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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유명(?) 위조작가 권춘식의 '미인도' ①…"미인도는 '진품'…이제 말 안 바꾼다"

[취재파일] 유명(?) 위조작가 권춘식의 '미인도' ①…"미인도는 '진품'…이제 말 안 바꾼다"
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에 대해 검찰이 '진품'이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난 25년간의 진위 논란이 마무리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유족 측과 미인도 감정에 나섰던 프랑스 감정업체가 "검찰 수사 결과는 엉터리"라며 바로 반박하고 나섰고, 결국 항고장을 접수하면서 이 논란은 당분간, 어쩌면 오랫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작품 등장 시점부터 눈을 감을 때까지 일관되게 "내 자식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미술계 인사들은 '진품'이라는 감정을 내놓으면서 의견은 첨예하게 엇갈렸다. 진짜냐 아니냐, 작품의 정체성을 더 헷갈리게 한 데에는 권춘식이란 인물이 큰 몫을 했다.
미인도
권춘식, 그는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위조 작가(?)'다. 청전 이상범, 이당 김은호의 작품은 '거의 똑같이'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일부 화랑들은 작품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일부러 그의 작품을 사다 놓고 비교를 한다고 한다. 언젠가는 미술품 경매에 한 작가의 진품과 권 씨가 그린 위품이 동시에 출품됐는데, 둘 다 '진품'으로 판정되어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는 이야기도 떠돌고 있다.

이런 권 씨는 1991년 '미인도' 사건이 처음 불거진 이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그렸다"고 나섰고, 그렇게 '미인도'는 '위작'으로 굳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그 이후 다시 '내가 그리지 않았다"고 말을 바꾼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해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그렸다, 안 그렸다" 왔다 갔다 하는 인터뷰를 해왔다. 급기야 지난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으면서도 말은 계속 바뀌었다. 3차례 조사를 받았던 권 씨는 1, 2차 조사 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린 위작"이라고 주장했지만, 3차 조사에서 "내가 그리지 않았다. 미인도는 진품이다"라는 진술을 내놓았다. 대체 왜 그는 자꾸 말을 바꾼 것일까?

권 씨는 지난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에 천경자 화백의 그림을 대여섯 점 그렸다고 한다. 대부분 화상들에게 주문을 받아 '선물용'으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선물용'으로는 예쁜 그림이 인기가 있었기에, 주로 꽃과 나비가 있는 여인 그림을 그렸다. 당시에는 작가의 작품을 수록해 놓은 도록이 없었기 때문에 천 화백의 작품 사진으로 꾸민 달력을 보고 그렸다. 원작과 똑같이 그릴 때도 있지만, 나름대로 이 그림 저 그림에서 가져온 소재들을 '짜깁기'해서 그린 적도 있다. 당시 그렸던 작품의 크기는 6~8호(가로 약 40~45cm, 세로 약 30~38cm) 정도였다. 천 화백의 그림을 그려주면, 10만 원 정도를 받았다. 당시 천 화백의 그림이 수백만 원 선이었으니, 10분의 1도 못 받은 셈이라고 한다.

권 씨가 처음 '미인도'를 본 건 국립현대미술관이 제작한 포스터를 통해서다. 실제 그림 크기보다 크게 제작된 포스터를 보고 천 화백은 '내가 그리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했고, '무슨 그림이길래 그럴까'하고 봤다가 '아, 이거 내가 그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여자와 꽃과 나비, 그동안 '모작'으로 그려온 소재가 다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그렸다고 말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천 화백이 세상을 떠난 뒤 한동안 잠잠했었던 '미인도' 진위 문제가 다시 커지기 시작했고, 작품을 소장한 국립현대미술관 측과 미술업계 인사들의 강요와 회유도 이어졌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이 그린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언론과의 인터뷰를 자청해 "천 화백이 그린 '진품'"이라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자신이 그린 게 맞는 것 같았고 또다시 인터뷰를 통해 '위작' 주장을 했다.

검찰에서는 1, 2차 조사 때까지 작품 원본을 보지 못했다. 어떤 재료로 어떻게 그렸는지에 대한 진술을 했고, DNA 검사를 위해 구강 세포를 채취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린 '위작'"이라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3차 조사 때 검찰이 처음으로 '미인도' 원본을 보여주었다. 권 씨는 그림 원본을 보자마자 "아! 이건 너무 좋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포스터 인쇄본으로 봤을 때에는 '그림이 거칠고 별로다'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원본을 보니 "아주 환상적이고 채색 자체가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고 한다. 권 씨는 "천 화백의 그림 중에서도 걸작"이라 말했다.

일단 '미인도'는 최상급 전주화선지를 썼다. 이 종이는 한 장 한 장 손으로 만들어낸 최상급 종이로, 당대 내로라하는 작가들만 쓰던 것이다. 또, 종이에 바로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 종이 아래 나무판을 대고 종이를 세 겹 덧대어 썼다. 그리고 채색은 석채를 썼다. 당시 석채는 구하기 힘든 재료였다. 그런 석채를 두껍게 덧칠을 했다고 한다. 음영 부분도 가는 세필로 써서 '디테일'이 살아있었다고 한다. 일반 화선지에, 뭉뚝한 붓으로, 구하기 쉬운 분채로, 빠른 시간 안에 그리는 자신의 '모작'과는 '달라도 너무도 다른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검찰에서는 이런 권 씨의 진술을 수사 결과 발표 보도자료에 그대로 담고 있다. 하지만, 미술계의 반응은 한 마디로 '다른 건 몰라도, 권 씨는 믿을 수 없다'. 이미 수차례 진술 번복을 거치면서 권 씨는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이후 권 씨는 줄기차게 "'미인도'는 '진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견을 보이는 인사나 언론에 대해서는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 
'미인도'를 그리고 있는 권춘식 씨
권 씨에게 '미인도' 그림을 그려봐 줄 수 있는지 부탁했다. 권 씨는 흔쾌히 그려주겠다고 한다. 미인도 크기와 최대한 유사하게 그리는 데에는 2~3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다른 그림은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지만, 천 화백의 그림은 꽤 까다로워 시간이 좀 더 걸린단다. 예전에는 석채를 구할 수 없어 분채로만 그렸지만, 지금은 석채도 어느 정도 사용하면서 그릴 수 있어 좀 더 비슷한 느낌을 낼 수도 있다고 했다. 먹지를 대고 스케치를 한 뒤, 호분과 분채, 석채를 섞어 채색하는 것까지 옆에서 지켜봤고, 그로부터 닷새쯤 뒤 그림이 완성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경자'라는 사인만 빼놓은 채 채색을 완성한 그림, 비슷은 한데 여러모로 '참 다른' 그림이었다. 권 씨는 오랜만에 그려서 '잘 못 그리겠다'고 말했다. 
'미인도' 스케치 과정
혹시 일부러 다르게 그린 건 아닌가? 권 씨는 '그건 아니다'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이제는 "말을 바꾸지 않는다"면서 모든 의심을 일축해버렸다. 지금의 '양심 고백'은 '종교적 신념'이라고 못을 박기도 했다. 
미인도 인쇄본 vs 권춘식 씨의 '미인도'
'미인도'의 위작 작가로 알려졌던 권춘식이 다시 그린 미인도... 어떠한가... 그의 '최종 진술'은 과연 진실일까, 아니면 오래된 일이라 자신도 잊고 있는 것일까. 혹은 또 다른 '최종 진술'이 또 나올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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