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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칼럼]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 퇴임을 앞둔 버락 오바마 대통령께

 이제 며칠 후면 8년간 머물러온 백악관을 떠나 시민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겠군요! 지난 주 당신의 고별연설을 보니 흰 머리가 한결 많아 보였습니다. 퇴임하면 당신이 밝힌 소망대로 일단 푹 자고, 느긋하게 빈둥거리는 생활을 즐기는 것도 좋겠습니다.
오바마 가족 사진
당신의 고별연설은 8년간 업적에 대한 자화자찬이 아니라 퇴임 후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염려와 국민들에 대한 당부에 초점이 있는 듯 했습니다. 노골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당신은 후임자가 걱정되는 가 봅니다. 연설회장에 모인 수많은 청중이 ‘4년 더’ 라고 외치는 걸 봤습니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했을 겁니다.

아시겠지만, 한국인들은 지금 ‘좋은 대통령’에 목마름을 느끼고 있고, 당신은 그것의 살아있는 표상이었죠.   당신이 다른 나라에서도 ‘좋은 대통령’으로 인정받는 것은 당신의 업적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당신은 미국    경제를 살리고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지만, 외교 안보 면에서는 논란도 있죠.

그런 면에서 당신의 인간적 매력이란 요소에 주목하게 됩니다. 역경을 이겨낸 인간 스토리, 현실감을 갖춘 이상주의, 지성과 유머감각, 8년간 어떤 스캔들도 용납하지 않았던 엄격한 자기 관리. 이런 비범한 인간적 매력이 미국을 넘어서는 세계적 지도자의 반열에 당신을 올려놓았습니다.

● 저서에서 발견한 인간적 매력의 뿌리

8년여 전, 당신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때가 생각납니다. 한국의 민영 방송 SBS의 국제뉴스를 담당하던 저는 그때 당신의 저서 두 권을 찾아 읽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던 당신이 뿌리를 찾아 아버지의 고향 케냐로 가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그리고 미국 정치의 여러 이슈와 개혁방안을 정리한 <담대한 희망>. 두 책을 읽고 오바마라는 인간에 대한 이미지가 제 마음 속에 뚜렷하게 형성됐습니다.

그 이미지는 8년 내내 당신의 모습과 겹쳐 보였고, 지난주 고별연설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가 당신에 대한 정보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편견의 틀로서 작용하기도 했을 겁니다. 그 점을 감안해도, 다음 세 가지 점에 대해서는 당신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인정하지 않을까 합니다.

첫째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해 온 당신의 진정성입니다. 미국사회의 ‘흙 수저’ 출신인 당신은 수많은 역경과 싸우며 성장했죠. 대학 졸업 후 시카고 빈민가에 들어가 공동체 운동을 하면서, 그리고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과 연방 상원의원을 거쳐 대통령이 되기까지, 당신은 늘 어려운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죠.

수많은 거절과 냉대를 당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낙관주의를 잃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고별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행동을 필요로 합니다. 선출직 공직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신이 직접 출마하세요.”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당신의 얘기라서 남다른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젊은 연인 버락 오바마와 미셸(사진=연합뉴스/미셸 오바마 페이스북 캡처)
두 번째는, 엄청난 사회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진솔한 감성을 잃지 않는 당신의 인간미입니다. 그것은 가족에 대한 태도에서 잘 나타나죠. 당신은 상원의원에 당선되고 나서 워싱턴으로 이주했지만 미셸과 두 딸은 몇 년간 시카고에 남았었죠? 주말에 시카고로 가서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할 때 느낀 행복을 쓴 소박한   회고담이 인상 깊었습니다. 당신이 고별연설에서 아내 미셸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것은 결코 계산된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세 번째는, 갈등이나 분쟁에 처했을 때 공통의 이익과 목적을 찾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당신의 성향 또는 능력입니다. 당신은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대해 배웠고, ‘하버드 로 리뷰’ 편집장 시절에도 갈등하는 양쪽의 공통점을 잘 찾아내는 게 자신의 장점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는 미국 국내정치와 국제사회의 극심한 당파성과 분열에 맞서는 당신의 기본 원칙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늘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당신은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죠. 고별연설에서도 당신은 포용과 관용, 다양성의 존중을 역설했습니다.

