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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예비군 불참, 가짜 단식 의혹…누가 입증해야 하나?

[취재파일] 예비군 불참, 가짜 단식 의혹…누가 입증해야 하나?
검찰이 범죄 혐의로 피의자를 조사합니다. 피의자의 죄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은 당연히 검사에게 있습니다. 경찰 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식입니다. 변호인은 검사가 제시한 증거를 반박합니다. 그것이 문건이든 진술이든, 기본적으로 검사가 제시한 것을 반증하려고 노력합니다. 검사가 피의자의 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법원은 무죄를 선고합니다. 이런 상식이 지금 대선 국면에서 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범죄 혐의를 입증할 책임이 검사에게 있다면, 의혹을 입증할 1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의혹을 제기한 측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주변 50대 남성에게, "예비군 훈련 한 번도 안 받은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증거 있어?" 이런 대답을 들을 겁니다. 말을 꺼낸 사람이 근거를 대야 합니다. 최근 민주당 선대위원장이 안철수 후보가 예비군 훈련을 제대로 안 받았다는 의혹을 꺼냈는데, 그럼 민주당이 뭘 내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근거가 없습니다. 홍준표 후보도 모 언론을 인용해 예비군 의혹을 꺼냈는데, 정작 그 보도에도 근거가 없고, 2013년 국회에서 안철수 후보를 겨냥해 예비군 의혹에 시동을 건 의원은 '사이버상'에 떠도는 얘기가 있다면서 병무청을 추궁했을 뿐입니다. 안 후보의 예비군 의혹을 언급한 네티즌도 많았지만, 누군가의 진술이나 문건을 제시한 건 지금껏 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간편한 것이 '의혹 제기'입니다. 반면, 툭 던진 의혹일수록, 근거 없는 의혹일수록, 그걸 반박하는 과정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예비군 의혹을 제기한 측이 근거를 댔다면, 그것만 반박하면 됩니다. 하지만 근거가 없으니 모든 것을 반박해야 합니다. 누명을 뒤집어쓴 후보 측에서는 의혹 자체가 황당하고, 그걸 반증하기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재빨리 대처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 의혹을 꺼낸 측에서는 뭔가 구린 게 있으니까 해명하지 않는다면서 의심의 단계를 높입니다. 뭔가 깨끗하지 않으니까 해명을 안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마음속에서 '유죄' 판결을 내립니다. 네거티브의 효과입니다.

● '의혹 제기'가 유혹적인 이유는…
안철수 후보
근거 없는 의혹을 반박하는 게 얼마나 복잡한지 보시죠. 안 후보 측은 우선 병무청에 예비군 훈련 참석 기록이 남아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서류 보존 기간 3년이 이미 오래전에 지나서 지금은 기록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국방부와 구청 등에 기록이 남아있는지 확인했다고 하는데, 같은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 과정만 사나흘 걸렸습니다. 안 후보가 이렇다면, 예비군 훈련을 마친 지 오래 된 다른 후보도 국방부에 참석 기록이 없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저희 '사실은' 팀은 8뉴스에서 이 사안을 다루기 위해 취재를 좀 더 진행했습니다. 예비군 훈련을 한 번도 안 받는 게 가능하긴 한 건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병무청에 확인한 결과 예비군 훈련 면제는 불가능하다고 해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가, 많은 분들께서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확인해주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1993년 ‘예비군 실무 편람’에는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 진단서를 제출할 경우 예비군 훈련이 '보류', 즉 면제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국방부는 안 후보가 예비군 훈련 대상이었던 당시 규정에 따르면, '동원' 예비군 훈련은 면제 규정이 없었고, '일반' 예비군 훈련만 면제 규정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동원 훈련을 '연기'하면 일반 훈련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연기된 일반 훈련은 앞서 설명한 방식으로 면제가 가능했습니다. 동원은 면제 규정이 없었지만, 일반 훈련으로 한 번 '세탁'을 하면 면제 가능했다는 뜻입니다.

이론적으로 6개월 이상의 허위 진단서를 여러 번 내서, 훈련을 계속 면제받는 것은 가능했습니다. 훈련 연기 회수가 제한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훈련 다 빠졌다는 게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면 여기서 해명이 되는데, '이론적으로 가능한 일'이므로 해명의 어려움은 한 단계 더 올라갑니다.

끝이 아닙니다. 저희 기사에 달린 댓글 가운데 왜 병원 진단서는 확인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안 후보가 부인 김미경 교수가 있는 병원에서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아 훈련을 안 받았다는 의혹인데, 왜 병원은 확인하지 않고 보도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단서를 발급받은 행위는 확인해볼 수 있지만, 진단서를 발급받지 않았다는 것, 즉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라는 지적은 당혹스럽습니다.

그러려면 안 후보가 예비군 훈련 대상이었던 1995년부터 2001년까지 해당 병원에서 진단서를 발급받은 모든 사람의 리스트가 있어야 하고, 그 가운데 안 후보의 이름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검사가 피의자에게 허위 진단서 받은 적 없다는 걸 입증하라는 상황과 같습니다.

●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라? 
2014년 당시 단식 중인 문재인 후보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가짜 단식' 의혹도 비슷합니다. 국민의당 선대위 대변인이 가짜 단식 의혹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는데, 문재인 후보가 2014년 8월 서울 광화문에서 세월호 특별법 처리와 관련해 열흘 동안 단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단식 기간에 쓰인 '정치자금 사용 내역'을 보니까 감자탕집, 커피숍, 빵집, 빈대떡집 등이 있었다는 겁니다. 세월호 유족과 함께 단식한다고 했으면서, 몰래 천막을 빠져나가서 감자탕 먹은 거 아니냐고 물은 겁니다. 인터넷을 돌던 루머가 선대위 대변인의 입을 통해 나왔습니다.

역시 의혹 제기는 "훈련 안 받았지?"처럼 편리합니다. 그러나 해명하려고 생각해보면, 이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물론 '정치자금 사용내역'이 문재인 후보 개인이 쓴 게 아니다, 거기 보면 슬리퍼 같은 비품을 구입한 내역도 있고, 차량 수리한 것도 있다, 그러니까 문 후보 개인이 아니라 보좌진이 쓴 거라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이 그렇게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또 의원 보좌진이 쓴 돈을 정치자금으로 회계 처리해도 아무 문제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안 후보의 기사에 병원 확인 안 했다는 댓글이 달린 것처럼, 문 후보의 기사에는 음식 배달 기록은 확인이 안 되는 거 아니냐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당시 아무 것도 먹지 않은 것'을 증명하라? 이건 안 후보에게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라는 요구와 같습니다. 뭘 안 했다는 걸 입증하라는 겁니다. 저희 회사 서버에 당시 문 후보를 촬영한 영상이 남아 있어서 이걸 음식점 카드 결제 날짜와 일일이 비교해 방송을 통해 보여드렸습니다만, 이것도 '가짜 단식'이 가짜라는 걸 명확히 입증해주지 못합니다. 취재 영상에는 촬영한 시간이 분 단위로 기록돼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당시 문 후보가 단식하던 광화문의 천막을 24시간 내내 촬영한 CCTV 영상이 남아 있어야만 해명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1차적인 입증 책임은, 의혹을 제기한 측에 있습니다. 그래야 후보 검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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