 모든 버블이 터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갑자기 '유토리 세대'(입시부담 감소를 이유로 교육 내용 축소가 이뤄졌던 학생들)가 되었고,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다. 중학교 때는 리먼 쇼크가 왔다. 고교생 때는 동일본 대지진을 만났다. 대학생 때는 2번째 아베 내각이 생겼다. 그리고, 대학원생 때가 된 지금 내 나라는 70년 전의 교훈, 그리고 민주주의와 이별을 고하고 있다. 

우리 세대는 그냥 버리는 '장기의 말'로서 세상에 태어난 것인가? 저출산 고령화 시대인 지금 우리들은 '유토리 세대는 안돼!'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계속 늘어나는 고령자와 기울어지는 경제를 지탱해나가야 한다. 젊은이들의 생활은 보장받지 못 하는데, '많은 아이를 낳으라'라고 한다. 권력자는 서민의 생활도, 전장의 실상도 모르는 것일까? 그런 사람들에게 지배되고 있는 국가를 우리들이 왜 사랑해야 하는가? 도대체 뭐로부터 일본을 지키는 것일까? 뭐가 일본을 노리고 있는 것일까? 적이 노리고 있다면 권력자는 무력이 아니라 외교로서 국민을 지켜야 할 것이다. 사랑하지 않게 된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것인가?

좀 예전 글이죠. 아베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한 안보 관련법을 통과시키려고 하던 시기입니다. 이에 반대하는 일본 대학원생의 글입니다. 정치적 견해가 들어있기는 하지만, 일본 젊은이들의 좌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일본 젊은이들은 취업이 잘 되지 않냐?"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만, 이들도 고민이 적지 않습니다.

1995년부터 2016년까지 22년간 일본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0.95%입니다. 2007-2016년 10년간은 0.49%입니다. 일본 젊은이들은 경제가 좋아본 경험이 없습니다. 조금 벌고, 조금 쓰면서 허덕이며 사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일본 1인 가구 중 금융자산 '제로(0)'의 비율

지난해 일본 금융홍보중앙위원회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의 48.1%가 저축 등 금융자산이 '제로'(0)라고 답했습니다. 20대 1인 가구는 무려 58.3%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어떤가요? '젊은이들의 생활은 보장되지 않는데, 많은 아이를 낳으라고 한다'는 위 글에 우리 젊은이들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요?
2016년8월24일 마이니치 신문 '게임도 공부의 일종'
부모가 아이들의 게임 시간을 정해주는 가정이 많을텐데, 난 장시간 게임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이유는 현실에선 없는 일이 게임 속에 있어 엄청 재미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게임 속 모르는 한자를 외울 수 있다. 스토리가 있는 게임은 독해력을 몸에 익힐 수 있다. 공부시키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은 잘 알지만, 게임도 공부의 한 종류라고 생각해도 된다고 본다.

오사카 초등학생의 글입니다.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게임에 빠진 어린이들이 적지 않군요. 일본 신문에는 어른뿐 아니라 초중고 학생들의 투고가 많이 게재됩니다.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논리력을 키워주기 위해 권장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신문들은 별의 별 투고 글을 다 받아줍니다. 특히 요미우리 신문의 인생상담 코너 글을 보면...'에로 배우의 토크쇼 행사 티켓을 엄마가 몰수했는데, 어떻게 설득하면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19살 남자 대학생)' '아내와 딸이 있는데도, 딸 나이의 20대 여성을 좋아하게 됐습니다.(40대 회사원)' 등 우리나라에선 절대 게재될 수 없는 글들이 올라옵니다.
올해 1월14일 아사히 신문 '소녀상에 눈물, 자살특공 훈련생이었던 나'
옛 일본군의 위안부를 상징하는 동상의 사진을 신문에서 보고, 눈에 띈 것이 있었다. 한국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에 시민단체 등이 세운 상. 그녀는 소녀였다. 가녀린 몸과 마음의 16살 소녀. 자살 특공대의 예비 비행 훈련생으로서 죽으러 떠났던 소년, 그 당시의 나와 같은 나이다. 저절로 눈물이 솟아났다. 옛 만주에서 만주철도원의 자식으로 살았던 나. 나 자신도 일본군이자 일본인으로서 일본인들의 조선인에 대한 무자비한 대우와 차별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 안에 던져진 소녀들의 비명이 나에게 들리지 않을 리가 없다. 나는 눈물을 흘린다. 난 자살특공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년들에 '죽으라'고 명령한 무자비한 어른들을 사과하지 않는다. 죽으면 야스쿠니에 합사되니 '잘 죽었다'고 칭찬한다. 우리는 깜깜한 어둠 속 고갯길에서 굴러 떨어지는 것 같은 절망과 공포 속에 있었다. 조선민족을 멸시하는 일본인에 대해 소녀들이 느꼈던 어둠의 공포. 민족도 입장도 다르지만, 그 공포는 알고 있다. 우리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모른 체했던 권력자. 지금 아베 정권의 권력자들은 소녀상에 반감을 드러낸다. 여성에 대해 반대로 사과를 해야 함에도. 이런 일본인이 좋은 것인가?

