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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보고도, 검토도, 지시도 없었다"…2명의 재판관이 추정한 세월호 7시간

그제(10일) 오전 11시 21분,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했습니다. 하지만, 헌재는 여러 탄핵 소추 요건 중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부분은 대통령 파면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국민의 생명권 보호 의무가 대통령에게 포괄적으로 주어져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고, 무능은 법적 판단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절망했습니다. 헌재의 파면 결정 후, 유경근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눈물을 흘리며 “왜 세월호만 안 됩니까. 우리 애들 왜 죽었는지 그거 하나만 알려달라는데…"라고 절규했습니다. 이 절규의 이면에는 검찰 수사와 특검 수사, 그리고 헌재의 탄핵 심판에도 불구하고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대통령의 소위 세월호 7시간 동안의 행적이 자리하고 있을 겁니다.

● 탄핵 사유가 되지 못한 세월호 참사, 그리고 7시간

하지만, 그제 헌재의 심판은 세월호 7시간 동안의 행적에 대한 몇 가지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비록 헌법재판관 전원의 판단이 아닌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 두 명의 보충의견이라는 형식이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에 대한 판단도 내렸습니다.

지금까지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 측은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에 '정상근무'하면서 해경, 국가안보실 등 유관기관 등을 통해 피해자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해 왔다고 주장해 왔습니다.(대리인단 답변서) 그리고 그 근거로 국가안보실과 사회안전비서관 등으로부터 12번의 서면보고와 3번의 전화보고를 받았고, 5번 전화로 지시한 점을 들었습니다.(재판부 석명사항에 대한 답변서)

이에 대해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은 우선 세월호와 관련된 전화보고와 전화지시가 실제로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습니다. 전화 통화를 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고, 또 박 전 대통령 측의 설명이 논리적으로 아귀가 안 맞는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 2명의 재판관이 추정한 세월호 7시간…"전화 보고, 전화 지시는 없었다"
대통령에 세월호 7시간 밝히라고 요구한 헌재
박 전 대통령 측이 주장하는 세월호 7시간 동안의 8번의 통화 중 기록이 있는 것은 오후 12시 50분, 당시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에게 기초연금법과 관련한 국회의 협상 상황을 전화 보고 받았다는 것이 유일합니다. 그런데 그 날 가장 큰 관심사였어야 하는, 그래서 박 전 대통령 측에서도 7번 통화가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세월호와 관련된 통화기록은 공교롭게도 모두 존재하지 않습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5시쯤 중앙재난대책안본부에 오기 전까지 박 전 대통령은 계속 청와대 관저에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8번의 통화가 이뤄진 곳도 청와대 관저라고 주장했죠. 그리고 8번의 통화 모두 청와대 수석이나 해경청장 등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과 한 통화였으니 최근 논란이 된 ‘대포폰’을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통화기록이 있는 것은 고용복지수석과의 통화뿐이다?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월호와 관련된 통화, 즉 전화보고나 지시는 없었다고 보는 게 더욱 합리적일 겁니다.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도 이런 판단에 근거해 고용복지수석과의 통화를 제외한 나머지 통화는 실제로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박 전 대통령 측이 ‘지시내용’이라고 제시한 것들도 ‘세월호 관련 전화 통화는 없었다’는 결론을 강화시켰습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10시 30분, 해경청장에게 전화해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을 지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재판부 석명 사항에 대한 답변) 물론, 통화 사실을 입증할 증거는 없습니다. 그런데 해경청장은 국회 국정 조사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9시 53분 쯤 특공대 투입을 지시했다고 증언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30분,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이 해경청장과 통화를 했다고 상정하고 통화 내용을 추론해 보겠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연히 당시 구조 진행 상황을 물었을 겁니다. 아니 물어야만 했을 겁니다. 해경청장은 당시 구조 업무를 책임지고 있던 해경의 수장이었으니까요.

이에 대해 해경청장은 특공대 투입은 이미 지시했고, 세월호는 거의 완전히 침몰했다고 보고했을 겁니다. 실제 검찰 수사 결과 세월호는 오전 10시 17분 쯤 이미 108.1도, 즉 완전히 침몰한 상태였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해경청장의 보고를 받고 잠수사를 대규모로 투입하라거나 다른 구조 방법을 모색하라고 지시했을 겁니다.

