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故 김훈 중위 사건' 19주기…엉터리 軍 조사 결과 폐기해야

[취재파일] '故 김훈 중위 사건' 19주기…엉터리 軍 조사 결과 폐기해야
지난 1998년 2월 14일 낮 12시 20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241 GP의 3번 벙커에서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은 김훈 중위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군 의문사의 상징과도 같은 사건의 시작이었습니다. 다음 주면 19주기입니다.

고 김 중위의 시신이 발견된 날부터 육군 1군단 헌병대는 미국 범죄수사대와 합동으로 1차 수사를 벌였고, 육군본부 검찰부가 그 해 6월부터 5개월 간 재수사를 진행했습니다. 이후 국방장관 지시로 설치된 특별 합동조사단이 이듬해 4월까지 4개월간 재조사를 했습니다. 결론은 하나같이 “고 김훈 중위가 스스로 권총을 머리에 쏴 목숨을 끊었다’입니다.

군의 조사 결과는 틀렸습니다. 고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고 판단할 근거가 희박합니다. 그 미약한 근거마저 군은 훼손하고 조작했습니다. 고 김 중위의 유족이나 군 인권단체의 주장이 아니라 사법부와 국민권익위원회의 판단이 그렇습니다.

법원의 판결과 권익위의 권고가 아니라 일반인의 상식 선에서 봐도 군의 사건 조사 과정과 결과는 엉터리입니다. 내년이면 고 김훈 중위가 숨진 지 20년입니다. 20주기가 되기 전에 책임자 처벌은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겠지만 잘못된 조사 결과는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 “자살인지 타살인지 판단은 인간의 능력 범위를 벗어난 듯하다”
故 김훈 중위
서울지방법원 민사 41부는 2002년 1월 고 김 중위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국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군이 고 김 중위가 자살한 것처럼 조사 결과를 조작했다는 유족의 주장을 법원이 기각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법원의 이 판결은 “고 김 중위가 자살했다”는 군의 조사 결과를 인정한 것도 아닙니다.

판결문 중 군 합조단 수사의 과실 여부를 따진 부분의 소결론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 사건에 있어서 나타난 증거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느 증거에 더 큰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타살이라고 확신하는 측과 자살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측이 나뉘어져 있다. 새로운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진실을 발견한다는 것은 이미 인간의 능력 범위를 벗어난 듯하다.

판결문은 또 고 김 중위 시신 주변에 격투와 반항 흔적이 있었다고 적시했습니다. 김 중위의 시신이 발견됐을 당시 벙커 안의 크레모어 스위치 박스와 김 중위의 손목시계 유리가 파손돼 있었는데 판결문은 “시계유리 파손은 소대장 생활과정에서 통상 발생하기 쉬운 일이 아니고 크레모아 스위치박스도 김 중위가 숨질 당시 깨어져 떨어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며 “격투나 반항을 의심할 여지가 매우 크다”고 밝혔습니다.

고 김 중위의 시신은 사건 당일 저녁 대대 의무실, 그리고 밤에는 수도통합병원으로 재빨리 옮겨졌습니다. 고 김 중위 몸에 남은 혈흔도 깨끗이 제거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 김 중위의 대대(대대장 제임스 로펜버그 소령)는 사건 당일 오후 7시쯤 병사들을 동원해 사건 현장인 벙커 내부 벽의 혈흔을 세척했습니다. 급기야 대대는 미 범죄수사대의 승인 하에 사건 다음 날 현장을 페인트로 도색했습니다.

초동수사를 담당한 군 수사관은 현장 유류품의 위치를 실측하거나 보존하지 않았고 고 김 중위의 업무수첩, 현장에 있었다는 무전기 등 중요 물증을 확보하지도 않았습니다. 군 수사관은 사건 당일 밤 11시쯤 소대원들을 모아 놓고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하면서 시간은 서로 상의해 작성하라고 독려했고, 최초 발견자 3명을 제외한 나머지 소대원들에 대한 신문은 사건 발생 한달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소대원들의 입을 빌리지 않고도 사건 당시 시간대별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일지는 폐기됐습니다.

군은 그런데도 고 김 중위가 자살했다고 결론 짓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자살을 합리화하며 결행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고 김훈 중위가 노르웨이의 숲을 읽은 것은 사실입니다. 동료들은 “인간에 대한 섬세미가 넘친다”는 평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런 증언들이 군 조사를 거치더니 “자살을 합리화한 ‘노르웨이 숲’을 읽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로 변질됐다고 판결문은 꼬집었습니다.

군은 또 고 김 중위가 사건 당일 오전 6시 10분쯤 소대장실과 식당 사이 철체 난간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것을 2~3미터 거리에서 목격했다는 병사의 진술을 자살과 연결했습니다. 하지만 사건 당일 JSA 지역 일출시간은 오전 7시 11분이고 철제 난간 부근에는 어떤 조명시설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서울지방법원 민사 41부는 “군의 초동수사가 미흡했지만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자살로 단정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으나 타살로 단정할만한 결정적인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군 수사는 미흡한 정도가 아니라 요즘 같았으면 여럿 군복 벗을 위법입니다. 자살로 단정할 수 없는데 자살로 밀어붙인 국방부의 발표는 그보다 죄가 더 큽니다.

● “타살 입증 안됐다…순직 처리하라”

대법원은 2007년 6월 “군의 초동수사는 크레모아 스위치박스와 손목시계 유리 파손의 간과, 사건현장 도색, 시신의 부적절한 보존과 감정, 증거품 미확보 등 조사활동 내지 수사의 기본원칙 조차 지키지 않은 채 행해졌고 명백한 하자가 있어 위법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초동 수사를 제대로 못해 사건의 실체는 두터운 안개에 덮였고 이로 인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도록 했다고 대법원은 판단했습니다. 대법원도 자살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재확인한 것입니다.

2012년 국민권익위는 실증적인 실험을 통해 군 조사의 허점을 짚어냈습니다. 고 김훈 중위는 오른손잡이인데도 왼쪽 손바닥에서만 화약이 검출됐습니다. 권총 방아쇠를 당겼을 오른손에서는 화약이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군은 왼손으로 권총 총열을 잡고 오른손으로 격발해서 오른손에는 화약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는데 권익위가 뒤집었습니다.

권익위는 국방부 조사본부, 국과수와 함께 왼손으로 총열을 잡고 오른손으로 격발했을 때 손에 나타나는 화약 흔적을 검출하는 실험을 특전사 사격장에서 실시했습니다. 10명이 왼손으로 총열을 잡고 오른손으로 격발했는데 10명 모두 왼쪽 손등에서 화약이 검출됐습니다. 9명은 오른쪽 손등에서도 화약이 나왔습니다. 권익위는 “김 중위는 왼쪽 손바닥에서만 화약이 나왔다”며 “이는 김 중위의 사망이 자살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타살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석했습니다.

부적절한 초동수사로 인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사망원인을 도출하기가 불가능해졌습니다. 권익위는 고 김 중위가 JSA 소대장으로 근무하며 관할 GP 벙커에서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던 중 사망했으므로 국방부에 순직 처리를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고 김 중위는 아직도 순직 처리되지 않고 있고 시신은 현충원이 아니라 벽제 1군단 헌병대 영현창고에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