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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쓰고 남은 세금만 8조 원…어떻게 쓰일까?

[취재파일] 쓰고 남은 세금만 8조 원…어떻게 쓰일까?
"정말 월급 빼고 다 올랐어요",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어요.", "취업하기 너무 힘들어요." 물가와 고용 관련 취재를 하는 제가 요즘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과 달리 호황을 누리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나라 곳간입니다.
 
지난해 정부가 거둬들인 세금은 242조 6천 억 원입니다. 2015년보다 24조 7천 억 원이나 증가했는데, 전년 대비 증가 규모로는 역대 최대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추경을 편성하면서 올해 세수를 다시 예측했는데, 그 규모가 232조 7천 억 원에 달할 것으로 봤고 그에 맞춰 예산을 짰습니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나 뚜껑을 열어보니 그 예상보다 9조 8천 억 원을 더 많이 걷은 것입니다.
 
● 불경기에 더 걷은 10조 원
 
경제가 잘 돌아가야 내는 세금이 많아지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부 자료를 보면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소득세 등 3대 세금이 모두 늘었습니다. 전년보다 각각 7조 원 정도씩 늘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부가세와 법인세 증가에 대해 “소비 증가와 수출·설비 투자 부진에 따른 부가세 환급 감소, 법인 실적 개선 및 대기업 비과세·감면 정비 등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소득세에 대해서는 “근로자 임금과 개인 사업자 소득이 늘고, 부동산 시장 호조로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 양도소득세가 골고루 더 걷혔다”고 말했습니다.
 
부가세는 수출기업에 대해 환급해 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부가세의 상당부분(68%)은 수입하는 물품에서 나옵니다. 예를 들어 전자업체가 스마트폰 부품을 해외에서 수입할 때 물품 가격의 10%를 부가세로 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스마트폰 제품을 조립해 수출하면 수입 때 낸 부가세를 되돌려 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수출이 전년보다 5.9% 줄어들었으니 그만큼 부가세 환급도 줄어든 것입니다. 또한 사업 설비를 신설하거나 확장하는 경우도 부가세를 환급해 주는데 이 역시 경기 침체로 설비투자가 축소되니 환급이 감소하고 정부 주머니에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지난해 거둬들인 법인세는 2015년도 기업들이 번 돈에 대한 세금입니다. 2015년에도 기업 매출은 좋지 않았지만 투자와 고용을 줄이면서 상장사들의 영업이익은 2014년 91조 원 대에서 2015년 102조 원 대로 오히려 증가한 것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 세수증대로 이어진 거죠. 또 연구·개발(R&D) 세액공제 등 대기업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한 것도 세수를 늘렸습니다.
 
● 껑충 뛴 근로소득세…역시 ‘유리지갑’?
 
소득세는 부동산 호황에 따른 양도소득세가 1.8조 원 전년보다 더 걷혔고, 개입사업자들이 내는 종합소득세가 1.6조 원 더 들어왔습니다. 근로소득세는 무려 3.9조 원이나 늘었는데, 총액으로는 31조 원에 달했습니다. 늘어난 근로소득세는 근로자들의 명목 임금이 늘어나고 취업자 수 증가에 따른 것이라고 정부는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경기를 생각하면 근로소득세 증가 이유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증가율로 보면 근로소득세는 2015년과 비교해 14.6%가 급증했습니다. 하지만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이 4% 오른 데 그쳤습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과표 구간이 조정되고,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뀐 것이 영향이 있었고, 또 2015년도 임금협상이 지연되다 보니 지난해 초에 2015년도 임금 상승분이 지급된 것도 세수증대로 이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 쓰고 남은 세금 8조 원은 어디로?
 
이처럼 세수가 늘면서 정부가 한 해 동안 거둔 세금으로 편성한 예산에서 쓰고 남은 '세계(歲計)잉여금'은 8조318억 원에 달했습니다. 아직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올해로 넘어온 ‘이월’ 금액은 4조 7천 억 원입니다.
 
세계잉여금은 법으로 용도가 정해져 있습니다. 국가재정법 90조를 보면요, 세계잉여금은 ①지방교부세 정산 ②공적자금 출연(①을 제외한 금액의 30% 이상) ③채무상환(①,②를 제외한 금액의 30% 이상) ④추경편성 또는 세입이입 등에 순서대로 쓰이게 됩니다.
 
풀어 얘기하면 우선 세수가 증가된 비율에 맞춰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운영 재원을 지원하고, 이후 공적자금 상환기금에 일정 부분 들어갑니다. 그리고 정부가 발행한 국고채 원금을 갚는데 사용되고 나머지는 추경편성 등에 활용하는 겁니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방교부세와 공적자금, 채무상환 등에 용도에 6~7조원이 들어가고, 나머지는 추경편성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4월에 정해질 예정입니다.
 
● 제대로 세수를 예측했더라면…
 
그런데 세계 잉여금이 법에 의해 올해 쓰인다고 하지만 과연 세수가 넘치는 게 좋은 걸까요? 국가 재정의 적자나 흑자가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은 둘 다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세수가 많이 모자라면 국고채를 발행해야 하는 등 재정건전성이 나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지난해처럼 세수가 예상보다 크게 넘치면 경기부양에 쓸 수 있는 돈을 미처 쓰지 못해 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또 과도한 세금 징수는 시중에 돌아다닐 돈을 빨아들여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습니다. 애초 정부가 올해 세수를 실제와 가까운 수준으로 전망했더라면 추가경정예산 규모를 10조 원보다 더 늘려 민생대책 재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추경 편성 때보다 9조 8천 억 원이 더 걷힌 것에 대해 “세수 전망이 원래 쉽지 않다. 하지만 지난해는 더욱 그랬다. 상반기 4월까지 세수가 많이 걷혔다. 하지만 6월 쯤에는 세수 증가세가 멈췄다. 그리고 기업 구조조정, 미국 대선 등으로 하반기 전망 또한 밝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추경 때 조금 보수적으로 해서 10조 원 늘리는 것으로 잡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하반기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 등이 예상과 달리 나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서 예측하지 못한 세수 증가 요인을 설명했습니다.
 
정부의 세수 예측이 부정확했던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지난 2012년부터 3년 간은 정부 예측보다 세금이 덜 걷히는 ‘세수펑크’가 있었습니다. 당시 경제성장률을 너무 낙관적으로 봤기 때문이었는데요, 2014년에는 세수 결손액이 10조 9천 억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세수 증가 효과를 너무 보수적으로, 낮게 측정하면서 10조 원 가까이 더 걷은 것이죠.
 
경기가 어려울수록 정부가 재정을 풀어 경기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수 전망을 제대로 못한다면 재정 지출의 효과는 떨어질 수 밖에 없고 또 누더기 가계부처럼 그때그때 추경을 해야 하는 일이 반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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