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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2016 '전국 범죄지도' ④ '풍경을 바꿔 범죄를 예방한다'…셉테드의 명암

[마부작침] 2016 '전국 범죄지도' ④ '풍경을 바꿔 범죄를 예방한다'…셉테드의 명암
최초 공개! 2016 '전국 범죄지도'
<피해자>

누군가 뒤쫓아 오는 것 같은 기분에 멈춰서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다. 보이는 것은 어두컴컴한 골목길에 서 있는 전봇대 뿐. 하지만, 불안감이 엄습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을 청할까 싶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몸을 피할 곳도 없고, 집에 빨리 들어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길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누군가가 덮쳤다. 정신을 차려보니 지갑도, 가방도 사라지고 없었다.

<가해자>

골목길을 올라가는 사람을 뒤쫓기 시작했다. 그런데 힐끔힐끔 뒤를 의식하는 듯하다가 갑자기 멈춰서 뒤를 돌아봤다. 아뿔싸. 재빨리 전봇대 뒤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 전봇대에는 보안등이 달려있지 않아 내가 숨었는지는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앞서 가던 사람이 갑자기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낌새를 느낀 걸까? 어떻게 할까 망설였지만, 어차피 여기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CCTV도 거의 없다. 마음을 굳히고, 다른 골목으로 우회해 앞서 가던 사람을 덮친 뒤 지갑과 가방을 들고 달아났다.

영화나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가상 범죄 현장을 범행 피해자와 가해자의 시각에서 재구성했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앞선  <최초 공개! 2016 '전국 범죄지도' ① 범죄 발생 1위 도시는?>, <최초 공개! 2016 '전국 범죄지도' ② 절도·폭력·성폭행이 많은 지역의 특성은?>, <최초 공개! 2016 '전국 범죄지도' ③ 인구밀도의 범죄 방정식> 연속보도를 통해 범죄가 많은 지역은 어떤 특성이 있는지, 범죄들 간에는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등을 살펴봤다. 이번 기사는 범죄 예방책에 관한 것이다.

<최초 공개! 2016 '전국 범죄지도' ① 범죄 발생 1위 도시는?>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전통 범죄학은 범죄자 개인에 중점을 두고 범죄자 검거율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췄다. 범죄자들의 심리적 특징을 파악해 검거율을 높임으로써, 검거 가능성을 두려워한 잠재적 범죄자들의 범행 시도를 줄이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개인에 포커스를 둔 방식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주목 받고 있는 것이 환경 범죄학이다. 환경 범죄학은 범죄자 개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주목한다. 그래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해결책도 범행이 발생할 수 있는 현장의 변화를 통해 모색한다. 앞서 피해자가 불안해 했던 환경, 가해자가 범행 결심을 굳히게 했던 환경을 변화시켜 범죄자의 범죄 시도를 봉쇄해 보자는 취지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이른바 ‘셉테드(C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라고 불리는 ‘범죄예방환경설계’다.
 
조선시대에 소금 창고가 있던 길이었다고 해서 ‘소금길’이고 불리는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한 주택가. 이곳은 몇 년 전 만해도 밤이 되면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어 주민들도 다른 길로 돌아가던 곳이었다. 범죄도 잇따라 발생해 대표적인 ‘우범지역’으로 꼽혔었다. 하지만, 2012년 셉테드가 도입되면서 마을 풍경은 확 바뀌었다.

