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밭을 가른 물길
사이에
접속사처럼 배 한 척 쉬고 있다
(후략)
바다를 지척에 두고 사는 이들에게는 너무도 친숙한 풍경이 시인을 만나 그림이 되고, 또 의미가 되어 사람들의 가슴에 수채화 한 폭을 그려놓는다. 하필이면 배는 왜 접속사처럼 쉬고 있었는지…. 시인의 통찰과 감성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강화 나들길은 강화도에 14개 코스 175km, 이웃한 섬인 교동도 2개 코스, 석모도 2개 코스, 주문도 1개 코스, 불음도 1개 코스 등 총 20개 코스로, 그 길이는 310km에 이르는 다양하면서도 풍성한 둘레길이다. 마음먹고 걸어도 보름은 족히 걸어야 할 긴 여정인 것이다.
'강화가 품고 길러낸 자연과 땅 위의 모든 것과 연결한 길'이라는 설명이 마음에 와 닿는다. 특히나 '어제와 오늘의 삶을 잇고 일과 휴식과 놀이를 잇는다'는 나들길의 표제 앞에서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강화나들길 두 번째 코스의 이름이 '호국돈대길'이 된 이유는 이 코스에 성곽의 한 종류이면서, 전투를 위한 최전선의 요새인 돈대(墩臺)가 유독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대가 많다는 사실은 적의 침탈이 많았던 전장이었음을 알려주는 증표이니 '호국(護國)'이란 단어 역시 당연해 보인다.
사실 강화도는 고려시대 몽골항쟁 때의 고려 고종 이래, 조선의 인조 등 여러 명의 왕들이 몸을 의탁한 피난지이자 전략요충지였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서는 병인양요(1866년), 신미양요(1871년), 운요호 사건(1875년) 등 새로운 문명과의 격렬한 충돌의 현장이기도 했다.
걸어야 할 여정은 초지진에 이르는 17km 남짓. 뿌연 하늘이 나름 마음먹고 나선 길을 훼방 놓고 있었지만, 기왕 나선 길이니 어쩔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길 위에서 발을 떼어놓으면, 길 밖으로 떨어지거나 이탈도 안 되지만, 집착도 안 된다는 세상의 이치가 저절로 다가오고, 또 체득되는 신기함이 있다.
그런 이유로, 길은 단순히 '떠나기 위한 자리'이고, 그 떠나는 일이 펼쳐지는 '과정의 터전'인지라, 신발끈을 고쳐 매야 하는 '다짐'의 순간이면서, 떠나야 하는 '이별'의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길의 시작은 도로와 나란히 이어져 있다. 다행인 것은 오래지 않아 길은 바다를 향하고, 길은 바다 앞에서 깜짝 놀라 살짝 몸을 돌려 철길의 철로마냥 서로 엇갈린 채로 한없이 이어진다. 다가가 안을 수 없는 평행의 숙명을 체념하듯 수긍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길이 끝날 때까지 길과 바다는 서로 닿지 못한다.
저 멀리 바다 위에서 '접속사'가 되기 위해 쉬고 있는 배처럼, 나 역시 길 위를 부유(浮游)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길 위에서 문득 문득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렇게 스스로와 대면한다는 것은 간혹 슬픔일 때가 있다. 특히나 살아온 날이 많을수록 그 대면의 순간은 서늘한 아쉬움으로, 또 울음 같은 탄식일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러다 사람들은 그렇게 길 위에서 한바탕 울음 울고 난 후의 개운함으로 자기 자신과 친숙해지고, 걸어 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의 무게를 자신의 저울에 올려놓으며 안도하기도 하고 재촉하기도 하는 것이다.
도래미 마을의 도래미(島來美)는 '아름다워서 또 오게 되는 섬'이라는 뜻이란다. 그리고 도래미라는 이름에는 농촌역량강화라는 정책적 목표가 담겨 있기도 하단다. 기존의 지산리, 신정리라는 딱딱한 마을 이름을 도래미라는 부르기 쉽고, 또 기억하기에도 좋은 새로운 이름으로 디자인해 상품화하겠다는 의지가 그것이다.
그런데 도래미 마을 언저리를 걷다가, 아뿔싸! 길을 잃고 말았다. 스스로 뒤통수 한 대 칠 뻔 했다.
'길은 외줄기 /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가 아니라, 길은 외줄기인데 아스팔트길의 연속이다. 트럭들은 쌩쌩 달리고, 먼지는 풀풀 날리고…. 아스팔트 옆길로 빠졌어야 했는데, 무심코 걷다가 벌어진 실수였던 것이다. 다행히 얼마가지 않아 '용당돈대'를 가리키는 푯말이 있어, 그제야 제 길을 찾아갈 수 있어 큰 안도의 숨을 쉬었다.
용당돈대를 지나면 길은 짧은 산길로 이어지다가, 이내 바다만큼의 높이로 낮아진다.
뻘밭은 뻘밭이라 그 자체로도 충분한데, 굳이 조형물 설치라는 덧칠이 필요한 일이었을까. '텅 빈 충만'은 뻘밭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광성보는 1871년 미국의 아시아 함대에 맞서다 장렬히 산화해 간 신미양요의 현장이기도 하다. 힘없는 나라의 힘없는 백성들이 겪어내야 했던 절망과 아픔의 현장이 광성보다.
** 강화도 가는 길
강화도 가는 버스 : 직행 3000번, 좌석 800번, 급행 8601번, 급행 8600번 (서울 도심 기준)
강화도 내 시내버스(강화나들길 2코스) : 길상53번 - 갑곶돈대와 초지진 사이 운행(1일 3회)
강화도 내 택시 : 강화콜(1577-6669), 개인콜(1566-1771), 초지진에서 갑곶돈대까지 택시요금 13,000원~15,000원(협상요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