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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자들 똑바로 적어!"…민주당 경선, 씁쓸한 뒷얘기

[취재파일] "기자들 똑바로 적어!"…민주당 경선, 씁쓸한 뒷얘기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승부처로 꼽혔던 호남권 순회 투표에서 문재인 후보가 60.2%의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습니다. 사실 경선 전부터 문 후보가 1등을 할 것이란 데에는 별 이견이 없었습니다. 자칫 맥 빠진 승부가 될 수도 있었던 경선에 활력을 불어넣은 건 하루 이틀 앞서 열린 국민의당 경선이었습니다.

지역 기반이 겹치는 국민의당 경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당내 조직력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고 호남에서 대승을 거두는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지역 라이벌인 안 후보의 선전은 고스란히 문 후보의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1등을 하고도 졌다는 평가가 나올 판…. 과반 득표에 실패한다면 문재인 대세론에 타격이 불가피해 보였습니다.

● 문재인 대 안철수의 대결?

정치권에는 호남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진보 진영의 대선 후보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때문일까요? 민주당 경선에 자꾸 안철수 후보의 득표율을 들먹이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문 후보 1등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것 아니냐. 안철수 후보가 호남에서 64.6% 얻었는데 문 후보는 몇 퍼센트나 나올까?’, 뭐 이런 식이었습니다.

지난 27일 점심 시간을 살짝 넘겨 도착한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 경기장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여기저기 캠프 관계자며 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후보자별 득표율을 따져 보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역시나 가장 큰 관심은 문재인 후보가 과반 득표를 할 수 있을지 여부였습니다. ‘안철수 효과’가 경선에 미칠 영향, 또 앞서 말씀 드린 문재인 대 안철수의 득표율 비교도 화젯거리로 오르내렸습니다.

사실 121석인 민주당과 39석인 국민의당의 경선을 직접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경선에 참여한 선거인단 규모도 차이가 큽니다. 그런데도 이런 논의가 관심을 끈 건 앞서 말씀드렸듯이 호남이 진보 진영에서 갖는 특수성 때문입니다. 호남 민심의 상징성이 있기에 ‘문재인 대 안철수’라는 식의 비교도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문 후보는 ‘전두환 표창’ 발언과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장관의 ‘부산 대통령’ 발언 등 이런 저런 악재에도 불구하고 60%가 넘는 득표율로 결국 호남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일각에서는 문 후보가 잘해서가 아니라 될 사람 밀어주는 호남 특유의 전략적 선택의 결과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어쨌든 문재인 캠프에서 가장 걱정했던 호남 경선은 무난히 통과한 셈입니다.

● 1위보다 치열했던 2위 다툼

순회투표장 무대 앞쪽에 마련된 기자석에 앉자 좌우로 노란색과 주황색으로 피아(?)를 구분한 지지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대 정면에는 파란색 차림의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파란색이 문재인, 노란색이 안희정, 주황색이 이재명 후보 지지자들이었습니다. 북이나 나팔 사용이 금지돼 있다 보니 7천여 명의 지지자들은 저마다 후보 이름이나 지지 문구가 적힌 선전물을 들고 목이 터져라 후보 이름을 연호했습니다.

얼핏 사람 수는 문재인 후보 쪽이 많아 보였지만 이재명, 안희정 후보 쪽이 훨씬 열정적이었습니다. 양측이 서로 번갈아가며 안희정과 이재명을 외쳐대는 것이 대학가 응원전을 방불케 했습니다. 시끌벅적한 게 경선 열기를 바로 옆에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무대 위 후보와 캠프 관계자들은 목이 바짝 타들어 가는 듯 보였습니다. 어차피 1등은 문재인 후보가 유력한 상황이었던 만큼 사실 관심은 누가 2위, 특히 의미 있는 2위를 차지하느냐 였습니다. 안희정, 이재명 후보 모두 문 후보의 과반 저지라는 공동 목표가 있었지만 30%대 득표율 달성이라는 각자의 목표도 갖고 있었습니다.

당초 두 사람의 대결은 여론조사 추이에서 앞선 안 후보가 앞설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안 후보 진영에서 '대연정 발언'과 '박근혜 전 대통령 선의 발언' 등 호남 민심과 괴리가 있는 발언으로 논란이 줄을 이었습니다. 여기에 사전 유출된 것으로 보이는 미확인 현장 투표 결과 집계에서 안 후보가 밀리는 것으로 나오자 분위기가 급속히 반전됐습니다.

“조직력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더 앞서는 것 아니냐.”, “안 후보의 대연정 주장은 적폐청산을 바라는 호남 민심과 맞지 않는다”는 식의 말이 끊이지 않았고 승패는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안희정, 이재명 양측 캠프도 박빙 승부를 예상했습니다. 결과는 안희정 20%, 이재명 19.4%, 안 후보의 0.6%p차 승리였습니다.

두 후보는 아쉽지만 선전했다는 자체 평가를 내놨습니다. 비록 문재인 후보 과반 저지라는 1차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경선은 이제 시작이라고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야구 경기 뿐만이 아닙니다. 대선 후보 경선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그것이 정치판 경선의 묘미이기도 합니다.

● 아쉬웠던 점들

현장에서 경선을 취재하면서 아쉬웠던 점도 있었습니다. 많은 매체에서 다뤘듯이 경선 결과 발표 과정에서 나온 지지자들의 반응입니다. 기대만큼 득표수가 안 나온 것에 대한 실망이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정당한 절차를 거쳐 승리한 상대 후보에게 축하는 해주지 못할 망정 사퇴하라거나 부정선거 아니냐고 외치는 건 듣기에 민망했습니다.

집안 잔치인 경선에서도 이런다면 과연 이념과 정책이 다른 정당 후보자와 경쟁하는 본선에서 서로 간에 깨끗한 승복이 가능할까 싶었습니다. 한 지지자는 기자석을 향해 확성기까지 동원해 부정 선거를 밝혀내겠다면서 “기자들 똑바로 적어!”라고 고함치기도 했습니다. 평소 언론에 대해 쌓였던 불만의 표출인지, 그저 엉뚱한 곳에 쏟아내는 화풀이인지 씁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홍재형 당 선거관리위원장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홍 위원장이 개표 결과를 발표하면서 안희정 후보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잘못 말했습니다. 처음 투표소 투표 결과 발표 때 ‘안정희’ 후보, 두 번째 ARS 투표 결과 발표 때 ‘안재현’ 이라고 했다 급히 정정해 안희정 후보, 세 번째 대의원 투표 결과 발표 때는 안희정 후보,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합산 결과 발표 때 다시 ‘안정희’ 후보라고 말했습니다. 4차례 호명하면서 3번이나 틀린 셈입니다.

홍 위원장이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 살 고령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일부 지지자들의 비난처럼 의도적인 흠집내기는 아닐지라도 선관위원장이 후보 이름까지 이렇게 틀려서야 안희정 후보 본인과 지지자들에게 면목이 없는 일입니다. 또 가뜩이나 대연정 제안으로 당 안팎에서 우클릭이라는 공격에 시달리고 있는 안희정 후보에게 하필이면 잘못 호명한 이름이 다름 아닌 고 (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같았습니다. 물론 우연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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