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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89 : "창문부터 넘어!"…'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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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그는 벌써 양로원 1층의 자기 방 창문을 열고 아래 화단으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그의 백 회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양로원 라운지에서 한 시간 후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오직 파티의 주인공만이 불참하게 될 거였다." 
 
12년 전인 2005년 겨울, 저는 전라북도의 한 마을에 있었습니다. 장수마을 취재…. 92세 노인을 소개받아 댁으로 찾아갔습니다. 마침 눈이 많이 왔었는데 예상보다 꽤 젊어 보이던 그 할아버지에게 촬영을 위해 뭔가 몸을 움직여달라고 부탁했죠. "그럼 이걸 할까" 하면서 삽을 집어 들고 무서운 기세로 눈을 치우셨습니다. '이러다 쓰러지시면 어쩌지' 걱정할 정도였는데 "늘 하는 일인데 뭘…." 그 천연덕스러움에 주위에 있던 모두가 깔깔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유쾌한 노인 하니까 떠올랐던 그 할아버지, 생존해 계신다면 여전히 유쾌한 104살 노인이시겠죠. 유쾌한 노인의 모험담, 알란 칼손이라는 100살 된 노인이 주인공인 소설이 오늘 읽는 책입니다. 수년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던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입니다.
 
소설은, 알란이 100세 생일파티가 싫어서 양로원을 탈출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자기 방의 창문을 넘어 탈출합니다. 그리고 알란이 100세가 되기까지의 생애와 100세 즈음의 모험을 교차하며 보여줍니다. 먼저 100세 알란이 탈출해 우연히 트렁크를 훔치고 자기보다 30살 정도 어린 또 다른 노인을 만나는 내용부터 읽어보겠습니다.
 
"노인은 자기가 왜 트렁크를 훔칠 생각을 했을까 자문해 보았다. 그냥 기회가 왔기 때문에? 아니면 주인이 불한당 같은 녀석이라서? 아니면 트렁크 안에 신발 한 켤레와 심지어 모자까지 하나 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서? 그것도 아니면 자신은 잃을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정말이지 이 중에서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다. 뭐, 인생이 연장전으로 접어들었을 때는 이따금 변덕을 부릴 수도 있는 일이지.. 그가 좌석에 편안히 자리 잡으며 내린 결론이었다."
 
이 100세 노인 알란의 모험은 이렇게 시작돼 진행되고, 우연히 만나는 사람 중에서 어떤 이는 동료로, 어떤 이는 적이 되고... 죽이기도 합니다. 100세 이후의 모험은 흘러가고 한편으로 태어나서 100세까지의 삶이 펼쳐집니다. 스웨덴에서 태어나 좀 특이한 아버지가 있다가 떠나고 어머니와 사는데 니트로글리세린 공장에 어려서 사환으로 취직하면서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재주가 되는 폭발물 제조 기술을 익혀 전문가가 됩니다. 노벨의 나라 답습니다. 알란은 100년에 걸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여러 모험을 합니다. 그중에서 원자폭탄 전문가가 되면서 그 유명한 오펜하이머에게 도움을 주는, 황당하죠, 그 대목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는 미국인들이 아주 약은 사람들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알란에게 익숙한 전통적인 폭약들을 계속 만드는 대신, 원자를 분열시켜 지금껏 세상이 알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규모의 폭발을 유발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제 과학자들은(그리고 알란도) 원자핵을 연쇄적으로 분열시킬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을 제어하는 방법을 아직 몰랐다. 이 문제에 매혹된 알란은 밤마다 도서관에 혼자 처박혀 아무도 그에게 생각해보라고 요구하지 않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았다. 스웨덴 출신의 이 잡역부는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어느 날 밤…. 아이고 저런, 어느 날 밤에…. 마침내 해결책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과학자들은 머리를 쥐어뜯다가 알란에게 커피를 또 한 잔 주문했고, 군인들도 목덜미를 긁적거리다 알란에게 커피를 또 한 잔 주문했으며, 물리학자들과 군인들은 합창하듯 탄식하다가 알란에게 커피를 다시 또 한 잔 달라고 부탁했다. 알란은 이미 얼마 전부터 해결책을 알고 있었지만, 일개 웨이터가 주방자에게 고기 스튜 만드는 법을 설명할 수는 없는 법,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알란은 이렇게 미국이 원자폭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고 소련에 넘어가서 역시 그들이 원자탄을 만드는 데도 결정적인 힌트를, 보드카에 취해서 털어놓게 됩니다. 장제스의 부인도 만나고 마오쩌둥의 부인 장청을 구해준 인연으로 마오쩌둥의 도움을 받고 그러다 스탈린의 미움을 사 시베리아에 30년 유형을 떠나고 북한에 들어가 김일성과 어린 김정일을 만나는 경험도…. 격변의 20세기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굵직굵직한 세계사의 장면들에 어떤 역할을 합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연상케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100세 알란은 어떻게 됐을까요. 그가 훔친 트렁크엔 엄청난 액수의 돈이 있었고 이걸 나눠갖기로 하고 핫도그 판매상과 예쁜 언니를 동료로 삼게 되고 개와 코끼리와도 일종의 파티를 만들어 동행합니다. 그러면서 경찰과 범죄조직에 쫓기게 되고 우당탕탕 와장창창입니다. 그들이 받던 범죄 혐의를 어찌어찌하여 벗어나게 되는데 수사 검사가 설명을 들으러 오죠. 장황하게 설명을 해주는 과정에서 알란의 일생이 언뜻언뜻 드러나는데 그 브리핑을 일부 읽겠습니다.
 
"좋소, 내가 먼저 시작하도록 하지. 내가 비록 노쇠하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는 않지만 말이야. 어쨌든 내가 그 창문으로 나온 것은 기억나요. 그래, 그건 확실해! 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척 많았다는 것도 기억나고. 아주 온당한 이유들이 있었지."
 
"이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성질이 난 사람은 바로 라넬리드 검사 자신이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프랑코와 트루먼과 마오쩌둥과 처칠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노망난 백 살 늙은이에게서 뭔가를 얻어 내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검사의 얼굴이 아무리 벌게지고 있어도 알란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폭발물과 원자폭탄 만드는 과정이 희화화돼 있는 게 좀 걸리기도 하고 인도네시아 같은 아시아 국가에 대한 편견이 거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이념과 대립을 비웃는 듯, 관조하며 살다가 자신의 행복을 100년에 걸쳐 찾아가는 노인 이야기를 보면 '나는 뭐 이리 아등바등 살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대체로 유쾌하게,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출판사 열린책들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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