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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죄송합니다"…'UFC 승부조작' 파이터의 늦은 후회

이세영 기자 230@sbs.co.kr

작성 2017.04.21 13:48 수정 2017.04.21 18:27 조회 재생수2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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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죄송합니다"…UFC 승부조작 파이터의 늦은 후회
2015년 11월 28일, 서울에서 국내 최초로 UFC 열린 날입니다. 그리고 UFC에서 처음으로, 승부조작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한국인으로는 일곱 번째로 UFC와 계약한 방 모 선수는 브로커들에게 매수돼 승부조작을 하려 했습니다. 조건은 KO패, 선금으로 1억 원을 받았고 그 가운데 5천만 원을 떼서 상대 선수의 승리에 판돈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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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왜 이겼나? : 경기 30분 전 걸려온 전화 한 통
 
방 선수 소속사 관계자는 경기 당일 경기장으로 가던 중, 주최 측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승부조작이 의심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인 즉슨, 미국 UFC 도박 사이트에서 방 선수의 경기를 놓고 걸린 판돈의 흐름이 비정상적이라는 겁니다.
 
애초 두 선수가 스타급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해당 경기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높지 않았습니다. 근소한 차로 방 선수가 탑독(top dog - 승자)이었는데, 경기 당일 상대 미국 선수에게 순식간에 판돈이 몰리면서, 방 선수가 엄청난 차로 언더독(underdog - 패자)로 바뀝니다.

▶ 관련기사: [뉴스pick] UFC 국내 첫 승부 조작…'배당률 그래프'에도 드러났다
  
이러한 내용을 전화로 들은 소속사 관계자도 당황했습니다.

소속사 관계자 : “대회 당일날 경기장에 가는데 미국 사이트가 난리가 났다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언더독이 탑독이 되고 이랬다고. 이게 뭔 괴소문? 애 시합하러 가는데 시합 뛰러 가는데 왜 이런 걸 신경 쓰게 하냐고“
 
“(배당률 그래프에서 방 선수가)이긴다에서 완전히 지는 걸로 나왔네. 굉장히 큰 차이에요. 사실 경기가 비중 있는 경기가 아니었거든요. 그러면 이게(배당률이) 차이가 나도 조금 변화가 있지 이렇게까지 변화가 있진 않아요.”

 
결국 경기 직전 UFC측의 경고가, 방 선수가 마음을 돌린 이유가 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방 선수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방 모 선수: “왜냐하면 중간에 그거 안 하기로 했었거든요. 아무튼 중간에 연결해준 형이 있는데 안 한다고 했는데 그게 전달이 잘 안되었어요. 너무 늦게 이야기를 해서 그래가지고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일이 그렇게 되었어요. 저는 솔직히 (돈을) 돌려주고 그 이후에 이런 이야기까지 협박을 아니고 압박이 계속 있어서 걔네가 손해가 엄청 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가지고 그거에 대해서 나중에 또 돈을 올려서 줬어요. 제 돈을......”
 
● 이기고도 기뻐할 수 없었던 파이터
 
1라운드는 방 선수가 우세했습니다. 2라운드부터 급격히 체력이 떨어졌지만, 3라운드까지 잘 버텼습니다. 결과는 판정승, 하지만 방 선수의 표정은 기뻐 보이지 않습니다.
 
중간에 승부조작을 안 하기로 마음을 바꿨다는 방 선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방 선수는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 했을 겁니다. 당시 방 선수의 상대였던 미국 선수도 그렇게 느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기사 : http://mmajunkie.com/2017/04/ufc-fight-fixing-investigation-tae-hyun-bang-south-korea
UFC 승부조작미국인 B 선수: ....“When I fought him, I had absolutely no reason to think he wasn’t fighting,” B said. “He flashed KO’d me. From what I could tell, it seemed like he was trying to win that fight.”....
(그와 싸울 때, 그가 전투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는 나를 KO시키려고 했고, 이기기 위해 싸우려고 하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모든 격투기 선수들의 꿈의 무대인 UFC. 경기에서 승리를 거머쥐고도 방 선수는 기쁠 수 없었습니다. 곧바로 판돈을 날린 브로커들에게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받은 1억 원을 다 돌려주고도, 방 선수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잘못된 선택의 대가는 컸습니다.
 
경찰은 지난주 방 선수에게 승부조작 미수 혐의로 소환 조사를 받을 것을 통보했습니다. 방 선수는 하루 정도 시간을 달라고 한 뒤, 다음날 순순히 응했고,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UFC까지 드리운 '불법 도박'의 그림자
 

현재 한국에서 합법적인 스포츠 도박은 ‘스포츠 토토’ 밖에 없습니다. 반면 해외에서는 스포츠 도박이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해외 도박 사이트를 이용해 베팅하는 것도 모두 불법입니다. 경찰이 이번 수사에서 집중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이번 UFC 승부조작에 흘러들어간 도박 자금은 20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그럼 과연 이 돈의 출처는 어딘지, 어떤 사람들이 판돈을 걸었는지, 또 이 돈을 어떻게 해외로 빼돌렸는지가 수사 대상입니다. 현재 방 선수와 브로커, 전직 격투기 선수 등 관계자 4명의 계좌를 압수수색하고 있습니다.
 
● 사상 최초의 승부조작…UFC는 고심 중
 
방 선수는 최근까지도 활발한 선수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체육관에 나가서 훈련을 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지난주에 방 선수가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소속사와 UFC 한국 홍보 대행사 쪽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SBS 보도 전까지 방 선수가 소속사에 “그런 일이 절대 없다”고 발뺌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홍보대행사는 SBS 보도 직후, 미국 라스베가스에 있는 UFC 본부에 보고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방 선수에 대해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 법적인 대응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등을 물었다고 합니다. 향후 한국에서의 추가 대회 개최 여부도 포함돼 있습니다. UFC 본부 측에서 빠른 시간 안에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한 상황입니다.
 
● "죄송합니다"…이미 늦은 후회
 
취재진은 2주전부터 방 선수를 만나기 위해 소속사 등을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습니다. 전화 통화에서 그는 승부조작에 가담한 사실을 계속해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뉴스 시작 한 시간 전,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받고 있는 혐의를 묵묵히 인정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말에 “죄송합니다”라는 짧은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본인도 잘 알 겁니다. 실제로 승부조작을 실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 모든 게 없던 일이 될 수는 없음을. 브로커들에게 1억 원을 받았던 그 순간, 이미 경기는 더럽혀지고 말았습니다. UFC 유망주의 늦은 후회가 안타까운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