이런 글을 기고하면 우익단체들이 가만있지 않죠. 개인정보와 사진을 완전히 공개하고, 신문사에도 항의 전화가 쏟아집니다. 그걸 알고도 기고를 하고, 신문사는 게재를 하는 것이죠. 물론 보수적인 산케이 신문에는 정 반대 의견들이 올라옵니다. 이런 글을 기고하는 일본의 양심 세력들이 힘을 얻어야 하는데, 실제를 그렇지 못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올해 4월17일 아사히 신문 '두 명의 딸, 우리가 죽였다'
'필리핀에서 전사. 장례식에 참가를...' 종전 이듬해 간호사양성학교 때 동급생의 비보가 일본 적십자사로부터 왔다. 1943년 가을 조기졸업까지 함께 공부한 친구. 동급생의 소식을 찾고 있었던 나는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그녀와 전쟁터에서 함께 있었던 동급생 5명과 만날 수 있었다. 이야기는 처절했다. 미군에 쫓겨 환자를 끌고 정글로 도피행. 뱀 도마뱀, 나무 열매 등 뭐든지 먹었다. 영양실조와 이질로 행군에서 쳐진 사람들은 크레졸을 주사해 목숨을 빼았았다. 그녀도 말라리아로 약해진 상태. '걸을 수 있으니 주사하지 말아요'라며 애원했고, 친구 5명의 도움도 받았지만, 결국 군의관은 '내가 주사를 놓는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어쩔 수 없다면 우리 손으로 하겠다'고 결심. 나무 그늘 아래에 몸을 기대고 '조금 쉬자'고 한 뒤 학생시절처럼 6명이 나란히 누웠다. 안심하고 있던 그녀가 잠들자 한 명이 위에 올라타고, 4명이 팔다리를 눌러 주사를 놓았다고 한다.

'우리가 죽였습니다.' 5명은 부모에게 사과했다. 엎드려 울던 아버지는 얼굴을 올려 '고맙다. 딸은 여러분 덕분에 일본에 돌아올 수 있었다'며 머리를 떨구었다. '걸을 수 없는 딸이 그대로 남겨졌다면 생명의 한계에서 친구와 부모를 불렀을 것이고, 그런 것(동료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참을 수 없죠.' 5명이 소중하게 갖고 돌아온 그녀의 종군수첩에는 가쓰동, 오야코동과 음식 이름이 쭉 써있었다. 맨 마지막에는 '엄마가 해준 겐치우동'이었다.

93살 할머니가 기고한 글입니다. 전쟁 관련 글은 보통 애국심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지만, 이 글처럼 전쟁 경험만을 담담하게 전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딸을 살해한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모습은 굉장히 일본적이지 않나 합니다.

전쟁경험 글은 일본 내 개헌 움직임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20년 평화헌법 개정을 목표로 하고 있죠. 여당인 자민당은 올해 안에 개헌 초안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전쟁의 잔혹함을 전해 일본이 전쟁가능국가로 바뀌지 않도록 하려는 80,9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마지막 뜻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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