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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발해, 백두산 화산폭발로 멸망했다?

[취재파일] 발해, 백두산 화산폭발로 멸망했다?
발해는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 뒤인 서기 698년 대조영이 고구려를 계승해 세운 나라다. 영토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서 연해주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지역을 차지했다. 해동성국이라고 불릴 만큼 융성했던 발해는 그러나 건국한 지 228년 만인 서기 926년에 갑자기 멸망했다.(자료:한민족문화대백과).

가장 널리 알려진 발해 멸망의 원인은 거란의 침략이다. 거란의 침략으로 단 3일 만에 나라가 망했다는 것이다. 싸우지 않고 이겼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내분이 심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그토록 융성했던 나라가 갑자기 멸망한 것에는 여러 가지 의문이 남는다. 이 시기에 대한 기록이 부족해 의문을 더욱 키우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백두산 화산폭발 설이다. 발해의 중심에 백두산이 위치해 있는데 백두산에서 거대한 화산이 폭발해 주변이 용암과 화산재로 뒤덮이면서 짧은 시간에 나라가 멸망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백두산 폭발은 최근 천 년 동안에는 가장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과 영국, 미국 공동 연구팀이 백두산 근처에서 화산활동으로 생긴 암석에 남은 기체 성분을 분석한 결과 백두산 화산폭발로 배출된 ‘황’의 양이 1815년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탐보라 화산폭발 규모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Iacovino et al., 2016). 말 그대로 '세기의 폭발(Millennium Eruption)' 이다.

탐보라 화산 폭발은 인명피해만 수만 명이 발생하고 화산재가 인도네시아 전역을 덮을 정도로 거대한 폭발로 역사상 가장 큰 분화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백두산이 탐보라 화산보다도 더 크게 폭발해 주변을 폐허로 만들었다면 백두산의 분화가 나라의 운명에 큰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크다. 특히 백두산의 분화가 발해 멸망의 해인 926년에 발생했다면 백두산 폭발이 발해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중요한 것은 백두산의 분화가 실제로 발해가 멸망한 926년에 일어났느냐 하는 것이다.

백두산 화산폭발은 937~938년에 일어났다는 주장부터 929년에 발생했다는 주장, 그리고 946년에 일어났다는 주장 등 920년대에서 950년대까지 다양하다. 이렇게 여러 주장이 나오는 것은 우선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아주 특이하게도 지구 기온변화 기록에도 백두산 화산폭발 흔적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사 이래 가장 강력한 화산폭발이 일어났다면 방출된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일정 기간 지구 대기를 덮어 햇빛을 차단하고 그렇게 되면 지구 기온이 떨어지고 그 영향으로 나무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만큼 나이테에 그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는데 당시 살았던 나무의 나이테에는 백두산 화산폭발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영국과 스위스, 중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미국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이 최근 백두산 화산폭발 시기를 정확하게 측정해 발표했다(Oppenheimer et al., 2017). 연구팀은 백두산 화산폭발 당시 뜨거운 용암에 뒤덮여 죽은 낙엽송의 화석을 이용해 백두산 화산폭발 시기를 산출했다. 백두산 천지에서 북서쪽으로 24km 떨어진 중국지역에서 발견된 이 나무의 화석은 화산폭발 당시 수령이 264년 된 나무였다. 나무 화석에 남아 있는 나이테와 방사선 탄소동위원소법을 동원해 분석한 결과다. 특히 백두산 화산폭발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이 나무 화석에서 발견됐다.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이 나무 화석의 나이테에 남아 있는 서기 775년에 발생한 우주의 방사선 대폭발 기록이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서기 775년 지구는 우주에서 발생한 어마어마한 양의 감마선 피폭을 당했다. 방사선 대폭발의 영향으로 당시 지구 상에 있던 나무의 나이테에는 방사선 탄소(C-14)와 베릴륨-10 농도가 특이하게 높아졌는데 낙엽송 화석의 특정 나이테에서 이 방사선 대폭발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그 나이테가 만들어진 시기가 바로 775년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낙엽송 화석에서 775년에 만들어진 나이테를 찾아낸 연구팀은 그 나이테를 기준으로 이 나무에 몇 개의 나이테가 추가로 더 만들어졌는지를 산출했다. 결과적으로 775년부터 백두산 화산폭발로 쇄설물에 덮여 죽게 될 때까지 몇 년을 더 살았는지를 산출한 것이다. 산출결과 이 낙엽송은 946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죽은 것으로 확인됐다. 946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백두산 화산폭발이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946년 10월에서 12월 사이에 백두산 화산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결론지었다. 화산폭발 시기를 이번처럼 오차 범위 3개월 이내로 정확하게 추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실제로 백두산 화산폭발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그린란드의 빙하코어(ice core)에서 화산 분출물인 황이 유난히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당시 강력한 백두산 화산폭발로 방출된 황이 전 세계로 퍼졌다는 증거를 발견한 것이다. 지구 기온 변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던 백두산 대 폭발의 흔적을 빙하에서 찾은 것이다.