을씨년스러웠던 주택가 담벼락에는 벽화가 그려졌고, 노란색이 칠해진 전봇대에는 가로등이 촘촘하게 생겼다. CCTV는 물론이고, 곳곳에 비상벨이 설치됐다. 주택가 입구에는 사랑방 역할을 하는 카페도 생겼다. 거주민의 유대감을 강화해 지역 사회의 범죄를 예방하고, 주민들 스스로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적용된 셉테드는 지역 특성을 반영한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 받기도 했지만, 이 평가는 이제 과거형이다. 현재 염리동은 재개발을 위해 사람들이 떠나면서 상당수 주택이 비어있는 상태다. 셉테드를 적용하면서 장기적인 도시 계획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때문에 염리동은 단기적으론 성공 사례이면서도, 장기적으론 실패 사례로도 볼 수 있다.)
[마부작침]부산 덕포동 셉테드
부산 사상구 덕포동도 셉테드가 적용된 대표적인 곳이다. 지난 2010년, 부산은 이른바 ‘김길태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13살 소녀를 납치해 성폭행 한 뒤 피해자 집 근처 물탱크에 시신을 유기 했던 ‘김길태 사건’. 이 사건은 범행의 잔혹성 못지않게 범죄가 발생한 장소가 주목을 받았다. CCTV 부족했던 탓에 범죄자 검거가 장기화되자, CCTV가 부족하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에 가로등도 마땅히 없는 덕포동 주택가의 환경이 범죄 발생에 일조한 것 아니냐는 반성이 일었다. 이후 부산경찰은 2013년 덕포동에 셉테드를 도입했다.

곳곳에 CCTV와 비상벨 등이 설치된 이후 부산 사상 지역의 범죄는 눈에 띠게 감소했다. 2014년 인구 1만 명 당 151.7건이었던 5대 강력범죄는 2016년 114건으로 25%나 감소했다. 특히, 절도는 2014년 인구 1만 명 당 81.7건에서 2016년 49.9건으로 39%나 감소했고, 성폭행도 14% 줄었다. 대대적으로 도입된 셉테드가 범죄 예방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셉테드를 도입한 모든 곳이 부산 사상 지역과 같은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셉테드 도입 이후 반짝 감소했던 범죄가 다시 증가한 지역이 있는가 하면, 애초 별 효과를 보지 못 하고 있는 지역도 적지 않다. 야심차게 셉테드를 도입했지만 관리를 부실하게 했거나 당초 셉테드 설계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셉테드의 효과가 알려진 이후 여러 기관이 앞다퉈 셉테드를 도입하고 있다. 동일한 지역에 검찰과 경찰은 물론 지자체까지 셉테드를 추진하고 있는 지역도 적지 않다. 그런데 셉테드 방식도 대게 천편일률적이다. 대게가 벽화를 그리거나 CCTV나 가로등 설치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범죄 예방을 위한 기관 간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고, 지역별 특색이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마부작침] 2016범죄지도

이와 관련해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셉테드가 기관장들의 전시성 치적 사업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웅혁 교수는 “지역에 따라 청소년 범죄가 많거나 음주나 도박에 의한 범죄가 많은 수 있는데, 이런 경우 범죄가 발생하는 원인을 정확히 찾아 그것을 해결해야 범죄를 줄일 수 있다. 그런데 현재는 지역 범죄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결과 셉테드 방식으로 동원되는 것은 벽화 그리기 등 천편일률적이고, 자신의 임기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얻고 싶어하는 기관장들의 욕심이 더해지면서 이런 경향은 가속화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면밀한 분석 없는 단순하고 일률적인 대응, 치적을 쌓고 싶어하는 기관장들의 욕심으로 셉테드 관리 부재와 총제적 대응의 실패, 근본 원인에 대한 회피다. 이 교수는 “셉테드가 특정 지역에만 도입될 경우 범죄의 풍선 효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 간 유기적인 협조가 필요하지만, 현재 셉테드를 도입한 지역들 중에서 타 지역과 협조를 하고 있는 곳은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또, “셉테드가 범죄를 줄이기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정작 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인 공동체 의식의 약화나 빈부 격차 확대 등에 대한 대응에 소홀히 한 정부에게 셉테드가 변명거리가 되는 경향도 있다”고 덧붙였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셉테드가 보다 본질적이고 종합적인 대책 마련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6월, 경찰청은 전국의 모든 경찰서에 범죄예방진단팀을 설치한다고 밝혔다. 범죄예방진단팀은 지역이나 시설의 환경요인의 분석해 범죄취약요소를 파악하고 예방대책을 수립하는 역할을 맡는데, 전국 모든 경찰서에 셉테드 기법이 보급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지역 맞춤형 셉테드 도입을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경찰서별 협조체계 구축해 범죄 원인에 더욱 다가가려 하기 보다는 경찰서별 실적경쟁에 나설 경우 ‘범죄예방진단팀’은 또 생색내기식 전시성 행정의 재연이 될 수도 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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