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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실리콘겔이 아기 입으로?'…가슴보형물 섞인 모유 최초 확인

[취재파일] '실리콘겔이 아기 입으로?'…가슴보형물 섞인 모유 최초 확인
2011년 20대 중반에 가슴 보형물 삽입 수술을 한 여성은 어느덧 5년이란 시간이 흘러 어엿한 엄마가 됐습니다. 원했던 첫 아기를 출산하고 힘들더라도 모유수유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아기에게 젖을 먹이기 시작한 지 한달 남짓 지나 모유에 이상한 물질이 섞여 나왔습니다. 맑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모유에서 발견된 겁니다. 부부는 병원을 찾았고 MRI, CT 촬영 결과 보형물이 파열돼 생긴 현상일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최초 가슴 확대 수술을 한 병원에서 제거 수술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부부는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의 한 대학병원을 찾아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혹시 끈적끈적한 액체가 파열된 보형물에서 나왔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부부는 그 모유를 한 달 넘게 먹은 갓난 아기의 건강이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병원 주치의도 실리콘겔로 추정되는 물질이 모유에 섞여 나올 것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수술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주치의는 소견서에서 좌측 가슴에서 ‘실리콘이 액체화되어 유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는 양상’이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또 양측 보형물이 모두 터져 있었으며, 실리콘이 가슴 전체에 점도 높게 붙어 있어 제거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제거 수술을 했지만 이물질을 완벽하게 다 없애지 못한 겁니다.  수술 동영상을 봐도 끈적끈적한 액체가 마치 껌처럼 가슴 속에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모유에 섞여 나온 그 끈끈한 액체가 보형물이 파열되면서 흘러나온 실리콘 성분의 액체일 가능성이 높은 겁니다.

파열된 제품은 다국적 의료기기 업체인 앨러간사의 제품이라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공식 확인했습니다. 해당 회사가 수술을 한 강남의 성형외과에 제품을 공급했고, 그 병원은 제품을 환자에게 이식한 사실이 보건당국 조사결과 확인된 겁니다. 취재진도 제품 고유 번호인 시리얼 넘버와 수술 날짜 등이 기록된 보증서를 확인했습니다. 방송이 나가자 식약처는 긴급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보형물 파열 원인을 규명하고 후속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보형물 제품에 문제가 없었는지, 수술 후 여성의 사후 관리에 문제가 없었는지 등을 의료업계 전문가들과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모유에 섞여 나온 물질이 실리콘 액체임이 거의 확실하지만, 정확한 성분 확인을 위해 분석 작업도 벌이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방송 뉴스로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학계와 의료계는 실리콘겔 보형물 수술은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모유수유에 지장이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실리콘겔 보형물이 터져 모유에 섞여 나온 사례 자체가 지금까지 보고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산모도 수술 전 “보형물이 터질 수 있다는 얘기를 의료진으로부터 들었고, 파열된 사실을 안 뒤에도 모유수유가 괜찮은지 성형외과에 문의한 결과 모유수유 해도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물질이 섞인 모유를 아기가 두 달 동안이나 먹었다는 겁니다. 부부는 이물질이 섞인 모유를 먹은 아기의 대변에 끈적끈적한 물질이 묻어나왔고 세제로도 잘 지워지지 않았다며 혹시나 아기의 장에 남아 있을까 매우 걱정했습니다. 모유를 먹은 아기의 건강이 염려돼 아기의 혈액검사 등을 했지만 다행히 큰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기에 아기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추가적인 정밀검사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첫 아기를 출산하고 기뻐한 것도 잠시, 엄마와 아빠의 마음은 고통의 나날이었습니다. 보형물이 유선 조직에 달라붙어 완전히 제거하지도 못했는데, 엄마는 여전히 자신의 건강보다 아기를 더 걱정하고 있습니다. 방송 뉴스를 보고 일부 네티즌들이 가슴 확대 수술을 한 행위를 비난하는 듯한 댓글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겁니다. 모유를 먹이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이 중요한 겁니다. 엄마와 아기는 보형물 파열의 피해자이지 가해자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보건당국, 의료계, 보형물 업체 등은 실리콘겔 보형물의 파열로 인한 부작용보다 수술의 장점 등을 더 강조해온 게 사실입니다. 강남의 한 성형외과 원장은 뉴스를 보고 취재진에게 이메일 한통을 보내왔습니다.   
 
  "취재로 인해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상황이지만.
진실 보도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저 역시 가슴성형을 하는 사람으로서 힘든 부분이 큰 보형물을 가슴처럼 보이게 하면서
각종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숙제입니다. 
 사회 전반에 시스템 적인 문제가 지금 드러나듯이
가슴 보형물에 관해서도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것의 실험 대상이 환자라는 데 있습니다.
평판(reference) 없는 보형물들이 우리나라에 난무하고 있는 거죠."

충격적인 일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부부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여성의 신체 일부를 드러내는 수술 장면을 공개하고 인터뷰에 응한 건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다행이 보형물 제거 수술을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 전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당국이 수술 과정을 자세히 분석해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남아 있는 겁니다. 수술을 집도한 교수도 극히 드문 사례이지만 파열된 보형물이 모유에 섞여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학계에 조만간 처음으로 보고해 경종울 울릴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의 성형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만큼 최고 인재들이 의료계로 몰리고, 그 가운데서도 우수한 인재들이 성형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가슴 보형물 파열 사고 그래픽
보형물 수입과 판매를 허가하는 식약처는 여성과 아기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안이 단순한 파열 부작용이 아니라는 점을 엄중히 인식해야 합니다.  보형물 파열 원인을 찾고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 전문가들과 함께 반드시 밝혀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도 나서 산모와 아기의 건강에 미칠 영향 등을 다각도로 분석해야 합니다. 실리콘겔에 포함된 미량의 중금속이 아기의 몸에 들어갔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현재의 중금속 기준은 합당한지 등도 철저히 재조사해야 합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광고하며 수술을 권유했던 성형 의료계도 여성들에게 부작용과 사후관리 방법 등을 정확히 알리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특히 모유수유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을 수술 전 분명히 고지해 여성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성형외과의사회도 이런 점에 공감하고 당국의 원인 조사를 지켜본 뒤 의료계 차원의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습니다.  취재진도 당국의 원인 규명과 사후 조치에 대한 후속 보도를 계속 해 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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