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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민이 적폐?'…문재인의 딜레마

남승모 기자 smnam@sbs.co.kr

작성 2017.04.14 15:03 수정 2017.04.14 15:06 조회 재생수4,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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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국민이 적폐?…문재인의 딜레마
대선 민심을 엿볼 수 있는 기회로 관심을 모았던 4.12 재보선이 끝났습니다. 결과는 자유한국당의 ‘TK(대구·북) 완승’, 더불어민주당의 ‘선전’, 국민의당의 ‘호남 수성’, 바른정당의 ‘부진’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당의 경우, TK 지역에 국한됐다고는 하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잔뜩 움츠러들었던 분위기를 반전시킬 기회를 잡았다는 평가입니다. 후보를 낸 23개 지역 가운데 12곳에서 승리했으니 과히 틀린 얘기도 아닙니다.

특히 유일하게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진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지역에서는 한국당 김재원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득표율 47.9%로 다른 당 후보들을 여유 있게 따돌렸습니다. 김 의원은 대표적인 친박계 핵심 인물입니다. 비록 20대 총선 때 당내 경선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발탁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해 10월 말까지 박 전 대통령을 보좌했습니다.

● '상대 잃은' 적폐 청산

지난 탄핵 사태 때 촛불민심의 요구는 한마디로 ‘적폐 청산’이었습니다. 당시 촛불집회에 나섰던 대선 주자들 역시 한목소리로 적폐 청산을 외쳤습니다. 현재 본선 경쟁 중인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후보도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뒤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국민적 분노의 중심에 서 있던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됐기 때문일까요? 적폐를 청산하지 말자는 건 아닌데 또 너무 여기에만 매달려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입니다.

실제로 연합뉴스와 KBS가 8∼9일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전국 성인 남녀 2천11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2%)를 보면, '차기 대통령이 국민 통합과 적폐 해소 중 어디에 중점을 더 둬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갈등 해소 등 국민 통합에 더 중점을 둬야 한다'는 응답이 51.3%로, '과거의 잘못된 폐단을 척결하는 적폐 해소에 더 중점을 둬야 한다'는 응답(43%)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런 변화 때문일까요? 요즘 대선 후보들이 적폐 청산을 외치는 빈도가 확연히 줄었습니다. 이렇게 차기 대선을 앞두고 자취를 감추는가 싶었던 적폐 청산 프레임에 다시 불을 붙인 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였습니다. 문 후보는 최근 중도 보수 표심을 흡수하며 급등세를 탄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겨냥해 적폐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며 맹공을 펼쳤습니다. 13일 첫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도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가 이 문제를 놓고 정면 충돌했습니다.문재인, 안철수 후보 사안마다 대립문 후보는 안 후보가 적폐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 아니냐고 몰아붙였고 안 후보는 어떻게 자신을 지지한다고 해서 국민을 적폐 세력으로 몰 수 있느냐고 반박했습니다. 문 후보는 국민을 적폐 세력이라고 한 게 아니라면서 다만 안 후보가 국정농단 사태에 책임이 있는 구여권 인사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냐고 따졌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보수진영에 유력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안철수 후보가 그 빈 자리를 파고 들어 국정농단에 책임이 있는 구여권 인사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안철수 후보는 그런 세력들과 손을 잡은 적도 없고 앞으로 잡을 계획도 없다고 강조합니다. 자신이 적폐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문 후보의 주장은 결국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적폐 세력으로 모는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 '국민이 적폐?' 딜레마에 빠진 文

문재인 후보 측은 결코 국민을 적폐 세력이라고 규정한 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국정농단에 책임이 있는 구여권 세력이 적폐라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 이런 논리가 제대로 작동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앞서 살펴본 4.12재보선 결과가 대표적입니다.

친박 핵심으로 국정농단이 자행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근무했던 김재원 의원이 50% 가까운 지지율로 당선됐습니다. 반면, 적폐 청산을 외친 더불어민주당의 김영태 후보는 17.3%를 얻는데 그쳤습니다. 문 후보 측 기준으로 볼 때 김 의원은 분명한 적폐 세력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이 지역이 한국당의 지지세가 강한 곳이라 해도 이런 결론까지 바뀌는 건 아닙니다.

확실한 건 문 후보 기준으로 볼 때 명백한 적폐 세력인 김재원 의원이 지역민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는 사실입니다. 이 지점에서 문재인 후보의 딜레마가 시작됩니다. 김재원 의원이 적폐라면 국정 농단 사태를 모두 지켜본 뒤에도 그를 뽑아준 지역 주민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정말 유권자인 국민을 ‘적폐 세력’으로 간주해야 하는 걸까요?

● 적폐 청산의 목적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는 대의민주주의의 원리상 그 국민을 (설사 일부라고 해도) 청산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물론 다수제 민주주의에 따라 소수인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합의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요즘 추세와는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적폐 청산이라는 구호는 포기해야 할까요? 적폐 청산의 목적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정 정치 세력의 퇴출’이냐, ‘잘못된 국가 시스템의 개선’이냐. 답이 후자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국가를 움직이는 게 사람이니 인적 청산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치 세력의 청산은 정치인들의 몫이 아닙니다. 유권자인 국민의 몫입니다.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한국당의 지지율도 10% 가까이 됩니다. 우리 국민 10명에 1명은 한국당 지지자라는 얘기입니다. 진보-보수 어느 진영에서 지도자가 나오 건 차기 대통령은 국민 통합과 국가 시스템 개선을 함께 이뤄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협치'가 강조되는 이유입니다. 내일(15일)부터 대선 후보등록이 시작됩니다. 5월 9일 누구를 뽑을지 좀 본격적으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