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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작년 '공사장 사고' 499명 사망…"20년 전 신도시 조성 때 같다"

"공사장에서 수십 년 일했는데 이런 사고는 처음이에요.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전남 여수의 한 신축 빌라 공사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10개월째 입원을 하고 있는 건설근로자 S 씨는 전화기 너머로 이렇게 말하고 한숨지었습니다. 올해로 57살인 S 씨는 지난해 5월 공사현장에서 철근을 옮기던 크레인에 고리를 연결하는 도중, 크레인이 고압전선을 건드려 감전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사고로 심한 화상을 입은 S 씨는 여전히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S 씨는 94년부터 공사 현장에서 일을 시작한 베테랑입니다. 그러나 심각한 산업재해는 갑자기 S씨를 덮쳤고, S 씨는 여전히 손과 발을 움직이기 어려워 퇴원해도 공사 현장 일을 맡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빌라 건물주인과 크레인 기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지만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S 씨, 전화기 너머로 연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고용노동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고용노동부는 위와 같은 S씨의 사례가 우리 나라에 광범위하게 퍼져있음을 증명하는 자료를 하나 발표했습니다. ‘2016년 산업재해 발생현황’입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분 산업현장에서 산업 재해는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자료를 살펴보면 눈에 띄는 수치가 있습니다. 바로 지난해 건설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통계입니다.

작년 건설현장에서 숨진 사람은 자그마치 499명입니다. 2016년 대한민국의 산업현장에서 숨진 사람이 모두 합쳐 969명인데, 그 가운데 절반이 넘는 499명이 ‘공사판’에서 숨진 겁니다. 건설업 종사자는 전체 산업인력의 7%밖에 안 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는 바로 다음날,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묻혀버렸습니다.

SBS에서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를 동시에 출입하는 기자로서, 저는 이 자료를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숨진 사람이 5백 명에 가까운데 이 자료를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건설 근로자가 사고로 사망하는 추세가 최근 3년 동안 급격하게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전년에 비해 62명이나 더 숨진 사람이 많아졌고(12%), 이 바람에 건설현장 사망 만인률(1만 명당 숨진 사람의 비율) 역시 1.58명으로, 전년 1.30명보다 크게 늘어났습니다.
아파트 공사 현장
왜 이렇게 갑자기 건설 근로자 사망자가 늘어났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지난해 아파트 경기 활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최근 2-3년 아파트 경기는 사상 최대의 호황을 구가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가을까지 아파트 가격은 계속 올랐고, 이 바람을 타고 건설사들은 전국적으로 아파트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실제 건설 기성물량(계약공사 물량 중 완성된 물량)을 살펴보면 2015년 100조 원이었다가 2016년엔 119조에 이릅니다. 공사만 늘어나서 사람이 많이 숨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요즘 아파트들은 대체로 고층 아파트입니다. 20층은 예사이고, 30층, 35층까지 올리는 추세입니다.

다리나 도로와 같은 토목공사와 달리, 아파트 건설은 여전히 사람 손에 많이 의존합니다. 아파트를 많이 짓고, 높이 올리는 와중에 하루 평균 한 명 이상(1.4명)은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통계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의 366명, 40% 가까운 사람의 사망 원인은 바로 ‘추락’이었습니다.

이런 사고는 건설현장이 크건 작건 가리지 않고 벌어집니다. 우리가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대형 건설사들의 아파트 공사현장에서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사망사고가 5건 이상 벌어진 대형 건설업체 D 산업과 D 건설 등 2곳을 최근 점검한 결과 32곳의 현장에서 무려 400건의 법 위반 사항을 적발했습니다. 법 위반 내용 역시 지극히 ‘후진적’입니다. 추락위험장소에 안전난간을 설치하지 않았거나, 붕괴 또는 감전예방조치를 하지 않는 등 안전보건조치 위반 사항이 전체 적발 사항의 3분의 1을 넘었습니다.

대형 건설 회사의 공사 현장이 이럴진대, 그보다 소규모의 현장은 얼마나 심각하겠습니까. 제가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보기 위해 연락한 한국산업안전공단의 한 실무자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최근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다치고 숨지는 정도를 보면 90년대 초 1기 신도시 조성 때가 생각날 정도"라고 말입니다.

3년 전 우리는, 헌법재판소의 표현을 빌면 ‘참혹하기 그지없는 세월호 참사’를 겪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여러 교훈 중 하나는 ‘안전의 중요성’입니다. 진행이 더디더라도, 비용이 좀 오르더라도 ‘안전’은 절대 확보되어야 할 요소라는 교훈입니다. 304명의 귀중한 목숨을 통해 우리가 배운 교훈을, 지난해 숨진 499명의 목숨에서 다시 떠올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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