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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斷想 - 웃음과 민심(民心)

김영창 기자 neokim@sbs.co.kr

작성 2017.03.16 15:38 수정 2017.03.16 15:40 조회 재생수6,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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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보도와 관련해, 제보화면에, 피의자 출두에, 집회 소식에, 헌재 소식 등 몇 날 며칠 동안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관련 영상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그 중 당신에게 가장 기억 남는 영상을 꼽으라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라 몇몇 영상이 바로 떠오르지만 당시 수사를 받고 있던 피의자 고영태가 의도를 갖고 찍은 제보 영상 등을 제외하면, 내게는 두 장의 이미지가 커다랗게 다가온다. 보도 영상을 하는 사람이니 그쯤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영상을 보고 의미를 파악하는데 무슨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저의 선택이 큰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 검찰 조사 (사진=조선일보 2016.11.07)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도착 (사진=SBS 방송 2017.03.12)그 중 한 장은 검찰청에서 수사를 받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휴식 중 팔짱을 끼고 수사관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고, 또 한 장은 청와대를 떠나 사저에 도착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측근의 의원들과 지지자들을 만나는 장면이다. 각각 단독 보도로 큰 파문을 일으키며 신문과 TV 화면을 가득 메웠던 이 영상을 보고 당신은 무엇을 느꼈나?
우병우, 박 전 대통령그런데 이 두 장면은 다른 듯하면서도 같은 공통점이 있다. 다른 점 중 하나는, 일반인의 접근이 차단되고 폐쇄된 공간에서 촬영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 못한 상황을 잡은 점이라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신문, 방송 등 모든 미디어가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던, 공개되고 예상 가능했던 상황이라는 점이다. 공통점은 등장인물의 웃음이다. 결과적으로 이 웃음은 민심의 향방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 웃음이 문제가 됐을까?
 
일반적으로 정치, 경제 등의 복잡한 사안은 충분한 배경 지식과 지속적인 정보의 유입이 전제되지 않는 한, 국민 개개인이 나름의 판단을 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때문에 이러한 사안은 언론사나 오피니언 리더 등의 의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속성을 띄고 있다.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변호사 (사진= 조선일보 게재 2016.11.08)그러나 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만 주어지면 누구나 나름의 해석을 내릴 수 있는 영상의 즉물성(卽物性)은, 이런 경우에 큰 위력을 발휘한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국정 농단의 한 피의자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던 중이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결정으로 청와대를 떠나 사저로 돌아온 순간이라는 상황은 어떻게 해석해도 웃음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웃음은 뭔가 설정된 상황이 잘못된 것이거나, 헌재의 결정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후폭풍을 일으켰던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도착 (사진= SBS 중계화면 2017.03.12)이 장면을 찍은 기자와 소속 언론사는 물론 단독 보도의 의미가 더 크게 와 닿겠지만, 독자와 시청자 입장에서도 이 장면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위 영상들에 의미를 두는 이유는 첫째, 그 자체로 많은 시각적인 정보를 담고 있어서 검찰 수사와 관련된 사안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현재의 생각 등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둘째는 그동안 구구한 억측으로 떠돌던 얘기나 이전의 불분명했던 보도들에 대해 신뢰성을 더하면서, 여론을 형성하고 움직이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이미지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고 정치 생명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정치인의 웃음을 곧이곧대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웃음 뒤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는 당사자만이 알 일이나, 도무지 웃을 수 없는 현실에서 이 모습을 보는 민심은 복잡하기만 하다.
 
물론 같은 장면을 보고도 입장과 정치적 견해 등에 따라 해석을 달리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글이나 말에 비해 해석의 폭이 좁은 것이 영상이라 최소한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크게 이견은 없을 것이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광화문 한복판에서 내가 본 풍경은 너무도 낯설었다. 드문드문 지켜 서서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음기를 잃고 불안과 초조에 쌓여 있었다. 대중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TV카메라 기자라 그동안 현장 취재를 하면서 성난 민심을 만나기도 했고, 최루탄에, 돌팔매질에 온갖 수난을 다 겪었지만 그렇게 차분하고, 낯설고, 가슴 서늘했던 기억은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웃어야 할 사람은 국민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의 대한민국은 민심의 이쪽도 저쪽도 모두 웃음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