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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윤석열호 출범…새 정부에서 받은 숙제

[취재파일] 윤석열호 출범…새 정부에서 받은 숙제
윤석열 검사의 서울중앙지검장 임명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 수석의 발표에 이어 나온 기자들의 탄성은 의아함과 놀라움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 것이다.

이전 이영렬 검사장보다 무려 다섯 기수나 아래인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을 시키기 위해 당초 고검장급인 중앙지검장 직급을 검사장급으로 내렸다는 분석도 과언이 아니다. 국정원 댓글 사건 항명파동 이후 그동안 전국 고검을 떠돌며 와신상담, 절치부심했던 윤석열 검사는 지난 22일 푸른 넥타이를 매고 중앙지검 청사로 출근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윤석열 지검장의 운명은 박영수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임명되면서 어느 정도 예상되었지만, 본인도 문재인 정부가 이 정도 자리에 자신을 중용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왜 윤석열 검사를 이 자리에 앉힌 것일까?

우선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임명은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정농단 세력을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본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외부에 알리는 시그널이다. ‘현직 대통령을 수사해 구속까지 한 검찰을 왜 믿지 않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박 전 대통령 구속기소는 사건의 결과일 뿐이다.

지난해 봄부터 언론, 국회를 중심으로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검찰은 수사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수사의지를 보이지 않다가 시민단체 고발이 들어오자 해당 사건을 형사부에 배당했다. (특정부서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혹자의 말을 빌리면 그야말로 처 박았다.)

하지만 태블릿PC가 등장하고 박 전 대통령의 대국민사과가 나오면서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니까 부랴부랴 특별수사본부를 만들었다고 현 정부는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정윤회 사건부터 이미 최순실의 존재를 알고 있던 검찰이 계속 정권 눈치를 봐 가며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봤을 수도 있다.

반면 특수본 수사를 이어받아 출범한 특검은 전 국민의 성원을 입고 파죽지세로 수사를 이어갔고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시켰다. 블랙리스트 수사로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까지 구속 기소했다. 이런 가운데 전국적으로 이어진 촛불 정국 속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됐다. 이런 결과 속에서 현 정권은 박 전 대통령을 수사한 두 주체 가운데 검찰보다는 특검을 믿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
촛불로 대표되는 국민의 열망을 바탕으로 성립된 문재인 정부가 정부 출범과 함께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정권 성립의 정당성이다. 그 정당성이란 국정을 마음대로 농락한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와 박근혜 정권의 부패범죄가 단죄 받아야 성립이 가능하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가 무죄라면 그야말로 지난 7개월 이상 온 나라를 헤집어 놓은 이 사건은 정치권과 언론이 선동해 만들어 낸 정치 공작이라고 반대편에서 떠들어 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태극기 집회로 대표되는 이들은 다시 거리를 나올 것이다. 심각한 국민분열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정권이 검찰보다 신뢰하는 특검에서 수사팀장으로 해당 수사를 맡아온 윤석열 검사야말로 지금 자리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는 건 그다지 놀랍지 않다. 윤영찬 수석도 윤 지검장을 임명하면서 "최순실 게이트 추가 수사 및 관련 사건 공소유지를 가장 원활히 수행할 적임자"라고 말했다.

윤 지검장의 최우선 과제는 박 전 대통령의 뇌물사건에 대해 법원에서 유죄를 받아내는 것이다. 기술했듯 이는 한 부패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넘어 '새 정부 출범의 정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법원 판결로 흔들리거나 허물어지는 건 치명적이다. 서울중앙지검장이 특별수사본부장을 겸임하는 것으로 보면 문재인 정부는 윤석열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이 아닌 특별수사본부장에 임명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수도 있다.

법원 주변에서는 특검에서 기소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이 심상치 않다는 말이 적잖게 들린다. 재판에서 특검이 삼성 변호인단에 계속 밀린다는 말도 있고, 1심 재판부라는 한계 외에는 유죄가 나오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따라서 윤 검사장 임명으로 항상 묘한 긴장관계에 있었던 역대 특검과 검찰의 관계와 달리 보다 공소유지 협조가 긴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최순실과 관련된 추가 수사와 함께 삼성 등 수사를 통해 압박에 나설 수도 있다. 또 최순실의 유일한 약점인 정유라를 송환하기 위해 법무부와 함께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문재인 정권은 창출하는 데 도움을 줬지만 이른바 '개국공신'은 아니다. 그저 맡은 바 소임을 다해 열심히 수사한 결과가 정권 창출에 기여한 상황이 됐다. 하지만 이제 윤 지검장은 광의의 문재인 정권 사람이 되어 버렸다. 결국 윤 지검장은 이제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문재인 대통령의 책 ‘운명’의 표현을 빌자면 정부의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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