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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도핑 검사,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이유

[취재파일] 도핑 검사,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이유
2015년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이름의 영화가 상영됐습니다. 1년 넘게 국제 스포츠계를 강타하고 있는 도핑 스캔들을 생각하면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이 떠오릅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의 도핑 검사는 결과적으로 틀렸고 지금은 맞게 됐기 때문입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역도 여자 48㎏급에 출전한 우리나라의 임정화 선수는 4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7월 같은 체급 은메달리스트였던 터키의 시벨 오즈칸의 샘플에서 금지약물이 검출돼 메달이 박탈됐습니다. 임정화는 3위로 승격돼 동메달을 거머쥐게 됐습니다.
역도 임정화 선수
이로부터 6개월이 흐른 지난 13일 임정화에게 또 하나의 큰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당시 금메달리스트였던 중국의 천셰샤마저 도핑 양성 반응으로 메달을 박탈한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원래 4위였던 임정화는 은메달리스트까지 승격될 전망이고 당시 3위였던 타이완의 전웨이링이 천운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됐습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임정화는 타이완의 전웨이링과 함께 똑같은 196㎏을 들었지만 몸무게가 47.62㎏으로 47.11㎏이었던 전웨이링보다 무거웠습니다. 결국 510g 차이가 금메달과 은메달을 가리게 된 것입니다. 지금부터 8년 5개월 전에 임정화와 전웨이링은 아마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역도 남자 94㎏급에서 우리나라의 김민재 선수는 8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금, 은, 동메달을 딴 일리야 일린(카자흐스탄), 알렉산드르 이바노프(러시아), 아나톨리 시리쿠(몰도바)의 샘플에서 모두 금지약물 성분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4위, 6위, 7위, 11위도 도핑 테스트 양성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들을 제외하면 당시 5위에 오른 모하메드 푸어(이란)의 기록이 가장 좋고 그 다음이 합계 395㎏을 기록한 김민재였습니다. 따라서 김민재는 8위에서 2위, 즉 은메달리스트로 승격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럼 여기서 이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2008년은 물론이고 2012년에도 잡아내지 못한 도핑을 이제 와서 적발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때도 분명히 도핑 검사는 엄격히 실시됐습니다. 그런데도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들은 버젓이 시상대에서 활짝 웃으며 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권오승 도핑콘트롤센터장
이 의문을 풀기 위해 한국에서 도핑검사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IST)의 권오승 도핑콘트롤센터장에게 물어봤습니다. 권오승 센터장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당시 육상 남자 100m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캐나다의 벤 존슨 시료에서 단백동화제인 스테로이드 복용을 적발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권오승 센터장의 설명에는 매우 까다로운 과학 전문용어가 많은데 쉽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도핑 검사는 질량분석기(Mass Spectrograph)를 통해 이뤄진다. 질량 분석기란 전하를 가진 가속된 이온이 전기장이나 자기장을 지나면서 휘는 성질을 이용하여 질량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장치이다. 이온은 전하를 띠고 있으므로 전기장이나 자기장 속을 지날 때 진행 방향이 바뀐다. 같은 전하를 가진 이온은 질량이 클수록 경로가 적게 휠 것이다. 질량분석기는 이 성질을 이용하여 입자를 질량에 따라 분리하여 ‘질량 스펙트럼’을 만든다. 이전에는 이 ‘질량 스펙트럼’을 분석해 도핑 여부를 가려냈는데 지금은 질량 스펙트럼 결과를 놓고 다시 질량 분석을 한다. 이렇게 하면 다른 물질(성분)에 가려 미처 발견하지 못한 금지약물 성분을 특이적으로 검출할 확률이 더 커진다. 쉽게 말해 금지약물을 정확히 꼭 집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이다.

또 첨단 측정 장비도 도핑 검사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도핑 물질의 분자량을 소수점 2자리까지만 측정했다면, 지금은 4자리까지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이전에는 금지약물의 농도가 미량이어서 분석되지 않았던 것도 이제는 분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복용 후 극미량 농도로 장기간에 걸쳐서 몸안에 오랫동안 존재하는 약물대사체를 검출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첨단 측정 장비의 가격이 하락한 것도 한 요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가격이 비싸고 부피도 매우 커 실용화되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3-4억 원 대로 가격이 크게 떨어졌고 소형화돼 도핑 검사에 보편적으로 쓰일 수 있게 되었다.“  
KIST 도핑콘트롤센터
권오승 센터장이 이끄는 KIST 도핑콘트롤센터의 분석 요원은 현재 약 30명입니다. IOC는 평창 올림픽까지 총 4∼ 5차례의 방문 평가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토대로 도핑 검사기관 공인 여부를 오는 11월 쯤 최종 확정할 계획인데, 이변이 없는 한 KIST가 1년 앞으로 다가온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도핑 검사 전담 기관이 될 전망입니다.
KIST 도핑콘트롤센터
권오승 센터장에 따르면 “일반적인 도핑 테스트는 14일 이내 (10 근무일)에 결과를 통보하면 되는데 평창 올림픽 때는 하루에 시료를 150 ∼300개를 분석해 24시간 이내에 도핑 여부를 가려야 하기 때문에 장비 뿐만 아니라 최고 수준의 기술과 풍부한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의 샘플(시료)는 10년 간 보관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메달의 유혹에 넘어간 선수가 금지약물을 복용해 당장은 운 좋게 넘어간다 해도 지금보다 과학 기술이 훨씬 발전될 10년 뒤에는 반드시 꼬리를 잡힌다는 것입니다. 일반인에게는 소급 입법이 금지돼 있고 ‘일사부재리’ 원칙이 적용되지만 스포츠에서 금지약물에 빠진 선수에게는 이런 원칙들이 전혀 해당되지 않습니다. 도핑은 모든 것을 잃는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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