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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뭉쳐야 산다."…격화하는 중국발 '세계 철강 전쟁'

[취재파일] "뭉쳐야 산다."…격화하는 중국발 '세계 철강 전쟁'
흔히, 철강을 '산업의 쌀'이라고 부릅니다. 첨단 IT산업에서 자동차, 건축, 중화학공업까지 산업계에서 철이 쓰이지 않는 곳은 없기 때문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우리 몸에도 약 4.5g의 철이 들어 있습니다)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며, 철강산업은 조선·석유화학산업과 함께 ‘3대 장치산업’으로 불리며 우리나라의 국가 성장을 고도로 이끈 ‘핵심 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오랜 시간 우리나라 경제의 ‘허리뼈’ 역할을 해왔던 철강산업이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휘청거린다.’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적 경기 침체 속에, 수요는 감소하고 공급은 과잉이 되며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빠른 속도로 성장한 경쟁국들의 철강사들은 우리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공격이 매섭고 또 무섭습니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세계 철강시장을 장악하겠다.”란 구호를 내걸고, 자국의 대형 철강업체들을 합병시키는 ‘몸집 불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겁니다.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단위당 생산비가 감소한다.’는 이른바 ‘규모의 경제’를 통해 세계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야망을 밝힌 겁니다.

“뭉쳐야 산다.”라는 구호는 단순한 외침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미 현실이 됐습니다. 중국은 지난해 말, ‘보산강철’과 ‘무한강철’ 두 대형철강사를 통합해 ‘보무강철’이란 초대형 철강사를 탄생시켰습니다. 이렇게 몸집이 불어난 ‘보무강철’은 조강생산량 6,380만 톤을 기록하며, 단숨에 세계 2위 철강업체로 도약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합병 계획을 발표한 지, 불과 5개월여 만입니다.

● 중국, '선통합-후분배' 정책으로 세계 철강업계 주도
중국 철강 산업
‘보무강철 탄생’이 국제 철강업계 던진 메시지는 한마디로 ‘충격’이었습니다. 단순한 ‘기업 합병’을 넘어, 세계 경제를 바라보는 중국 정부의 절박하고 단호한 시각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 불경기 속에 중국 경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수요가 줄어들며, 내수는 물론 수출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 목표치를 6.5%로 정했습니다. 지난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6.7%로, 26년 동안 가장 낮은 성장세를 보였는데, 올해는 목표치를 이보다도 더 낮춰 잡은 겁니다.

이 같은 세계 경제 불황은 ‘산업의 쌀’이라고 할 수 있는 철강 산업엔 더 치명적입니다. 불황은 수요 감소를 부르고, 수요 감소는 곧 생산량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산량 감소 = 철 소비 감소’란 공식이 성립하게 됩니다. 여기에, OECD까지 중국에 과잉설비 감축을 압박했고, 중국의 철강산업은 더 궁지로 몰리게 됐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꺼내 든 회심의 카드가 바로 ‘철강업체 합병’이었습니다. 앞서 설명해 드린 ‘규모의 경제’를 통해, 시장의 불확실성에 맞서겠단 겁니다. 중국 정부의 결정은 빨랐고, 행동은 과감했습니다. 자국 내 대형 철강사들을 8,000만 톤 급 3~4곳, 4,000만 톤 급 5~8곳을 통폐합하기로 한 것입니다.
 
과감한 통폐합을 통해 상위 철강사 10곳 중 6곳을 자국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오는 2025년까지, 철강사 간 통합을 통해 회사 규모를 키우고, 그 뒤에 시장 논리에 따라 설비와 제품,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이른바 ‘선통합-후분배’ 정책입니다. 그 정책에 따른 첫 ‘작품’이 바로 보무강철이었습니다.

