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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차기 정부의 과제 ② : 거버넌스가 국가 운명 결정

'더 좋은 사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제언

[취재파일] 차기 정부의 과제 ② : 거버넌스가 국가 운명 결정
차기 정부의 과제 : '더 좋은 사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제언
거버넌스의 수준은 위기 상황에서 국가의 운명까지 바꿀 수 있다. 독일과 일본은 공통점이 많았다. 두 나라 모두 2차 대전의 패전국이었지만 성공적인 부흥기를 거쳐 제조업 강국이 되었고 엄청난 무역 흑자를 냈다. 정치적으로는 모두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운명이 갈리기 시작했다. 먼저 일본에 대해 살펴보자. 위기의 출발은 부동산 버블이 꺼진 1990년대 이후 찾아온 경기 침체이다. 1990년대 초까지 4%를 넘던 경제성장률이 연 1%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 기간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GDP 비중이나 국가 경쟁력도 모두 급락했다. 문제는 위기에 대한 일본 정부와 기업, 노조의 안일한 대처였다. 
[취재파일] 차기 정부의 과제② 거버넌스가 국가 운명 결정-1
일본 정부는 거의 매년 경기부양책을 시도했지만 근본적인 처방을 찾을 의지도, 사회적 합의를 위한 기구도 없었다. 노동정책심의회가 있었지만 실질 권한은 없는 장관자문기구에 불과했다. 기업은 정치와 유착하여 문제를 피하는 데 급급했고 노조는 기득권에 집착했다. 그러다 보니 장기불황이 고용·복지체제에 가한 충격을 풀지 못했다. 평생고용이 어려워지자 일본의 ‘가족의존형 복지제도’에도 심각한 균열이 생겼고, 사회보장에서 제외된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자들이 급증하면서 ‘격차사회’가 굳어졌다. 결과적으로 저출산이 심해진 반면, 고령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현재 65세 이상 고령인구비율이 계속 늘어 2050년이 되면 그 비율이 40%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다수인 노인들은 연금을 줄이는 데 반대한다. 그래서 생산가능인구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다 보니 <그림>에서처럼 복지재정지출이 늘어도 성장유발효과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제 독일을 보자. 독일도 어려운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2000년대 초반까지 저성장, 고실업의 늪에 빠져 있었고 사회 갈등은 심각했다. 경직적 노동시장, 수혜적 복지, 높은 조세부담이 경제의 발목을 잡았고, 급기야는 ‘유럽의 병자’라고 불렸다. 갑작스러운 통일과 유럽통합도 큰 충격이었다. 이랬던 독일이 오늘날 ‘유럽의 강자’로 화려하게 부활한 계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2003년에 단행된 ‘어젠다 2010’ 개혁이었다. 당시 사회민주당 슈뢰더 총리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과감하게 확대하고, 고용서비스 전달체계를 혁신했으며, 복지제도 효율성을 높이고, 재정개혁도 단행했다.

다른 하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고용위기를 겪은 반면, 독일은 즉각 ‘단축조업’을 시행해서 노동시간과 임금을 줄이되 해고가 되지 않도록 했다. 현재 독일의 실업률은 10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고, 일자리는 200만 개 이상 늘어났다. 방만한 복지는 지속 가능하게 바뀌었다. 금융위기의 반사이익으로 제조업이 큰 호황을 누리게 되자 수출이 급증하고 경제성장률도 높아졌다. 이 결과 고용률이 70%를 넘어서면서 손꼽히는 고용선진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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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독일과 일본의 거버넌스는 어떤 이유로 이런 차이가 나게 되었을까? 첫 번째는 사회적 합의에서 정부의 역할이다. 독일은 이해당사자들이 문제인식을 공유하고 서로 조율하고 해결책에 합의하면, 국가가 이를 후원하고 공정하게 관리해왔다. 반면에 일본은 80년대까지만 해도 분권, 분배, 조정의 거버넌스를 유지해왔는데, 90년대에 들어 점차 내각과 총리관저 중심의 일방적 통치로 바뀌었다.

두 번째는 정치적 리더십의 차이이다. 독일은 대부분 한 정당이 권력을 독식하지 않고 연립정부를 구성해왔다. 심지어 지지층이 다른 두 대표 
정당끼리 대연정도 자주 했다. 그래서 리더십도 안정되고 정책 일관성도 유지됐다. 그러나 거의 매년 총리가 바뀐 일본에서는 장기적 비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단기처방만 남발했다.

세 번째는 노조와 같은 이익단체가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해왔다는 점이다. 독일 노조의 조직률은 높지 않다. 그렇지만 경영참가와 정책참가, 사회적 대화 등을 통해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그 결과 노조는 자신들의 이익을 국민경제와 조화시키는 안목과 실력을 갖췄다. 반면에 일본에서 노조는 아예 대화의 파트너로 고려되지 않았다. 또한 기업별 노조체제이다 보니 대기업 정규직의 이익만 대변할 뿐, 저출산이나 청년실업 등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네 번째는 위기의 성격이 달랐던 것도 중요한 이유이다. 독일에서는 유럽통합이나 독일통일, 세계 금융위기 등 마치 급성폐렴처럼 몰려오는 위기 앞에서 이해당사자들이 한 발씩 양보하는 자세를 가졌다. 그러나 일본에서 저출산과 고령화는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성인병과 같다 보니, 심각성을 느끼는 데 시간이 걸렸고 선제적 개혁의 타이밍도 놓쳤다. 독일의 도약은 일자리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에서 출발했다.

기업은 일자리를 만들고, 노조는 일자리를 나누고, 정부는 일자리를 지킨다는 합의를 이루었고, 노·사·정이 서로 협력하는 거버넌스를 발전시켰다. 이것이 독일이 조정시장경제를 운영하면서 성장·복지·고용 간의 선순환을 이룬 비결이었다. 어떤가? 결국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지역이나 시대와 관계없이 국가가 위기에 빠지게 된다. 즉, 독일과 일본에서 보듯이 거버넌스가 국가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다.
더 좋은 사회 더 나은 미래
*위 글은 2004년부터 [더 좋은 사회 더 나은 미래] 매년 열린 SBS '미래한국리포트'를 정리한 '더 좋은 사회 더 나은 미래' (SBS 미래부/이창재 엮음, 한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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