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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10년 일하면 1년을 통째로 쉰다고?

[취재파일] 10년 일하면 1년을 통째로 쉰다고?
● 안희정이 꺼낸 '전국민 안식제' 실현가능한가?

정치인 손학규는 모르더라도 그가 추구하고 내세웠던 ‘저녁이 있는 삶’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평일에 나의 시간이란 건 그저 꿈만 꿀 뿐, 주말 이틀 다 쉬면 'THANK YOU', 하루라도 쉬면 ‘그래도 THANK YOU' 라고 생각하고 사는 저를 포함한 많은 월급쟁이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정말 '아, 정말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구호였죠.

이번엔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전국민 안식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교수님들만이 우아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은 ‘안식년’을 전국민이 쓸 수 있다고? 10년을 일하면 1년의 안식년이 주어진다니, 귀가 솔깃해지는 내용입니다. 그것도 쉬는 1년 동안 돈도 원래대로 받을 수 있답니다.

● '전국민 안식제', 어떻게 가능한가 

안 지사 측이 제시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임금을 2년에서 3년 동결하면 그만큼 돈이 굳습니다. 그 돈으로 쉬는 사람에겐 원래 줬던 돈만큼 주고, 남는 돈으로는 신규로 채용도 한다는 겁니다. 2년에서 3년 정도 전직원이 연봉 동결을 참으면 그 기간이 끝나고 나서부터는 전직원이 돌아가며 1년을 쉴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는 설명입니다.

쉬는 사람은 돈 받으며 쉬니 좋고, 거기에 고용까지 창출하니 이렇게만 되면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죠. 예를 들어 평균연봉 6천만 원의 직원 1000명이 근무하는 직장의 경우 매년 3.5%씩 인상되던 임금을 2년간 동결하면 연간 40억 원대의 여유 재원이 발생합니다.

이로 인해 안식년을 쓰는 직원들에게 연봉을 지급하고 초봉 2천5백만 원의 신규직원 10%를 채용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일단은 공공기관에서 시행을 한 뒤에 제도가 안착되면 민간 기업에까지 장착시키겠다는 게 안 지사의 구상입니다. 눈치를 보면서 결국 아무도 못 쉴 바에는 전국민 안식제를 문화로 정착시켜서 모두가 돌아가면서 정정당당하게 쉬자는 게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

● 10년 동안 일 안한 사람들은 쉴 방법이 없나?

10년 동안 한 직장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죠. 대표적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있습니다. 그 근로자들은 1년에 1달 안식 월을 주는 게 전국민 안식제 패키지의 한 축입니다. 현재는 근속 3년 이하 근로자에게는 연가 15일을 주고 있는데 이를 근속기간과 상관없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모든 근로자에게 동등하게 연가 25일을 보장한다는 겁니다.

필요하면 통째로, 아니면 쪼개서 쓸 수 있습니다. 또 기업의 특성에 따라 꼭 10년에 1년이 아니라, 5년에 6개월, 3년에 3개월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할 수 있다고 안 지사 측은 설명했습니다.
전국민 안식제
● 왜 지금 '전국민 안식제'인가

우리나라 국민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는 건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죠. OECD 국가들 중 노동시간으로만 따져 2위입니다. 연간 노동시간으로 따져보면 OECD 평균 국가들에 비해 우리는 두 달을 더 일하고 사는 셈이죠.

이렇게 장시간 일하는데 억울하게도 노동생산성은 OECD 최하위 수준입니다. 거기에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우리는 그 변화에 맞춰 새로운 지식과 역량을 습득해야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심지어 법으로 보장된 휴가마저 제대로 쓰고 있지 못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더 이상 사회변화에 대처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 속에 나온 게 바로 ‘전국민 안식제’입니다. 쉬는 동안에 어떤 이는 정말 쉴 수도 있고, 어떤 이는 공부를 할 수도, 어떤 이는 여행을, 어떤 이는 육아를 할 수 있습니다. 공공부문에만 안식년제를 도입해도 15만 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안 지사 측은 설명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의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은 사회복지공무원 등 일부 직종에 국한되지만 안 지사의 ‘전국민 안식제’를 도입하면 추가 재원 없이 전 분야의 공공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깨알 비교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 "전국민 안식제는 안희정의 아이디어"…왜 이런 생각을?

안희정 캠프의 한 관계자는 ‘전국민 안식제’에게 관심을 보이는 저에게 처음부터 이 아이디어 자체가 다른 참모들이 아닌, 안 지사 본인의 머릿속에서 나온 거라고 귀띔했습니다. 그는 왜 이런 생각을 한 걸까요. 그 방점은 ‘쉼표’ 에 있습니다. 정말 쉼이 있는 삶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물론 일자리가 없어서,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과 다른 대우에 고통 받는 사람도 많은 상황에서 과연 ‘쉼표’를 꺼내는 게 맞는 건지 고민도 뒤따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인생 ‘2모작’ 시대에 회사 한번 들어갔다고 거기에 뼈를 묻을 수 있는 시대도 아닌 만큼 자기 계발이 필요한데 우리 사회가 그런 짬을 주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은 버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저 자식 교육시키고 부모 봉양하다가 퇴직한 뒤 갈 곳 없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 할 때라는 거죠.

결국 ‘쉼표’도 중요하지만 그 쉼 속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향상시키자는 얘깁니다. 주5일 근무제를 도입했을 때도 처음에는 '뭐지?' 했지만 이제 모두가 그에 익숙해진 것처럼 ‘전국민 안식제’도 그렇게 해보자는 겁니다.

● '전국민 안식제' 대타협은 가능한 것일까?

안희정 지사가 공약하긴 했지만, 안 지사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대통령의 권한만으로 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일단 공공부문을 우선적으로, 공공부문 노조와 정부의 타협으로 시행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게 정착이 된 뒤 대기업, 금융권, 중소기업 등으로 이 문화가 자발적으로 확산되는 모델을 생각하는 거라고 안 지사 측은 설명했습니다.

이미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기업들도 꽤 있다고 하는군요. 어렵게 합의를 이뤄냈지만 또 결국 파기되고 말았던 2015년 9월 노사정 대타협의 기억을 갖고 있는 저로서는 정말 이게 타협이 될까, 의구심을 지우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인건비 총액이 증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측이 거부할 이유가 없고, 근로자들 또한 2년이나 3년 정도만 참으면 그런 제도가 정착할 수 있다는 데 동의만 한다면 어려울 거 없다고 안 지사 측은 설명했습니다. 타협과 합의, 안 지사가 내세우는 주특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소야대의 전형인 충남도를 이끌며 타협을 통해 합의를 이끄는 법을 체득했다는 거고, 이는 안지사와 이제 뗄 수 없는 키워드인 ‘대연정’과도 상통하는 부분입니다. 정리하면, 안 지사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10년 일한다고 1년 쉴 수 있는 게 아니라, 안 지사가 대통령이 되면 자신의 특기를 살려 ‘전국민 안식제’를 도입해서 정착시켜보겠다고 한다, 오늘은 이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하나 덧붙이자면, 그가 대통령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되는 누군가가 좀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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