● 중국, 철강사 합병 통한 규모의 경제로 '고급화' 추구
 
하지만, 보무강철의 탄생이 단순히 철강사의 ‘대형화’만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양보단 ‘질’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형화’란 수단을 통해 ‘고급화’를 이루겠단 게 궁극적인 지향점인 겁니다. 그동안 중국 철강업은 품질이 낮은 제품들을 싸게 또 많이 공급하는 전략으로 시장을 장악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가상품 물량공세만으로는 나날이 발전하는 새로운 산업 체계에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그보단 높은 기술력을 토대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 정부는 궁극적으로 ‘질 좋은 제품 생산’을 위해 규모를 키우는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 드렸듯, 생산 규모가 커질수록 질 높은 제품을 생산하기는 쉬워집니다. 대규모 설비를 갖추면 상대적으로 적은 설비투자로도 생산량을 끌어올릴 수 있고, 대량구입에 따른 운임과 원료비 감축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론 ‘분업화·전문화’도 이룰 수 있습니다.

가족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혼자 살던 남성이 결혼해 자식을 둘을 낳았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혼자 살 땐 빨래와 요리, 청소, 설거지를 모두 혼자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족이 4명으로 늘어나면 아버지는 빨래, 어머니는 요리, 누나는 청소, 동생은 설거지 이렇게 ‘업’을 나눌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각자 맡은 부문에서의 전문성도 높아지게 됩니다. 노하우가 쌓이며 기술력이 더 발전하는 거죠. 이게 바로 중국 정부가 ‘규모의 경제’를 통해 궁극적으로 실현하려는 ‘고급화 전략’입니다.

실제로 보무강철은 이번 통합을 통해 1) 설비구조조정을 통한 생산효율화, 2) 생산기지의 특화, 3) 제철연구소 합동연구, 4) 자동차 및 전기강판 등 고급철강 생산, 5) 수익성 개선을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저성장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체질부터 바꾼 겁니다.

● 중국 보무강철 "자동차 강판시장을 주도하겠다"
 
‘철강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 강판에 대한 보무강철의 공격은 특히 집요합니다. 생산량을 기존 940만 톤에서 당장 올해 1000만 톤 이상으로 목표를 상향 조정했습니다. 이는 전 세계 자동차 강판 판매량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수준입니다. 고급 철강 제품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겁입니다.

더 나아가, 동남아 수출 확대를 위해 동남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인 태국(2015년 말)과 인도(지난해 6월)에 가공센터 설치도 마쳤습니다. 또한, 인도 피아트나 GM 인디아 등 세계적 자동차 기업 해외 현지 공장과 협업해, 현지 시장 공략에 나선다는 전략도 함께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엔저 현상으로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중국의 저성장으로 수출길이 막히고 있는 우리 철강업계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값싼 중국산 철강 제품이 쏟아지며 중국서 수입하는 물량은 7.2배나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우리가 중국으로 수출한 물량은 15% 감소했습니다.

지난달 철강협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로 수입된 철강재는 총 2,72만 3천 톤으로, 전년보다 7.5% 증가했습니다. 2010년 이후 최대치입니다. 그렇다 보니 중국산 철강 제품의 국내 내수점유율은 25.7%까지 높아졌습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철강재의 1/4은 중국산인 겁니다. 이렇게 중국산 저가제품에 시장을 빼앗기고 있는 상황에서 자동차 시장까지 내주면 우리 철강산업이 설 곳은 점점 더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 산업변화에 대처 못한 유럽 철강산업 '반면교사'
구조조정 하는 철강업체
이 같은 세계 산업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유럽 사례를 반면교사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 철강산업은 2008년 금융위기와 2011년 재정위기를 겪으며 연이어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또, 2014년부턴 중국산 저가 제품이 밀려 최대 경영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자칫 철강산업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1) 수요 감소와 2) 공급 과잉, 3) 높은 생산비용, 4) 체계적인지 못한 정부 대응, 이 가지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했었단 점이 오늘 우리 국내 철강 산업계가 겪는 어려움과 유사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같은 위기에서 가장 절실한 건 ‘정부와 기업 간의 협력’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세계 경제 변화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여서, 기업 혼자만의 자체 혁신으론 돌파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정부주도의 구조조정을 통해 탄생한 보무강철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과거 일본도 엔고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역할을 분담해 혁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정부는 양적 완화를 통한 시장 자금공급확대, 가전과 주택 등 보유 제도를 개선해 내수 수요를 극대화하였고 또 민간투자 유도나 중소기업 지원 등을 통해 제조업 활성화를 꾀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부터 논의 중인 정부 주도의 철강 산업 구조조정 방향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부가 지금 어떤 결정을 하느냐가 우리 철강 산업의 내일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금융공기업의 단기적 성과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산업 경쟁력을 먼저 고민하는 의사 결정이 필요한 겁니다.