연구팀은 또 우리 역사서인 고려사에서 946년 바로 그해에 개성 하늘에서 커다란 천둥소리[천고명(天鼓鳴)]가 들렸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연구팀은 이것이 백두산 화산 폭발로 인한 것으로 추정했다. 개성과 백두산은 약 470km 떨어져 있지만 탐보라 화산폭발 당시 이 거리보다 더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도 화산 구름으로 뒤덮였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백두산 화산폭발이 충분히 개성까지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연구팀은 일본 나라 지역의 사찰인 고후쿠지(興福寺)의 기록에서도 증거를 찾아냈다. 고후쿠지의 기록에는 946년 11월 3일 ‘하얀 재가 눈처럼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이 바로 백두산의 분화로 화산재가 떨어진 것을 기록한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연구팀이 백두산 화산폭발을 946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로 추정한 것이 기존의 역사 기록과도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결과가 틀림없다면 앞으로 발해가 백두산 화산폭발로 멸망했다는 주장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잃게 된다. 백두산 화산폭발은 발해가 멸망하고 20년 뒤에나 일어났기 때문이다. 다만 발해 영토의 중심에 있었던 백두산에서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면서 주변지역이 초토화되었을 경우 멸망 뒤 점점 폐허가 되어가는 유적지와 점점 흩어지는 발해 유민들로 하여금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백두산 폭발 이후 다시 1천 년, 최근 들어 백두산 주변에서 미소(微小) 지진이 잦아지고 지하에는 서울시 면적 2배에 달하는 마그마가 존재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백두산은 과연 다시 폭발할 것인가?

<참고문헌>

* Kayla Iacovino, Kim Ju-Song, Thomas Sisson, Jacob Lowenstern, Ri Kuk-Hun, Jang Jong-Nam, Song Kun-Ho, Ham Song-Hwan, Clive Oppenheimer, James O. S. Hammond, Amy Donovan, Kosima W. Liu and Ryu Kum-Ran, 2016 : Quantifying gas emissions from the “Millennium Eruption” of Paektu volcano,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China, Sciences Advances,
http://dx.doi.org/10.1126/sciadv.1600913

* Clive Oppenheimer, Lukas Wacker, Jiandong Xu, Juan Diego Galván, Markus Stoffel, Sébastien Guillet, Christophe Corona, Michael Sigl, Nicola Di Cosmo, Irka Hajdas, Bo Pan, Remco Breuker, Lea Schneider, Jan Esper, Jie Fei, James O.S. Hammond, Ulf Büntgen. 2017: Multi-proxy dating the 'Millennium Eruption'of Changbaishan to late 946 CE. Quaternary Science Reviews, 158: 164 DOI:10.1016/j.quascirev.2016.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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