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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음주 '갑질' 조합장은 그 뒤 어떻게 됐을까?

[취재파일] 음주 '갑질' 조합장은 그 뒤 어떻게 됐을까?
▶ [단독] "자식 묻어버려"…조합장의 도 넘은 '갑질'

농협에서 채권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을 자신의 운전기사로 비공식 발령 낸 조합장.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조합원 경조사에 그 직원에게 운전을 시킨 조합장. 가족 모임을 위해 주말 하루만 쉬겠다던 직원에게 음주 상태에서 폭언과 폭행을 가한 조합장. 지난 1월 21일 해당 조합장에 대한 보도 이후 많은 시청자들이 궁금해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그 조합장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말이죠. 지금부터 그 뒷얘기가 시작됩니다.

● 농협중앙회, "해당 조합장 직무 정지 6개월"

조합장 A씨가 직원 차 모 씨에게 퍼부은 욕설을 들어보면 ‘갑질’도 그런 ‘갑질’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갑질’의 속살을 들춰보니 불법의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A씨가 차 씨에게서 단지 용서 받고 끝낼 일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농협중앙회는 비교적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지난 2월 징계위를 열고 A씨의 직무를 6개월 동안 정지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죠.

임명직이 아닌 선출직에 대해 그 같은 조치를 취한다는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제 아무리 민선으로 뽑혔더라도 잘못한 게 명백하다면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셈입니다. A씨가 “6개월 직무 정지는 부당하다”며 재심을 청구했고, 오늘(23일) 재심위가 열린다고 하는데 농협중앙위가 팔이 안으로 굽는 결정을 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차 씨는 원래의 업무로 복직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손수레와 상자를 정리하는 일에서 농협의 한 작은 마트 점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차 씨는 얼마 전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다행”이라고 얘기를 하더군요. 여기까지만 보면 적어도 ‘해피엔딩’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반전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갑질’이 일어난 상황을 보도하는 것에 그칠 게 아니라 그 이후도 다뤄봐야 한다는 생각을 굳힌 이유입니다.

● "술 취해 기억 안 난다" 진술에도 음주운전 무혐의

<A씨는 2016년 10월 14일 15시 경 강원도 고성군 부근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017% 상태에서 차량을 운전해 약 20km를 운행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의 수사 결과 보고서 중 ‘음주 운전’ 부분을 발췌한 내용입니다. 이 대목을 읽다가 의문이 하나 들었습니다. 음주 수치 0.017%(현행법 상 0.05% 이상은 면허 정지, 0.1% 이상은 면허 정지)는 대체 어떻게 측정해서 나온 걸까요. 다시 찬찬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A씨는 조합 행사에 참석하기 전 소주 860병을 구입했고 행사에서 전량 소비된 점이 인정된다. 차 씨에 따르면 A씨가 소주를 얼마나 마셨는지 모르겠지만 몸을 비틀거리는 등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다고 진술한다. 하지만 A씨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조합원들이 따라주면 잔을 받아놓긴 했지만 소주잔으로 3잔 정도만 먹었을 뿐 술에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사건 이후 A씨가 작성한 사과문에는 ‘여러 조합원들을 만나 한 잔 두 잔 마신 술이 너무 과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기재돼 술이 취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3잔 정도 마셨다는 A씨 진술 말고는 음주량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 자료가 없다. 이에 따라 A씨가 진술한 소주 3잔에 대해 위드마크 공식에 따라 계산해보니 0.017%가 나와 혐의 없다.>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죄를 숨기려고 하는 게 본성입니다. 하여 법도 피의자가 죄를 부인하거나, 본인이 직접 증거를 인멸한 경우엔 처벌하지 않습니다. 다만, 범죄 혐의가 짙을 때 그 범죄를 찾아내도록 수사기관을 두고 있지요. 경찰과 검찰이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마냥 거짓말을 하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혐의 없음’으로 결론을 내린 검찰의 이번 결정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A씨가 당시 차량 안에서 차 씨에게 퍼부은 고성과 폭언만 제대로 들었다면 ‘소주 3잔’ 정도인지 아닌지는 너무나 쉽게 인지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 게다가 A씨가 직접 작성한 사과문은 사실상 자백이나 다름없음에도 검찰은 A씨를 추궁하는 대신 당시의 음주 수치를 알아서 계산해줘 면죄부를 주고 말았습니다.
법원
● 검찰의 '약식기소'에 법원 "정식 재판 열겠다"

A씨에게 시청자들이 분노한 건 단순히 차 씨에게 욕을 하고 폭력을 가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할 수 없다는 ‘을’들의 매서운 경고였습니다. 다시 검찰의 보고서를 봅니다.

<A씨는 같은 날 14시 30분 차량 탑승 후 주말 수행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고 차 씨에게 “이 XX가 아주 패죽일까”, “너 내일로 사표 써 XX야”............중략............A씨는 차 씨의 멱살을 잡아 차에서 끌어내려 넘어뜨린 뒤 벗은 구두로 머리와 등 부위를 2~3회 때리고 다시 피해자가 일어나자 왼쪽 얼굴 부위를 손바닥으로 1대, 주먹으로 명치 부위를 1대 때리고 구둣발로 왼쪽 정강이를 걷어차 1주 간 치료를 요하는 안면 타박상, 좌측손목찰과상을 입혔다.>

검찰은 이 같은 폭행 혐의에 대해 지난 달 10일 벌금 5백만 원으로 약식 기소를 결정했습니다. 따로 재판을 열지 않고 벌금만 내게끔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걸 법원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A씨의 음주 운전 혐의는 영원히 사라지고, 폭행 혐의 역시 5백만 원이라는 사실상의 ‘맷값’으로 탕감됩니다. A씨가 농협중앙회에 ‘당당히’ 재심을 요구한 것도 바로 이 검찰의 결정이 한몫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는 점입니다. 굳이 재판까지 뭘 가느냐는 검찰의 결정에 대해 법원은 정식 재판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검찰이 머쓱해진 상황이 됐습니다. 부디 법원에서는 조합장 A씨의 구둣발에 짓밟힌 차 씨의 명예와 인권이 조금이라도 회복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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