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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문재인과 안희정, 1분 차로 만남 '불발'

[취재파일] 문재인과 안희정, 1분 차로 만남 '불발'
● 토요일 오후, 김해에 가다

금요일 밤 10시 40분, 불길한 전화가 한통 걸려왔습니다. (국회 담당)반장의 전화. 이 시간에?

반장: "내가 이시간에 전화하니 불안하지?"

나:  "네, 그냥 빨리 말씀해주세요"

반장: "내일 김해를 좀 가야겠네. 권양숙 여사 모친상에 야권 주자들이 다 가는데 촛불집회에 갔다 가서 다들 좀 늦나봐. 밤 11시 도착한단 얘기도 있고"

나: "아, 토요일 밤에... (저의 딱한 사정 얘기......하지만 결국 대답은...)....네."

그렇게 저는 토요일 낮 비행기를 타고 택시를 타고 오후 4시, 상가에 도착했습니다. 오후 4시 반,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았습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지금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는게 맞다고 본다, 정치인들은 제도권 안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며 야권의 다른 주자들과 달리 촛불집회에 참석하지 않고 있습니다.

안철수 전 대표가 떠난 뒤 그 사이 상가가 조금 익숙해진 저는 거기서 밥도 먹고, 오고 가는 의원들이며 관계자들과 얘기도 나누면서 3명의 주자들이 몇시에 오는지 계속 체크를 했습니다. 뭐, 일종의 '뻗치기'(기다린다는 뜻)를 한 거죠.

● 문재인-안희정? 안희정-이재명? 만나는 거 아냐?

문재인 전 대표는 김포에서 밤 8시 반 비행기를 탈 예정이라고 하고, 안희정 지사는 전주에서 차로 오고 있다고 하고, 이재명 시장은 밤 9시쯤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어? 이거 잘하면 만나겠는데?' 셋이 다같이 만날 가능성은 적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저렇게 잘 하면 셋 중 두 사람은 만날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교집합은 안희정 지사. 8시 반쯤 도착할 거 같다던 안 지사가 계속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안 지사와 이 시장, 더 늦어지면 안 지사와 문 전 대표가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나면 좋나? 안 만나는게 낫나? 복잡한 마음이 잠시 들었지만 제가 1%의 영향도 미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일단 마음을 비우고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 안희정-이재명 만남은 불발... 그렇다면...

이재명 시장이 도착 예정 시간에 딱 맞춰 9시쯤 빈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25분이 지나 떠났습니다. 일단 이재명-안희정의 만남은 불발.

이어 안희정 지사가 9시 35분쯤 왔습니다. 창원까지 다 와서 차가 막혔답니다. 어? 문재인 전 대표가 9시 반쯤 공항에 내려서 오면 이거 만나겠는데? 반장에게 문자로 보고를 했습니다. "문재인이랑 안희정이랑 만날 것 같은데요" 반장에게 바로 답이 왔습니다. "얘기 되네. 기왕 뻗치는거 얘기되는게 낫지" 그래, 진짜 기왕 뻗치는거! 어디 두 사람 어떻게 만나고 어떤 말 주고 받는지 똑똑히 봐야겠단 의욕도 생겼습니다.
차에 올라타는 안희정 (사진=연합뉴스)
● 기자 "문재인 오는데요..." 안희정 "나 홍성 가"

그런데 10시 35분쯤 안희정 지사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어? 문 전 대표 아직 안왔는데... 입구에서 안 지사에게 권 여사와 나눈 말씀 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 그리고 안 지사의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혹시 이 사이에 문재인 전 대표가 오지 않을까, 그 짧은 시간에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 끝에 제가 물었습니다.

"지사님, 근데 문재인 전 대표 조금 있으면 오는데, 기왕이면..." 안 지사는 "아, 그런데 제가 빨리 홍성을 가야 해서..." 어차피 늦은 거 5분 더 늦는게 무슨 대세에 영향을 주는 걸까. 만날 마음이 없단 느낌이 들었습니다.

● 엇갈린 두 사람의 차량…고작 '1분 차이'

2층 빈소를 나온 안 지사는 1층으로 내려와 배웅 나온 사람들과 악수를 한 뒤 차를 탔습니다. 그때 시간이 정확히 10시 37분. 안 지사의 차가 떠나고, 2층으로 지금 올라갈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다른 차 한대가 도착했습니다. "문재인 차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진짜?" 다시 시계를 봤습니다. 10시38분. 정말 일부러 만나지 않기 위해 문 전 대표의 차가 근처에 있다가 안 지사가 갔단 말 듣고 온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 "일부러 안 만나신 거 아녜요?"

문 전 대표가 빈소를 나올 때 마찬가지로 안에서 어떤 말씀을 나눴는지 기자들의 비슷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어 제가 물었습니다. "안 지사가 대표 오기 1분 전에 갔는데..." 그러자 문 전 대표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래서 빨리 오느라고 오는데 못 만났어요, 늦어서...". 다시 누군가 물었습니다.

"오늘 만날 생각 하고 오셨어요?" 문 전 대표의 답변, "자연스럽게 여기서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어떤 답변을 기대하고 물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끝에 한번 물어나봤습니다. "일부러 안 만나신 거 아녜요?" 아니, 그건 정말 너무 궁금했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간발의 차로 엇갈리다니요. 역시나 문 전 대표의 답변, "하하, 뭐 예 오늘 뭐, 예..." 그렇게 문 전 대표는 빈소를 떠났습니다.

● 만남 불발,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리고 저는 지금 창원 버스터미널에서 서울로 가는 심야우등고속버스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엇갈린 만남, 그것도 운명이었을까요. 아니 뭐, 일부러 두 사람이 엇갈렸다 한들, 그랬다 한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지요. 두 사람이 만나기로 약속했다가 안 만난 것도 아니고요.

또 굳이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건 다른 사람을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안 지사가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식구들' 끼리 모인 자리에서 경쟁자의 위치에 서게 된 두 사람의 만남 자체가 다른 '식구들' 에겐 그리 편안하진 않을 수 테니까요. 일종의 배려심, 그 마음도 백번 이해합니다.

● 文이여? 安이여?

오늘 상가집의 한 테이블에서 했던 대화가 떠오릅니다. 누군가 테이블에 오자 먼저 앉아있던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A : "문이여?" B: "안이여(아니여)" "A:안이라고?(아니라고?)" B: "안이라고(아니라고)" 그러면서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끼리 한참을 웃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탄생을 함께 했던 사람들끼리 서로 너는 지금 누굴 돕냐는 걸 물어본 거였죠. 그 자리에는 문재인을 돕는 사람도, 안희정을 돕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B입장에선 누굴 돕겠다, 지지하겠다, 명확하게 말을 할 수가 없는거죠. 그걸 또 서로가 다 아는 상황이기 때문에 저런 '언어유희'가 나올 수 있었던 겁니다. 문재인을 지지하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안희정 지사가 다음 번에 나오면 되는데, 그럼 이럴 일이 없는데,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안희정을 지지하는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할 겁니다. 오죽했음 안 지사가 나왔겠나, 문재인이 안된다고 생각하니까 나온 거지. 문재인과 안희정, 같은 뿌리를 두 사람이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목표를 가지고 경쟁하는 건 이런거구나, 짧지만 강한 느낌을 받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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