● "첨단 고부가가치 철강 제품으로 승부해야"
 
우선, 기업은 제품 차별화의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해 경쟁사와 비교 우위를 점해야 합니다. 포스코가 생산 중인 ‘기가스틸’이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가스틸’은 1㎟당 100㎏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1GPa(기가 파스칼, 1파스칼=9.8㎏/㎥)급 초고장력 강판을 말하는데, 주로 자동차 강판과 같이 안전이 중요한 제품에 쓰이는 ‘최고의 강재’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강판은 800여 개 철강회사 가운데 20곳 정도만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 장벽이 높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기가스틸’은 업계에서 ‘꿈의 강재’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알루미늄, 탄소섬유 같은 다른 첨단 소재와 비교해서도 경제성이 좋고, 우수한 성형성과 안전성이라는 특성이 있어 기존 자동차 강판과는 경쟁력을 갖췄습니다.

특히, 최근 자동차 회사들이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높은 초고장력 강판을 채택하는 비율이 급증하는 추세를 고려하면, 이처럼 높은 기술력을 토대로 한 맞춤형 제품을 많이 만들어내는 게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과 차량 개발 초기 단계부터 협업해, 맞춤식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기술 수출과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도 필요합니다. 제품뿐 아니라 우리가 개발한 우수한 ‘기술’을 수출하는 것도 블루오션 공략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 국내 제철사는 원료를 예비처리하지 않고, 자연 상태의 가루 철광석과 유연탄을 그대로 사용해 철을 만드는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관련 특허만도, 국내 224건, 해외 20여 개국에서 58건으로, 수백 년 이상 이어온 용광로를 대체할 ‘친환경·고효율 제철공법’을 새로 만들었다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기업만이 관련 기술을 상용화하여 중국, 인도, 이란 등 세계 각국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 고유한 기술을 수출해 벌어들이는 수익만도 수조 원에 달합니다. 기존 철강업이 철강재 생산 및 판매라는 사업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기술을 수출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추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사격 기술이 최고라도, 조준을 잘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철은 매우 오래전부터 우리 생활에 가장 널리 이용되는 금속입니다. 숟가락·젓가락부터 가전제품, 자동차, 비행기, 산업 현장 장비 기계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철이 없는 우리 삶을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산업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처럼 ‘가장 고전적인’ 철강 산업도 자의와 동시에 타의로, 격정적인 변화 한가운데 서게 됐습니다. 앞으로 세계 철강 산업이 겪을 변화상은 다른 산업들이 겪을 변화의 ‘바로미터’가 될 것입니다.

과거 아테네 올림픽 때 올림픽 사격 종목에서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한 선수는 결승에서 0점을 쏴 탈락했습니다. 표적지에 정확하게 명중시키긴 했는데, 어이없게도 옆 선수의 표적지에 대고 ‘정확하게’ 총을 쐈던 겁니다. 사격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도, 애초에 조준 자체가 잘못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산업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적 기술력과 노하우, 네트워크를 갖췄단 평가를 받는 우리 해운업·조선업의 몰락이 이를 반증하고 있습니다. 결국, 아무리 기술력이 좋아도, 나아갈 방향을 정확히 제시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철강산업은 지금, 표적지를 정확하게 조준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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