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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독성물질 기저귀' 시험 결과는 "검출 안 됨"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불신의 비용'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7.03.13 17:33 조회 재생수2,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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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독성물질 기저귀 시험 결과는 "검출 안 됨"
'독성물질 기저귀' 파문 한 달여 만에 결과가 나왔습니다. 프랑스의 한 소비잡지에 기사가 실린 시점부터 따지면 48일 만입니다. P&G의 유아용 기저귀 제품에서 다이옥신과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기사가 실린 건 1월 24일이었고 국내에서 파장이 일었던 건 2월 3일부터입니다. 빠르면 2주 걸린다던 독성시험 기간은 2배 넘게 소요됐습니다.

결과는, "독성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입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P&G에서 제조해 국내에 유통 중인 유아용 기저귀 4종(베이비 드라이, 스와들러 센서티브, 크루저, 이지업)을 1개 제품씩 수거해 2개 시험기관에 시험을 의뢰했습니다. 프랑스 조사에서 독성물질이 검출됐다던 제품은 베이비 드라이였습니다만 다른 것들도 함께 검사했고 기관 2곳에 각각 의뢰해 일치된 결과가 나오는지 살폈습니다. 두 기관 모두 국제공인시험기관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시험 결과 4개 제품 모두에서 다이옥신과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기술표준원은 밝혔습니다.

기술표준원은 프랑스 잡지의 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번에 조사한 다이옥신과 살충제는 제조 과정에 의도적으로 사용되기보다는 (다이옥신의 경우) 배기 소각시설 등에서 배출되어 대기, 토양 등에 잔류되거나 살충제가 사용된 환경에 잔류하다가 식품, 제품 등에 혼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WHO(세계보건기구)를 인용해 "다이옥신 노출경로의 90% 이상이 음식물 섭취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위생용품으로부터 피부로 흡수되어 미치는 영향은 식품에 비해 미미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습니다. 즉, 프랑스 잡지의 조사 결과가 잘못됐다고 하진 않았으나 우리 조사 결과에서는 나오지 않았으니, 저 조사에서 검출됐다는 다이옥신, 살충제 성분도 제조 과정보다는 외부에서 혼입됐을 것 같다...고 해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P&G 기저귀 파문 이후 부모들 관심은 대개 두 가지로 모아졌습니다. 첫째, P&G 기저귀에서 독성물질이 검출된 게 사실인가, 그리고 검출됐다면 아이에겐 얼마나 유해할까. 둘째, P&G 기저귀 외에 다른 기저귀는 안전한가(다른 제품에서는 독성물질이 검출되지 않는가). 기술표준원은 나름대로 이 관심에 대해 답을 내놨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는 위에 적었듯이 "국내 유통 중인 기저귀를 샘플 조사해보니 독성물질이 나오지 않았다, 설사 노출됐다 해도 피부로 흡수돼 미치는 영향은 식품에 비해 미미할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게 했습니다. "소비자 우려를 감안해 국내 여타 주요 판매 기저귀 제품에 대해 다이옥신 검출 여부를 조사하고 필요하면 식약처와 협력해 위해성 평가 방안을 마련하겠다." 앞으로 필요하면 하겠다는 겁니다.

1월 말에서 2월에 걸쳐 아이 부모들을 불안하게 했던 '독성물질 기저귀' 사태는 이로써 소결에는 이른 듯합니다. 다른 제품도 불안하다는 분들도 있겠으나 P&G 제품 외에는 독성물질이 나왔다고 언급이라도 됐던 기저귀는 아직 없습니다. 프랑스 잡지의 조사 결과를 부정할 만한 근거는 없습니다만, 적어도 국내 유통 중인 제품 조사에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샘플링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나올 수 있겠습니다. 그저 무작위로 수거해 맡긴 식이니까요. 일종의 '시범 조사' 성격이라 그랬을 것으로 이해합니다.) 파문 당시에 남아있던 P&G 기저귀를 그냥 둔 채 다른 제품을 구입해 썼거나 아니면 중고로 판매하는 등 다른 이에게 양도했거나 조금은 찜찜했지만 그대로 썼거나 여러 선택에 부모들은 직면했었죠. 어떤 선택을 하셨더라도 정부기관의 공식 발표로 마음의 짐이 조금은 덜어졌을 듯합니다.

이번 사태는 무엇을 남겼을까요. 이전 기사와 취재파일에 적었습니다만, 정부기관의 조사 결과가 나왔으니 다시 언급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발단이 된 프랑스 잡지의 조사부터 보면, 이렇게 파장이 커질 수 있는 조사 발표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준이 없다고 하지만 모든 독성물질에 모든 제품에 기준을 마련할 순 없습니다. 제조 과정에 혼입 가능성이 거의 없는 독성물질이 극미량 검출됐다고 해서 발표까지 하려면 좀 더 신중하게, 발표의 실익을 따져야 한다고 봅니다. (프랑스 현지에선 큰 반향이 없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일주일 늦게 파장이 일어난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한국 소비자가 더 민감한 소비자라는 의미이겠습니다. 그동안 여러 면에서 학습한 영향 때문이기도 할 거고요.) 이번 발표의 실익은 무엇이었을까요. 한국 소비자들은 불안해졌습니다. '기저귀에서 저런 독성물질이 나올 수도 있다.'고 알게 됐습니다. 한국 정부기관에서는 검사해보니 '검출되지 않았다.' 고 합니다. 불안함이 조금 가셨을 수도 있지만 찜찜함은 남았습니다. P&G는 혼쭐이 났습니다. 한국 시장에서 매출도 큰 영향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반사이익을 본 업체도 있을 겁니다. 프랑스 잡지의 조사는 P&G의 경쟁업체와 공동으로 실시했다고 하면서 조사 의도에 문제가 있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업체는 일단 어떤 조사든 문제 있다는 내용이 발표가 됐다면 적극 해명해야 합니다.'시간 지나면 잠잠해지겠지'는 때론 해법이 될 수도 있으나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중요합니다. P&G는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 어떤 걸 근거로 안전하다는 건지 (알면서도) 정보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언론의 요구와 소비자 항의가 이어진 뒤에야 수치를 제시했고 그나마도 잘못된 계산으로 수치가 바뀌기까지 했습니다.  정부기관 조사 결과가 미검출로 나와서 그나마 다행이나, 그렇지 않았다면 P&G가 이번 사태로 입은 유무형의 손실은 더욱 커졌을 것 같습니다.
P&G가 한 발 늦게 제시한 상세정보소비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간 여러 유해물질 검출과 유해성 논란을 취재하고 기사를 써왔던 입장에서 보면 한국 소비자가 조금은 둔감해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수년 전에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났습니다.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기업도, 정부도 안전하다고 했던 상황이었으나 수백 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대략 집계된 피해자만 2천 명이 넘습니다. 이런 참사를 봤는데 "그런 거 조금 나왔다고 안 죽어" "당신이 너무 민감한 거야" 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기술표준원 발표를 일단은 믿지만, 그 기저귀 제품이 특별히 유해하지 않다고 여기는 게 합리적인 태도라는 건 알지만, '혹시라도 문제 있는 거 아니야' 라는 불안한 마음이 남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저신뢰 사회, 이 시대 한국인으로 살며 감수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세금' 아닐까 싶습니다.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정확한 정보를 알고 판단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곳이라면 정부든 기업이든 언론이든 지지하고 그렇게 사회 전체의 신뢰도를 높여야 '이 세금'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자로서는 '이것도 나왔다', '저것도 나왔다' 하며 호들갑 떨지 않고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한 번 더 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