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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독수리의 억울한 죽음…범인은 누가 잡나?

[취재파일] 독수리의 억울한 죽음…범인은 누가 잡나?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았던 독수리와 가창오리가 충남 청양군의 한 논에서 먹이활동을 하다가 독극물에 중독돼 집단폐사한 지 3주가 지났다. 독수리는 멸종위기종 2급이자 천연기념물 243-1호다. 가창오리 역시 해마다 30여만 마리가 우리나라를 찾고 있는데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개체수가 전 세계에서 관찰되는 가창오리 숫자와 거의 맞먹는다고 한다.

독극물 중독으로 피해를 본 독수리는 20마리로 이 가운데 11마리는 죽었고, 중독이 덜해 구조된 9마리는 치료를 받고 지난달 28일 다시 야생으로 돌아갔다. 가창오리는 51마리나 죽었다.
독수리의 억울한 죽음
국립환경과학원은 독수리, 가창오리 폐사체가 발견된 지 일주일가량 뒤 농약중독이 원인이라고 밝혔다. 가창오리와 독수리 먹이에서 독성물질인 해충제 성분이 나왔다는 것이다. 누군가 농약을 묻혀 논에 뿌려놓은 볍씨를 가창오리가 먹고 죽었고, 죽은 동물만 먹는 독수리가 다시 가창오리 폐사체를 먹어 2차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불법적인 밀렵행위로 인해 겨울철새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농약을 이용한 밀렵은 야만적 범죄행위다. ‘야생생물 보호·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유독물이나 농약 등을 살포해 야생생물을 포획하거나 죽이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독수리의 억울한 죽음
 독수리와 가창오리 폐사체가 무더기로 발견된 지난달 21일 충남 청양군은 야생생물관리협회와 야생동물구조센터의 도움을 받아 폐사체를 수거하고 현장조사를 벌였다. 경찰도 지구대원들이 사고현장으로 나와 피해실태를 파악했다. 청양군과 문화재청은 한 목소리로 폐사원인부터 밝혀야 하는 게 순서라고 입을 모았다.

국립환경과학원의 폐사체 검사 결과가 나와야 경찰에 수사의뢰를 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고발에 앞서 목격자등을 상대로 탐문조사를 하고, 도로 CCTV도 조사해 용의자를 찾아보겠지만 폐사원인이 밝혀져야 제대로 수사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독수리의 억울한 죽음
독수리와 가창오리의 밀렵원인을 밝히고 범인을 찾는 등 사고를 수습할 책임이 있는 청양군, 문화재청, 환경부, 청양경찰서 등 4개 기관의 역할은 그게 다였다. 폐사원인이 농약중독으로 밝혀진지 2주가 지났지만 그 동안  모두 손을 놓고 있던 사실이 취재결과 드러났다. 어느 기관 한 곳이라도 밀렵사고를 처리하기 위한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고 서로에게 책임을 미뤘다.

경찰은 “환경문제여서 군청에 특별사법경찰이 있기 때문에 군청에서 수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지구대에서 초동 수사 후 그만 뒀고, 군청에서 정식 고발을 해오면 본격수사 하겠다고 밝혔다. 특사경은 철도,환경,위생 등 전문성이 필요한 특정 직무를 맡고 있는 행정공무원에게 관할 검사장이 단속,조사,송치 등의 업무를 부여한 제도다.

그러나 국립환경과학원에서 농약중독이 폐사원인이라고 밝혔고, 언론이 보도한 지도 2주나 됐는데, 군청으로부터 수사의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경찰이 적극적인 수사의지가 없다는 것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농약중독에 따른 밀렵이 특사경만이 해야하는 전문적인 영역인지 되묻고 싶다.

청양군청의 태도도 한심하다. 군청은 “특사경이 있지만 경찰처럼 수사를 할 수가 없어서 한계가 많아 주민을 상대로 적극적인 조사도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 왜 경찰에 아직까지 수사의뢰를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제대로 답변을 못했다. 청양군청은 “경찰에서 수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도 했다. 책무를 다하지 않고 경찰눈치만 본 것 같다는 생각이다.
독수리의 억울한 죽음
천연기념물 보호와 관리책임이 있는 문화재청도 손을 놓기는 마찬가지다. 독수리가 11마리나 밀렵 2차 피해로 죽었지만, 환경과학원에서 폐사체를 검사 후 어떻게 처리 됐는지 조차 알지 못했고, 수사의뢰도 없었다. 취재를 하자 그제서야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경찰에 공문을 보내 수사의뢰를 하겠다고 답했다.

멸종위기종 등 야생생물 관리 책임이 있는 환경부의 태도도 다른 기관보다 나을게 없다. 소속기관인 국립환경과학원에서 폐사원인을 밝혀 청양군청에 통보해준 게 다였다. 주무부서인 자연보전국 생물다양성과에서는 언론보도가 나간 뒤에도 밀렵사고 발생 사실은 물론 처리과정도 파악하지 못했다. 독수리뿐 아니라 가창오리까지 밀렵으로 떼죽음 당했지만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독수리의 억울한 죽음
지금은 겨울철새들의 막바지 귀향이 한창인 때다. 이달 말쯤이면 독수리나 가창오리 모두 머나먼 북녘하늘 너머 번식지로 이동하게 된다. 한반도에 겨울을 보내러 왔다가 잔혹한 불법 행위로 가족이나 친구, 이웃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독수리와 가창오리의 여정이 얼마나 슬프고 힘들까? 동식물의 미래는 우리의 미래다. 생태계 구성원인 동식물이 잘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은 인간에게도 재앙이다. 밀렵꾼을 잡아 처벌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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