다시 8년 전, 당신의 승리가 선포되던 날로 돌아 가보죠. 후배 기자들과 함께 맥주 집에 들러 당신의 승리를 축하하는 건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놓고 한국 사람들이 건배를 했을까요?

그 시절에 당신은 전 세계적인 슈퍼 스타였죠. 당신이 유럽을 방문했을 때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렸던 외신 화면이 기억납니다. 미국 국내적으로 흑백 갈등 해소에 기대가 컸다면, 국제적으로는 평화에 대한 갈망이 컸죠. 조지 부시가 일으킨 두 차례의 전쟁과 미국의 패권주의에 시달리던 세계 각 국은 혜성같이 나타난 미국의 흑인 대통령에게 엄청난 기대를 걸었던 겁니다.

● 오바마에 대한 기대와 실망

하지만 그 기대는 과도했음이 드러났죠. 미국은 대통령 혼자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었던 겁니다.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려는 당신의 시도는 공화당이 지배하는 의회에서 번번이 좌절됐습니다. 흑인 대통령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흑백 갈등도 여전합니다. 당신은 중동의 전쟁을 마무리하려 했지만 IS가 준동하면서 중동은 여전히 포화의 위협 아래 있습니다. 테러가 확대되고 난민이 급증하면서 열린사회의 민주주의도 위협받고 있습니다.

당신의 당선에 축배를 들었던 우리의 기대도 충족되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취임하면 한반도의 평화에 진전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했고 한반도의 갈등은 심화됐습니다. 이란 핵합의나 쿠바와의 국교재개를 이끌어 낸 것처럼 한반도에서도 그럴 수는 없었을까요?

한반도를 대하는 미국의 태도는 마치 우선순위를 뒤로 빼놓은 듯 경직돼 보였습니다. 북한에 대해서는 대화의 전제조건을 내걸고는 그냥 방치해버렸고, 한국에 대해서는 중국을 견제하는 한미일 동맹의 일원이라는 점만 강조해온 건 아닌지 의심하는 시각이 늘어났습니다. 최근의 사드 배치 논란도 한미 동맹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죠.
리퍼트 대사 이임 기자회견
● 측근 리퍼트 대사가 본 오바마

이런 시각을 의식했는지, 당신과 함께 퇴임을 앞둔 리퍼트 주한 미 대사는 미국이 북한을 방치했다는 시각은 사실과 다르다며,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지대한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강조하더군요. 그가 퇴임 직전까지도 한미 동맹을 위해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배울만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보좌관을 지낸 최측근에 어울리는 모습입니다.

리퍼트 대사는 취임 초기의 피습 사건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고별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보일 정도로 말입니다. 그는 한국의 각계각층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습니다. 그 덕분에 저도 예전에 한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가까이서 본 오바마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엄청나게 똑똑하면서도 노력하는 사람이다. 쉼 없이 공부한다. 읽을거리를 늘 지니고 다닌다. 대통령의 상원의원 시절 외교안보담당 보좌관을 지냈는데, 어느 날 새벽 2시에 자고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지금 전화 괜찮지?“ 라고 하면서 자기가 책(담대한 희망)을 쓰고 있는데 몇 가지 사실 관계를 확인해달라고 하더라. 그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모시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  퇴임 후도 기대되는 오바마

당신은 스캔들도 레임덕도 없는 대통령이라는 희귀한 사례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의 지지율은 퇴임 직전까지도 50%가 넘습니다. 세계 각국에서도 당신의 인기는 높습니다. 영국에서는 당신이 총리로 와줄 것을 청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죠? 그리고 당신의 나이는 이제 56세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고별 연설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당신이 펼칠 새로운 미래가 기대됩니다. 퇴임 후 더욱 존경받는 카터 전 대통령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세상을 위해 계속 일해 주십시오.
트럼프-오바마 첫 회동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당신의 후임자입니다. 대통령 한사람이 나라를 끌어올리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나라를 망치는 것은 그보다 훨씬 쉽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고별 연설에 미래에 대한 걱정이 배어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4년 더’라는 외침을 뒤로하고 떠나는 당신의 뒷모습은 못 다한 말이 많아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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