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칼럼] 斷想 - 영화 '쇼콜라(Chocolat)'

이카루스(Icarus)의 꿈은 어떻게 해석돼야 할까? 무모한 꿈은 결국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충고일까? 아니면 굳은 열정과 신념으로 한계에 도전하는 이에게 보내는 찬사일까?

이 영화는 변두리 서커스의 단역에서 출발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스타로 성공하지만, 그릇된 사회적 관념과 편견에 막혀 진정한 예술가의 꿈을 접어야 했던 얼굴색이 까만 광대의 슬픈 실화다.

'쇼콜라’는 초콜릿 또는 초콜릿같이 붉은 적갈색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영화의 제목처럼 주인공 쇼콜라는 초콜릿색의 피부를 가진 흑인이다. 자신의 이름 대신 피부색을 이름으로 달고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서 쇼콜라가 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영화 '쇼콜라(Chocolat)' 포스터
건장한 체격과 검은 피부 탓에 서커스단에서 식인종 역할을 하며 살아가던 쇼콜라는 퇴물 광대인 백인 푸티트와 콤비를 이루게 되면서 성공 가도를 달린다. 그러나 피부색을 떠나 누구보다 쇼콜라를 잘 이해하고 친근한 단짝인 푸티트 역시, 공연물의 창작에 대한 기여도나 비중 등으로 보아 두 사람 간의 출연료 차등은 당연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어쩔 수 없는 당시의 한 사람일 뿐이다. 

백인인 푸티트에게 늘 얻어맞고 엉덩이를 걷어차여도 항상 행복한 웃음을 지어 관객을 웃게 만드는 흑인 쇼콜라의 역할은, 당시 유색인종에 대한 관념과 가치를 상징하듯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 아무리 성공을 하고 스타가 되어도 결코 오를 수 없는 백인의 지위 때문이었을까? 안팎으로 쌓여가던 쇼콜라의 불만은 정반대의 역할로도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듯, 실제 공연에서 푸티트의 뺨을 후려치고 관객의 웃음을 유도한 뒤 푸티트와 결별한다.
쇼콜라와 푸티트
피부색을 넘어서 진정한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었던 쇼콜라의 꿈은, 아동환자를 위한 자선활동을 계기로 맺어진 백인 간호사와의 사랑과 함께 연극 ‘오델로’의 주역으로도 발탁되는 등 마침내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게 된다. 세익스피어 원작의 ‘오델로(Othello)’에서 주인공인 오델로는 북부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이지만, 흑인이 연극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동안 오델로 역은 마땅히 백인 대역이어야 했다.

그러나 쇼콜라는 ‘라파엘 파디야’라는 자신의 본명을 내걸고, 이전에 누구도 해본 적이 없는 ‘오델로’의 흑인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게 되지만 날고 싶은 꿈에 비해 하늘은 너무 낮았다. 객석의 한 구석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푸티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냉정하지도 않았지만 따뜻해 보이지도 않던 푸티트의 시선은 연극이 끝나고 난 후 관객의 야유에 덮여 사라지고, 쇼콜라의 끝없는 도전도 여기에서 멈춘다.
영화의 발명가 뤼미에르 형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에 시대상을 반영하듯, 이들 명콤비의 연기를 촬영 중인 영화의 발명가 뤼미에르 형제의 모습도 극 중의 한 장면으로 연출되고 있다. 또 실화를 소재로 제작된 많은 영화가 실존 인물의 인터뷰나 사진, 동영상 등의 자료로 엔딩을 장식하는 것처럼 이 영화 역시 두 사람의 실제 연기 장면을 담은 흑백 동영상이 마지막 장면으로 나온다. 발명의 이면에 논란이 있지만 프랑스는 세계 최초로 사진술이 발명된 나라이다. 현실을 그대로 재현해 정지된 상태의 이미지로 고착시킨 놀라운 ‘사진’에서, 움직이는 이미지인 ‘근대적인 의미의 영화’로 발명을 이어간 곳도 역시 프랑스. 영상 이미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할 수밖에 없는 배경으로, 이 영화에서도 영화라는 매체가 하나의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임종을 눈앞에 둔 쇼콜라가 옛 친구인 푸티트에게 건네는 작은 수첩에는, 과거 자신들의 역할처럼 푸티트에게 엉덩이를 차이고 사라지는 쇼콜라가 정지된 이미지로 연속해 그려져 있다. 푸티트가 빠른 속도로 수첩을 넘기자 푸티트에게 걷어 차여 사라지는 쇼콜라가 마치 동영상처럼 재현되며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푸티트는 결국 깊은 울음을 토하고 만다. 이 수첩에 그려진 연속된 그림은 바로 움직이는 이미지인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의 원리를 나타낸 것으로 이를 엔딩 장면의 브릿지로 활용한 프랑스 감독의 발상이 흥미롭다. 
영화 '쇼콜라'의 색감
또한 영화의 전편에 깔려 있는 옐로우(yellow)와 그린(green), 그리고 세피아(sepia) 톤 등이 혼합된 듯한 묘한 색감의 이미지는 당시의 상황이나 분위기와도 참 잘 어울린다. 최근 영화나 CF 등 웬만한 영상물은 포스트프로덕션(post-production)으로 색 보정 작업을 거치는 것이 제작과정의 하나로 당연시되고 있다. 물론 그 이유는 색(色)이 주는 메시지 전달 효과 때문이다. ‘쇼콜라’의 고풍스런 느낌과 비애가 함께 묻어나는 색채 감각은 그 자체로 감상의 소재가 될 정도로 섬세해 영화의 격이 한층 높아진 느낌이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