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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홍상수 영화에 대해 외국 기자들이 궁금해한 것들

[취재파일] 홍상수 영화에 대해 외국 기자들이 궁금해한 것들
지난 주말 폐막한 베를린 영화제에서 김민희 씨가 여우주연상에 해당하는 은곰상을 수상했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여주인공 역이었습니다. 이렇게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한국 배우가 여우주연상은 탄 건 2007년 전도연 씨 이후 10년 만 인지라 큰 화제가 됐습니다.

특히나 이 영화가 유부남 영화감독과 사랑에 빠진 여배우가 삶과 사랑에 대해 번민하는 내용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인터넷은 종일 뜨거웠습니다.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 씨의 사생활 논란 때문입니다.

대중의 관심을 반영하듯 베를린 영화제 기자간담회장에서도 이번 작품이 자전적인 영화인지를 묻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물론 한국 기자의 질문이었습니다. 홍 감독은 자신의 삶의 경험을 어느 정도 반영하기는 했지만 자전적인 영화를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작품 자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이 질문과 답변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이 작품에 대한 극찬이 쏟아졌는데, 그들이 이 영화에서 발견한 새로움과 매력은 무엇인지 더 알고 싶은 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베를린 영화제 현지 기자간담회장에서 오간 외국 기자들의 질문과 홍 감독의 답변을 좀 더 모아봤습니다. 어떤 질문은 한국 관객들에겐 조금은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외국의 기자들이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흥미롭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베를린 영화제 기자간담회 중 홍상수 감독
당신 영화의 인물들은 항상 ‘나이’에 대해 질문합니다. “몇 살이에요?”를 묻습니다. “내가 매력이 있느냐?” 묻기도 합니다. 이런 질문들은 당신 영화의 핵심적인 이슈인가요? 또 외적인 면이나 나이에만 관심을 갖는 태도가 타인과의 교감을 가로막는다는,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긴 건가요?

"
실제로 사람들은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사람들은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그 내면에 도달하고자 하지만, 그게 늘 쉬운 일은 아니죠. 우리는 외적인 모습에 끌리고 그래서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게 인간입니다. 겉모습은 중요하죠. 또한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그 내면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모습에 끌리는 걸 우리는 피할 수 없습니다."

당신 영화의 인물들은 새로운 세대입니다. 전쟁 세대가 아니라 서울의 정치·사회적 위기를 경험한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때로 길을 잃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두 여성 간의 키스 같은 행위를 통해 벗어나려고 했다고도 생각되는데, 당신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두 여성의 키스를 너무나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시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세요.

"내가 영화에서 하는 것들은 미리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장소에 가서 배우들을 만나고 촬영 날을 기다립니다. 최대한 마음을 열면 뭔가 떠오르고, 전 특정한 순서에 따라 그것들을 배열합니다. 그것이 제가 일하는 방식입니다.

내 영화에서 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특정한 목적이나 효과를 위한 것들이 아닙니다. 때문에 당신이 말한 여성 간 키스 장면에 대해 제가 설명을 할 수는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 그건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 장면은 저절로 나온 겁니다. 그녀는 아마도 한국 남자들에 진절머리가 나서 그랬다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동아시아 국가 사람들이 언제나 미소를 띠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며 체면을 중시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 여주인공은 매우 무례하게 행동합니다. 그런 행동의 충격과 당혹감이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인가요? 서양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에 비해 훨씬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나요?

"그런 고정관념은 아마도 대부분 일본 문화에서 온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훨씬 터프합니다. 여주인공 같은 성격의 인물을 만나더라도 그렇게 놀라지 않습니다."

당신의 영화를 일종의 ‘antistory’(전통적 구성 수법이나 스토리 전개를 무시하는 작품)라고 불러도 될까요?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논리적인 방식으로 구성하지 않는 건가요? 때로 이야기를 감정의 조각으로 나누고 시간도 뒤섞는 것 같습니다.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영화의 구성 방식을 따르지 않는 건 의도적인 건가요?

"예를 들어 특정한 영화적 요소(장소, 날씨, 배우 등)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 경우, 한국 문화에서 자라고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아온 사람으로서 저 또한 거의 자동적으로 틀에 박힌 어떤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삶은 여기 있는데, 우리는 별개의 다른 많은 종류의 꾸며낸 이야기들을 갖게 되는 거죠. 우리는 특정한 서사의 틀로 삶을 바라보도록 훈련되어 있고 저 또한 그렇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이야기들을 절로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익숙한 줄거리를 벗어나는 것에서만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 때 줄거리를 만들어내며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욕망을 버려야 합니다. 과거에는 어려웠지만 이제는 괜찮아졌죠. 세부적인 내용이나 부분들을 배열할 때 전 상상하지 않습니다. 그저 부분들 간의 균형을 확인할 뿐입니다. 각각의 부분들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고, 저는 그것들이 서로 일치하고 균형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 생각합니다. 때로는 균형을, 때로는 불균형을 만들어내면서 원인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때로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건 두 개의 부분을 이런 식으로 배열할 때 다른 사람이 그걸 보고 어떻게 느낄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다른 사람들이 느낄 그 감정과는 거리를 두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식으로 저는 부분들을 배열하고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효과들을 만들어냅니다. 이 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어떤 관객들에게는 특정한 그리고 새로운 감정들을 이끌어내게 되는 겁니다."

영화 속 남자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 수준의 자기비판(self-criticism)이 반영된 건가요?

"아주 많이요. 자신을 비판하는 건 때로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영화의 요소들을 정직한 시각으로 관찰하고 표현하려 노력하는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해서도 정직해져야 합니다. 영화를 만들 때 다른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요소들과 나 자신에게서 비롯된 요소들을 함께 반영하는데, 그 균형을 통해 영화적 요소들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홍 감독의 독특한 영화 제작 방식은 언제나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왔습니다. 외국 기자들은 이 밖에도 왜 홍 감독의 영화에 바닷가가 자주 배경으로 등장하는지, 술자리는 그토록 많은지, 또 수많은 도시 가운데 함부르크를 촬영 장소로 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궁금해 했습니다. 영화 속 특정 장면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연출 동기 등을 묻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그 자체로 즐기고 흥미로워하는 외국 기자들에 비해, 여전히 많은 한국 관객들은 홍 감독의 작품을 순수하게 즐기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더욱이 논란의 당사자들이 논란이 된 소재를 직접 영화화했다고 하니, 대중이 느끼는 거부감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다음 달 영화가 극장에 걸리면 아마도 다양한 동기를 가진 관객들이 영화를 보러 갈 겁니다. 영화 자체가 보고 싶어 가는 이들도 있을 거고, 영화에서 감독과 배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호기심에 가보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한국 관객들은 이 영화에 보고 난 뒤 어떤 평을 내놓을까요? 그리고 무엇을 더 궁금해할까요?     

(사진 출처=베를린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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