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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본질 벗어난 여성 비하 시비…"르누아르의 여인을 보라"

남성권력 탈피, 당당한 여성상 그려낸 르누아르

[취재파일] 본질 벗어난 여성 비하 시비…"르누아르의 여인을 보라"
▲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
 
● 본질 벗어난 여성 비하 시비로 역풍


박근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고구마 줄기 캐면 나오듯 줄줄이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를 지켜보며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온 국민들은 경악, 분노를 넘어 참담함에서 이제는 사람에 따라서는 체념 상태도 겪고 있는 듯하다.
 
진상 규명에 경쟁적으로 나선 일부 언론들은 선정적 보도를 쏟아내고 정치권도 '아니면 그만이고' 식의 의혹 제기에다 풍자전 같은 이벤트를 과하게(?) 벌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식상해 하는 것은 물론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명예와 인격을 모독하고 여성 비하를 넘어 여성성마저 짓밟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대통령이 여성이니만큼 그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콘텐츠는 표현과 언론의 자유 문제라는 본질을 벗어나 반페미니즘이나 여성 비하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관여한 대통령과 최순실 씨 풍자 그림이 거센 역풍을 맞아 표 의원이 머리 숙여 사과하고 당내 윤리위원회에 회부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  피부 시술 등으로 인한 국정 소홀은 '범죄'

박 대통령의 피부나 성형 시술을 둘러싸고 언론들이 집요하게 추적 보도하는 것을 놓고도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는 데다 피부 관리같이 그럴 수 있는 일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 이게 언론이냐, 여성 비하와 폄하가 도를 넘었다며 주객전도의 입장을 보이는 이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과유불급은 확실하다. 하지만 피부나 성형 시술은 그 과정에서의 불법도 문제지만 거기에 정신이 팔려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소홀히 한 책임이 더 큰 문제라는 점 때문에 언론들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집착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여성 대통령이니까 이 모양이지 하는 식의 본말이 전도된 보도는 분명 잘못된 것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여성이 자기 피부를 가꾸고 성형을 해서도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는 것은 본능이다. 요즘은 여성은 말할 것도 없고 남성도 피부 관리와 성형에 매달리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생긴 모습이나 아름다운 얼굴로 부와 권력이 결정되는 비주얼 자본주의가 가속화될수록 이런 추세는 심해질 것이다.

그런 점을 전제하더라도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에서 권력을 다 가진 대통령이 전문 미용과 분장사로도 품위 유지가 충분할 터인데 굳이 아프로디테까지 되려고 국정은 등한히 한 채 온갖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은 누가 봐도 코미디다. 정도껏 했더라면 누가 뭐라 그랬을까? 이런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한 것은 의혹이 사실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차라리 왕정 국가의 여왕이었다면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국민적 지탄만큼은 당연히 피할 수 없었으리다.
장미꽃을 꽂은 금발 여인
              
●  아름다운 여성 추구는 르누아르가 더하다?

19세기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는 이런 대목에서 솔직했다. 그는 “인생이란 끝없는 휴일이다”라고 외치며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하고 눈을 즐겁게 하는 그림을 지속적으로 그렸다. 사물이나 인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거나 재현하지 않고 실제보다 더 아름답고 화사하게 창조해 나갔다. 특히 그의 이런 화풍은 전체 4천여 작품 중 절반에 이르는 2천여 점의 여성 인물화에서 두드러진다. 한마디로 아름답고 화사하거나 품위 있는 여성을 쉬지 않고 그린 것이다.

이와 관련해 1878년 미술평론가 테오도르 뒤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어떤 화가가 이보다 더 매력적인 방식으로 여성을 그려 낼 수 있을까. 속도감이 느껴지는 르누아르의 가벼운 붓 터치는 인물에 우아함과 부드러움, 자연스러움을 주는 동시에 피부에는 투명함을 더하고, 두 뺨과 촉촉한 선홍색 입술에는 색을 더한다. 르누아르의 여인은 매혹적이다.”

이는 르누아르가 여성들이 아름답게 보이거나 멋지게 그려지는 것을 갈구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사람들은 추한 것이나 지저분한 실제보다 아름답고 화려한 이상을 선호하고 여기에 미학적 가치를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고집은 피곤한 삶과 인간들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 평가를 받고 있는 밀레 등 자연주의 화가나 귀스타브 쿠르베 같은 사실주의자의 자세에 반하는 배부른 태도일 수 있다.

르누아르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론가들의 지적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과 생각을 작품에 그대로 옮겨 나갔다. “그림은 영혼을 씻어주는 선물이어야 한다”는 그의 예술 철학에서 알 수 있듯이 인물들의 아름다움과 색채의 화사함으로 사람들의 대리욕망을 충족시키고 고단한 삶을 그림으로 힐링시켰던 것이었다.
편지를 들고 있는 여인

●  르누아르의 여인들은 모두 예쁘지 않다!

그러나 실제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르누아르의 여인 전’)되고 있는 르누아르의 여성 인물화 등 명작과 대표작들을 둘러보면 모든 여성이 다 예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르누아르는 전문 여성 모델을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기준으로는 아름답다거나 예쁜 것과 거리가 먼 수수한 얼굴이나 몸매는 다소 통통한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물론 당시의 아름다움은 그런 건강미에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르누아르의 부인을 비롯해 주위의 인물들을 모두 예쁘게만 그리지 않았다는 것은 나름 시사하는 대목이 있다 하겠다.

이상적으로 예쁘게만 그려낸 것이 꼭 아름다움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수수하면서도 당당하고 품위 있는 여성의 모습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을 르누아르가 가졌던 것은 아닐까? 르누아르야말로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남성 권력을 의식한 꽃같이 예쁜 여성이 아닌 건강하고 당당한 여성상을 상당수의 작품을 통해 그려낼 만큼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페미니스틱한 태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되짚어 보게 된다. 
젖먹이는 여인
 
●  잠재의식 속 야비한 여성 비하…이젠 버려야

"나는 내 인물들이 그 뒤의 풍경과 한 덩어리가 될 때까지 인물들과 부둥켜안고 몸부림친다. 나는 인물이건 나무들이건 밋밋한 것이 되지 말고 살아서 고동치기를 바란다." 르누아르의 이런 언급은 인물화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당시로서는 내세우기 힘든 남다른 인식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과 비리에 대한 풍자가 도를 넘으면서 엉뚱하게 여성 비하 시비로 불똥이 튀고 있는 전도된 현실을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면서 씻고 힐링하는 것은 어떨까? 특히 남성들이 의식하지도 못한 채 잠재의식 속에 지금까지 감추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표출시키는 남성 우월주의적이며 자가당착적인 여성 비하 심리를 르누아르의 여성들로부터 제대로 교정받아 보는 것은 어떨지 감상의 차원을 넘어 한 번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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