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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폭력 피해자가 불안해해야 하는 '작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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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음에도 교육청 재심에서 진술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고교 2학년생 사건 보도가 나간 뒤 수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저 또한 수십 통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피해 학생의 억울한 사연에 공감하는 댓글과 이메일이 다수였습니다만, 일부에서는 기사 내용이 허위라는 주장이 SNS 등을 통해 계속 유포되고 있습니다. 서울시 교육청이 재심에서 ‘쌍방 폭행으로 볼 수도 있다’는 가해자 측 의견을 일부 참작했다는 것이 이 주장의 주된 근거입니다. 여기에 확인되지 않은 폭력사태 이전 상황이 곁들여지면서 ‘학교 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된 글들이 SNS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짜인지 묻는 댓글과 이메일도 쏟아졌습니다.
고등학생 폭행
그러면서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은 피해 학생이 도리어 “학교만 제대로 다니고 싶다”고 말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의 친구들로부터 ‘어느 병원에 누워있느냐’는 조롱과 협박 섞인 문자 메시지를 받는가 하면, SNS에서 친구를 두둔했다는 이유로 피해 학생의 친구가 위협을 받아 학부모가 하교길에 동행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해당 학교에 재학 중인 일부 학생들은 '피해자 부모가 검사라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피해자 부모가 학폭위에 영향력을 행사 했다'는 등의 허위 사실을 퍼트리며 온라인 여론전도 펼치고 있습니다.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을 찾아가 무릎 꿇고 사죄하는 등 반성하는 점’을 근거로 서울시 교육청으로부터 징계를 감경 받았습니다. 하지만 징계 이후 상황은 '교육적 배려'를 했다는 시 교육청의 생각과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교육 당국의 조치는 피상적이고,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 조치는 부족하기만 합니다.
고등학생 폭행
● 이번 폭력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현재 최초 조사를 한 학교와 징계 경감 조치를 내린 서울시교육청, 그리고 사건 조사를 마친 관할 경찰서 모두 하급생 4명을 학교폭력 ‘가해자’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CCTV 전체 영상을 분석하고 관련자 조사를 마친 서울 노원경찰서는 폭행한 학생 1명과 가담 학생 3명 모두에게 특수 상해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이 CCTV 화면의 부분을 캡쳐한 뒤 유포해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은 학생이 가해자인 것처럼 둔갑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수사기관의 수사 진행 상황은 해당 학생이 미성년자임을 고려해 방송 기사에서는 밝히지 않았습니다만, 온라인 상의 2차 피해가 심각하다는 점과 서울시 교육청이 공개 입장문을 통해 가해 학생들의 검찰 송치 사실을 밝혔다는 것을 고려해 상세한 사정을 전해드립니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 또한 재심에서 퇴학 등의 징계를 ‘감경’한 것이지, ‘학교 폭력 가해자’가 하급생 4명이라는 판단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쌍방폭행’ 논란과 관련해서는 싸움 과정에서 상호간 물리적 접촉이 있어 일부 징계조정위원들이 ‘쌍방 폭행으로 볼 수도 있다’는 의견을 개진해 이를 참작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즉, 징계조정위원회는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퇴학이라는 징계를 ‘감경’한 것이지, 재심 과정에서 ‘상급생과 하급생이 똑같이 잘못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물리적 폭력에 이르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주된 폭력을 저지른 A군 측은 상급생인 피해 학생이 먼저 시비를 걸었고, 부모 욕을 했으며, 피해 학생이 사건이 일어난 공터로 자신들을 데려갔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피해 학생은 가해자 측의 주장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입니다. 또, 폭력 사태가 일어나기 전 가해 학생이 SNS에 올린 ‘2학년 빠박이 담공(담배공원)으로 ㄱㄱ’라는 글을 증거로 제시하며 반박하는 상황입니다. 한편, 경찰로부터 A군과 공모했다는 판단을 받아 특수 상해 혐의로 기소의견 송치된 다른 하급생 3명은 ‘직접 폭력을 저지른 것이 없으며, 오히려 싸움을 말린 부분이 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이처럼 양 측의 진술이 완전히 엇갈리는 상황에서 다툼 과정 하나하나에 대해 제3자가 정확히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이 다툼의 과정에서 ‘특수 상해’에 해당할 정도의 중상해를 입은 폭력의 피해자는 상급생이라는 점입니다. 피해 정도에 엄청난 차이가 있고, 사건을 조사한 교육당국과 수사 당국의 판단이 일치하는 상황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흐리기 위해 일부 학생들이 펼치고 있는 '온라인 여론전'에 학폭 피해자의 가슴은 또 한 번 멍들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폭행
● 학폭위 서류로만 피해자 의견 반영…징계 감경 이후 상황은 ‘나몰라라’

학교 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우선 학교에서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열어 처분을 내립니다. 이 처분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가해자는 단위 교육청에, 피해자는 지방자치단체에 재심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도해드렸듯이 가해자가 교육청에 청구해 받아낸 재심 결정에 대해 피해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또 교육청 재심 과정에서 피해자 진술 청취는 의무 규정이 아니다보니, 진술 기회 한 번 없이 재심 결과를 받아 든 피해자는 억울함을 삼키거나 경찰서를 찾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 폭력 사안을 형사 절차가 아닌, 교육의 틀 안에서 해결하자는 것이 여러 단계로 이뤄진 학교 폭력 징계 절차의 도입 취지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피해자가 징계 절차의 공정성에 동의하기 어려운 구조에서 앞으로도 많은 학교 폭력 사안들은 피해자의 ‘벙어리 냉가슴’으로 끝나거나 형사 처벌 절차에 기대게 될 것입니다.

학교 폭력 가해자에게 무작정 중징계를 내려 공동체에서 퇴출시키기보다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징계조정위원회의 취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그 취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교육당국이 형식적인 징계 감경 조치만 내놓고 ‘절차상 문제없다’고 할 일이 아니라, 학교 폭력 이후 상황에 대해 적절한 후속 조치가 취해지는지 지속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또 폭력의 피해자가 징계 결정 과정에 수긍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고등학생 폭행
● 피해자가 눈치 봐야 하는 ‘작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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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선배로부터 조건만남 성매매를 강요받아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학교가 가해 선배에게 고작 출석정지 10일 처분만 내린 사건에 대해 보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사건에서도, 이번 사건에서도 교육당국은 피해자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의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습니다. 이에 가해자보다는 오히려 피해자가 불안에 떨며 학교에 다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흔히 학교를 ‘작은 사회’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그렇듯 학교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폭력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의 상황입니다. ‘작은 사회’라는 학교에서 폭력의 주된 피해자가 계속해서 불안해하는 상황을 보며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학생들이 학교 현장을 보며 '우리 사회는 법보다 주먹'이라는 왜곡된 가치관을 내면화하지 않도록 교육당국이 학폭 사안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조치를 취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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