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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상력

영화 '컨택트'의 원작자 테드 창의 언어철학

[칼럼]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상력
“그들의 언어를 배우면 그들 방식으로 시간을 이해하게 돼요. 미래를 보는 거죠.
그들의 시간은 한쪽으로 흐르지 않아요.”


"모든 여정을 알면서도, 그 끝을 알면서도, 난 모든 것을 받아들여
삶의 모든 순간을 기쁘게 맞이한다"


언어에 대한 철학적 통찰과 SF적 상상력의 결합을 보여주는 영화 컨택트는 원작 소설을 찾아 읽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지적인 영화다. 테드 창의 중편 ‘당신 인생의 이야기’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를 읽어보면, 이 영화가 언어에 대한 탐구라는 원작의 주제의식을 매우 충실하게 구현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외계인과의 소통이나 무력 충돌의 긴장, 인류의 화합 메시지 같은 SF 영화적 흥행 요소들은 언어의 본질에 대한 관심의 밀도에 비하면 주변적인 요소로 보인다. 물론 영화의 그런 요소에 주목하거나, 자신의 미래를 알면서도 매 순간을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는 주인공의 삶에 감동 받는 것은 관객 각자의 몫이다.

언어는 현대 철학의 핵심 주제다. 영미 언어철학의 대부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은 특히 언어의 한계에 주목했다. 그가 보기에 언어는 오류투성이다. 인류가 오랫동안 고심해온 철학적 질문들은 대부분 정답을 찾아 해결(solve)되기보다는 언어분석을 통해 해소(dissolve)되어야 마땅하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결론은 동양철학의 오래된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한다. 노자의 도덕경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말할 수 있는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로 시작한다. 선불교의 전통에서는 불립문자 (不立文子. 깨달음은 문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를 강조해왔다.

 영화 얘기로 시작해서 갑자기 언어철학의 맥락을 들먹이는 것은, 테드 창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언어’의 개념이 동서양의 철학이 발견한 언어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컨택트의 원작 소설이면서 작품 8개를 묶은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데, 언어에 대한 작가의 일관된 관심이 다양한 상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 가운데 두드러진 작품 2개를 살펴본다.
[칼럼]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상력1
● 이해 (Understand) 

1991년에 발표된 이 중편소설을 영화화하면 컨택트 보다 더 화려하고 긴박감이 넘치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뇌 손상을 입어 신약을 투여 받은 주인공의 지능이 초인적으로 높아지는 얘기다. 그는 의외의 지능 상승에 대한 CIA의 관심을 간단히 따돌리고 컴퓨터 망을 해킹해 자신의 흔적을 지운다. 증권투자를 통해 엄청난 돈을 벌수도 있지만 그의 관심사는 자신의 진보다. 사고력이 발달하자 몸을 제어하는 능력도 진화한다. 양손잡이가 되었고 무술의 최고 경지에 도달한다. 맥박과 혈압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6개의 현대 언어와 4개의 고대 언어를 사용해 인류 문명의 중요한 세계관을 모두 포함한 장대한 시를 쓴다. 이렇게 진보를 거듭하던 그는 마침내 언어의 한계점에 도달하고,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나는 새로운 언어를 설계하고 있다. 종래의 언어들은 이미 한계에 달한 나머지 내가 더 이상 진보하는 것을 막고 있다. 이 언어들은 내가 필요로 하는 개념들을 표현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현존하는 언어 이론은 아무 쓸모도 없다.”

그가 구상하는 새로운 언어는 총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표의문자의 형태로 표현된다. 그는 전 우주를 묘사하는 거대한 표의문자라는 개념을 상상한다. 그러나 자신의 현재 지능으로는 이 인공언어를 완성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지능강화를 위해 자신에게 다시 약을 투여한다. 위험을 무릅쓴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나는 과거에 상상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언어를 통해 나의 마음을 안다. 나는 이 언어를 써서 나를 새롭게 바꾼다. 이 언어를 통해 나는 내 마음이 어떻게 기능하는 지 알 수 있다. 나는 내가 느끼는 모든 기분의 원인을 깨닫고, 내가 내리는 모든 결정 뒤에 자리 잡은 동기를 인식한다.”

그는 완벽한 초인이 되어 외부세계로 눈을 돌린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인간이 한 명 더 있음을 발견한다. 서로를 탐지한 두 초인은 각자의 목적이 다름을 확인하고 대결을 벌인다. 육체적인 싸움이 아니라 말과 개념, 암시를 통한 정신 대결이다. 주인공은 이렇게 패배한다. “나는 말을 이해하고, 그것이 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한다. 고로, 나는 붕괴한다.”

●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은 <이해>를 발표하고 7년의 침묵 끝에 1998년 중편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내놓는다. <이해>에서는 강화된 지능을 가진 초인을 통해 언어의 한계를 돌파했다면, 이번에는 외계인의 언어가 매개가 된다. 언어학자인 주인공은 지구에 온 외계인과 접촉하며 그들의 언어를 연구한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가 인류의 언어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걸 발견한다.
(사진출처=네이버)
‘헵타포드’라고 명명된 외계인의 문자는 비음운적인, 즉 소리를 내어 말하는 것이 아닌, 어의문자(語義文字)다. 이 문자는 시간의 순서에 묶여 있는 인류의 언어와 달리 원인과 결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표현한다. 언어의 차이는 의식의 차이로 연결된다.

 "인류가 순차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킨 데 비해, 헵타포드는 동시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켰다. 우리는 사건들을 순서대로 경험하고 원인과 결과로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인식한다. 헵타포드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자각한다.”

주인공은 헵타포드의 언어를 습득하면서 자신의 사고가 도형의 형태로 코드화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들의 동시적인 의식 양태가 구현돼 자신의 미래를 본다. 미래에 태어날 자기 딸의 죽음까지도.

다른 판타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타임머신이나 타임 슬립(Time Slip)의 개념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도 시간의 순서를 초월하는 ‘동시적인 의식 양태’라는 개념은 생소할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그들의 언어를 배우면 그들 방식으로 시간을 인식하게 돼요. 미래를 보게 되는 거죠. 다만 그들의 시간은 한쪽으로 흐르지 않아요.”라고 풀어서 설명한다.

1967년 미국에서 중국계 2세로 태어나 브라운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테드 창은 SF 계 최고의 현역 단편작가로 꼽힌다. 그는 언어의 한계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돌파하려 한다. 초인도 외계인도 아닌 우리는 여전히 언어에 갇혀 있지만, 그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본질과 한계를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신선한 경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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