그런데 10시 30분 해경청장과 통화했다고 주장하는 박 전 대통령 측이 통화 당시 지시사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특공대 투입’이었습니다. 이미 특공대 투입을 지시했는데, 또 특공대 투입을 지시한다? 아귀가 안 맞습니다. 김이수, 이진성 두 재판관은 “ 실제로 해경청장과 통화를 하였다면 해경청장이 이미 지시한 사항을 보고하였을 것인데도 같은 내용을 다시 지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당시 세월호 상태를 감안할 때 “ 해경청장에게 지시하였다는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 (사진=연합뉴스)
● '09:24', '09:40', '10:00'…의심되는 서면 검토

김이수, 이진성 두 재판관은 박 전 대통령 측이 관저에도 집무실이 있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 당일 관저에 있었던 것도 ‘정상근무’였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렸습니다. 관저에 있는 것은 정상근무가 아니고, 박 전 대통령이 정상근무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의 심각성을 깨달았어야 할 시간들은 놓치고 오후 3시쯤에야 뒤는게 깨달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관저 ‘ 집무실’에서 ‘ 정상근무’하고 ‘ 정상적’으로 ‘ 지시’했지만, ‘ 오후 3시쯤’에서 상황을 심각성을 깨닫고, ‘ 즉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 지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9시 24분, 국가안보실은 청와대 주요 직위자들에게 업무용 휴대전화로 “474명 탑승 여객선 침수신고 접수, 확인 중”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습니다. 이 시간 박 전 대통령 측 설명으로는 박 전 대통령은 관저에 있었습니다. 두 재판관은 “ 오전 9시에 집무실로 정상 근무를 하였다면, 청와대 주요직위자에게 전파된 내용을 당연히 보고 받았을 것이므로, 9시 24분쯤에는 발생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습니다.

두 재판관은 오전 9시 24분 이외에도 박 전 대통령이 비정상적 근무로 세월호 참사의 심각성을 인지할 기회를 여러 번 더 놓쳤다고 판단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9시 40분, 해양수산부는 위기경보 ‘심각’단계를 발령했습니다. ‘심각’ 단계는 해양수산부가 대통령실(위기관리센터)와 사전 협의를 하여 발령하도록 되어있는데, 이 말은 청와대는 위기경보가 발령된 오전 9시 40분 이전에 이미 상황을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전 10시, 국가안보실은 ‘현재까지 56명 구조’라는 서면보고를 했습니다. 사건 발생 1시간 이상이 지났는데도 56명만 구조되었고, 400명 이상은 구조되지 않은 상황, 누가 봐도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국가안보실에 전화해 상황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두 재판관은 “ 10:00경 보고로 사태를 파악한 즉시 응당 국가안보실장에게 세월호 상태를 확인하였어야 하고, 그랬다면 세월호의 당시 기울기가 60도 정도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이다”고 결정문에 적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 측이 제시한 ‘서면보고’는 보고서를 관저로 보냈다는 것을 의미할 뿐, 박 전 대통령이 읽어 봤는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암시한 것이기도 합니다.

본관에 정상적으로 출근하지 않아 지나간 안타까운 시간들. 김이수, 이진성 두 재판관은 관저에서 ‘보고서를 검토했다’는 박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을 대놓고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측이 세월호 참사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오후 3시 이전까지 수많은 보고서들이 올라갔는데, “ 보고 내용이 거짓으로 작성되지 않았다면” 오전 11시 이전 전복된 세월호의 상황을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박 전 대통령이 보고서를 제대로 보지 않아 상황의 제대로 파악하지 못 했다는 것입니다. 두 재판관은 “ 실제로 보고서들을 모두 검토하였다면 상황의 심각성을 15:00 경에야 깨달았을 리가 없다”고 결정문에 적시했습니다.
청와대
● '세월호 7시간 의혹' 규명, 관건은 청와대 압수수색

‘보고서 검토도 하지 않았고, 전화 보고도 없었고, 전화 지시도 없었다’ 김이수 재판관과 이진성 재판관의 세월호 7시간에 대한 보충의견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박 전 대통령 측의 주장과 두 재판관의 판단 중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이 사실에 부합한다고 생각되십니까. 물론, 두 재판관의 판단은 재판관 전원의 의견이 아닌 ‘보충의견’이라는 형식의 소수의견이고, 두 재판관 역시 이를 입증할 확실한 증거나 증언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시된 증거나 증언, 정황에 기반한 합리적 추정일 따름입니다. 다만, 역시 고용복지수석과의 통화를 제외하고는 통화와 관련한 아무런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아귀가 안 맞는 박 전 대통령 측의 주장보다는 훨씬 설득력이 있습니다.

대통령 파면으로 이제 세월호 7시간의 행적에 대해 추론을 넘어 확인할 수 있는 분위기는 조성됐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내세워 검찰 조사와 특검 조사를 거부해 온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강제 조사 할 수 있게 됐고, ‘현직’ 대통령의 힘을 의식해 조사에 비협조적이었던 ‘박근혜 사람들’이 입을 열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증언으로는 부족합니다.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안 했는지를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위해선 물증이 필요합니다. 그 물증을 찾기 위해선 청와대 압수수색이 필수적이죠. 그런데 대통령은 사라졌지만,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비서실장’,‘경호실장’,‘안보실장’ 등은 여전히 ‘현직’입니다. 법률을 엄격히 적용하면 이들의 승인 없이는 청와대 압수수색은 여전히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검찰은 이런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까요?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이란 불행한 일이 벌어졌지만, 이 불행한 일이 평생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는 부모님들의 응어리를 다소나마 풀어주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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