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마이너스 통장 열어드립니다"…고금리 시대의 新 보이스피싱

"너무 정교해요. 돈이 필요한 사람의 심리적인 상태를 굉장히 잘 알고 있어요"

"난 절대 속지 않는다"라고 확신하던 분들까지 하나, 둘 무너뜨리는 그런 보이스피싱이 있습니다. 바로 대출 관련 보이스피싱입니다. 대출이 있는 분들, 특히 고금리에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금리가 낮은 상품으로 바꿔주겠다”고 접근하는 사기입니다. 최근 전체적인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2% 줄었지만, 유독 대출 관련 보이스피싱만 69.8% 늘어났습니다.
보이스피싱
● 대출 고금리시대, "금리 낮춰드립니다"

지난해 말 기준 가계부채가 1344조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곧 2017년 1분기 기준 가계부채가 발표 되는데, 다시 한번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입니다. 가계부채가 계속 늘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풍선효과'입니다. 금융당국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1금융권 대출을 조였고, 그 결과 서민들은 금리가 더 높은 2금융권이나 대부업체로 밀려났습니다. 이 같은 '풍선효과'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서민들이 고금리로 내밀리고 있다는 겁니다.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2금융권 대출 증가액은 9조 3천 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8조 원보다 1조 3천 억 원 늘었습니다. 
 
시중은행 같은 1금융권에서 저축은행 같은 2금융권으로 밀려나고, 저금리에서 고금리로 밀려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시중은행 금리가 연 4~8% 정도라면, 저축은행은 20% 내외이고, 대부업체는 법정 최고 금리인 27.9% 수준의 이자를 받습니다. 사채업자들 쪽으로 가면, 100%, 200%도 많습니다. 한마디로 대출 '고금리 시대'가 된 겁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보이스피싱이 이 상황을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 마이너스 통장 어떠세요?

경기도에 사는 30대 주부 김 모 씨를 만났습니다. 생활비 때문에 1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었는데, 금리는 연 21% 수준이었습니다. 빠듯한 생활에 매달 내야 하는 이자가 부담스러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솔깃하게 만든 한 통의 전화가 지난 3월 걸려옵니다.
피해자 인터뷰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드립니다"

그녀는 낮은 신용도 때문에 발급이 어려울 거라는 걸 알면서도 전화를 끊을 수 없었습니다. 20%가 넘는 금리를 단번에 한 자리 금리로 낮출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용도가 낮은데 어떻게 발급이 가능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신용도가 낮은 분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기 때문에 가능할 수도 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알아봐 달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전화를 했던 영업사원은 자신을 OO 은행 소속이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며칠 뒤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그 영업사원은 "신용등급 때문에 어렵다. 최선을 다해봤지만 안될 것 같다"라고 안타깝다는 듯 말했습니다. 한참을 아쉬워하더니 자신의 가족이라고 속여서 편법으로 만들어볼 수 있는지 다시 알아보겠다며 다시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틀 뒤 세 번째 전화가 옵니다. "감사 기간이라서 정말 안 되겠다"며 마치 본인 일인 것처럼 안타까운 듯 말했다고 합니다. 원래 신용등급이 낮아서 마이너스 통장 발급이 불가능한 걸 알고 있었던 김 씨였지만, 계속 될 듯 될 듯 하다가 안되니까 더 아쉬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이 영업사원은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라면서 말을 이어갔습니다.

● "신용등급 올려보자고요"

그는 신용등급 때문에 마이너스 통장 발급에 실패했으니, 아예 신용등급을 올리는 작전을 써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가 내놓은 방법은 이렇습니다. "알고 있는 대출업체가 있는데, 거기서 고금리 대출을 받은 뒤 바로 다시 갚으면서 신용등급을 올릴 수 있다. 그걸 근거로 마이너스 통장을 신청하면 나온다"
보이스피싱
김 씨는 이 순간, 잠깐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소개해주겠다는 대출업체가 이름만 말하면 아는 대형업체인 데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 돈을 그냥 갚아버리면 된다는 생각에 일단 대출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900만 원을 대출 받았습니다.

며칠 뒤 그 영업사원에게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바로 900만 원을 갚으면 신용등급 업체가 눈치를 채서 신용등급이 올라가지 않으니까, 1주일 정도 들고 있으라"고 했답니다. 대출 받은 돈이 통장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상황이 1주일 동안 계속되니까, 김 씨는 그 영업사원에 대한 의심도 누그러졌다고 합니다. 김 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가 신뢰가 생겼던 것 같아요. 금액을 제가 일주일 동안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물론 이런 식으로 1주일 뒤에 갚는다고 해도 신용등급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빚을 갚는 행위 자체는 분명히 신용등급이 오를 수 있는 여러가지 요인 가운데 하나일 수는 있어도, 이런 식으로 쉽게 신용등급이 오르지 않습니다. 신용등급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런 편법으로는 절대 오를 수 없습니다. 금융기관이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김씨는 이걸 몰랐던 겁니다. 물론 통장 안에 대출받은 돈이 그대로 있었으니 이때까지는 몰라도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1주일 뒤, 그 영업사원에게 다시 전화가 옵니다.

● "아무렇게나 갚으면 신용등급이 오르지 않습니다"

그는 "아무렇게나 갚으면 안 된다"며 자신이 말한 계좌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신용등급을 올리기 위한 특별한 방법인 듯 말했겠지요. 돈을 보내면 자신이 대납 처리하고, 그걸 근거로 마이너스 통장을 발급받을 서류를 만들겠다고 말한 겁니다.

고금리에 시달리던 그녀는 저금리의 마이너스 통장을 얻기 위해 OO은행 영업사원이 말해준 '특별한 방법'을 선택했고, 결국 돈을 보냈습니다. 900만 원을 한꺼번에 보냈습니다. 물론 그 통장은 대포통장이었고, 그 사람은 보이스피싱 사기범이었습니다. 이후에도 "발급이 잘 안 된다"면서 몇 차례 돈을 더 뜯어내기 위해 접근했지만, 뒤늦게 경찰과 금감원에 신고한 김 씨는 돈을 더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경찰에서 추적 중이지만, 이미 대포통장에서는 돈이 빠져나갔습니다.

● "난 안 속아"…자만은 금물

이렇게 긴 얘기를, 과하게 자세하게 소개한 이유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피해자 김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굉장히 절차가 정교했어요. '아닌가?'라고 의심을 할만하면 과장, 본부장이라면서 교대로 전화를 해옵니다. 나도 모르게 많이 빠져들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김 씨는 평소 뉴스를 보면서도 "나는 절대 보이스피싱에 속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에 속아 1,000만 원의 빚에 또 다시 900만 원의 빚이 더 생기게 됐습니다. 가뜩이나 힘든 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해 했습니다.

금융감독원 역시 평소에 "나는 안 속아"라면서 주의 사항을 눈여겨 보지 않았던 분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점점 치밀해지고 있는 보이스피싱의 유형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금감원의 유의사항입니다.

"저금리 대출을 위해 고금리 대출을 먼저 받으라고 권유하는 건 100% 보이스 피싱입니다"  금융감독원 불법금융대응단의 권순표 수석조사역은 "사기범은 금융회사 직원이라고 속이지만, 금융회사는 어떤 경우라도 직원 명의 계좌로 대출금을 받지 않는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보이스피싱. 어쩌면 뻔히 보일만한 거짓말이지만, 가계부채 1300조 원 시대라면 마땅히 주의해야 할 사기 범죄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