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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시'로 부활하는 아이들…그 한 명 한 명에게 꿈이 있었다네

- 오는 3주기 4월 16일까지 금요일마다 열리는 기억시 낭송문화제 <금요일엔 함께하렴>
- 지난 1월 13일부터 단원고 희생자를 위한 기억시 전시 시작
- 416 기억저장소장 "한 명 한 명에게 이름과 꿈이 있었단 점 알았으면"
- 故 전찬호 군 어머니 "시를 통해 아이 기억해줘 감사"
- 작가 강물 "기억은 곧 부활…진실 찾기의 시작"


안산 단원구 인현중앙길 38번지 한 골목길 낮은 상가 앞. 어두운 골목 길,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니 조용히 빛나는 작은 간판이 보였다. 제법 두꺼운 눈이 내리고 꽤 찬 바람이 불던 지난주 금요일 저녁, 안산에 있는 '416기억전시관'을 찾았다.

조용한 공기를 뚫고 한 걸음씩 조심 조심 들어선 기억전시관. 천장엔 별이 된 희생자들처럼 노란 조명 304개가 따뜻하게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304개의 조명엔 희생자 이름이 적힌 별모양 스티커와 함께 사진과 안경 같은 생전 소지품이 담겼다. 이 조명은 '기억함'으로 불렸다.
단원고 인근에 위치한 416 기억전시관
304개의 조명에 희생자들의 생전 소지품이 담긴 '기억함'
304개의 조명에 희생자들의 생전 소지품이 담긴 '기억함'
● 기억시 낭송문화제 '금요일엔 함께하렴'

지난해 9월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열린 '기억시 낭송문화제 <금요일엔 함께하렴>'은 지난주 금요일에도 어김없이 열렸다. 4.16가족협의회와 기억저장소가 2016 세월호 참사 기억프로젝트로 시작하게 된 행사다.

이날부터는 전시관 벽에 희생된 학생들의 초상화와 함께 학생들을 위한 시가 함께 걸렸다. 1반부터 3반까지 학생들의 기억시가 걸려있었다. 추운 날씨에도 생각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시관을 찾았다. 기억시를 지은 작가들과 유족들, 그리고 일반 시민 7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그날은 단원고 2학년 7반 희생학생 9명을 위한 기억시가 낭송되는 날이었다. 수학여행을 떠난 7반 학생 33명과 이지혜 선생님 가운데 단 한 명의 학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목숨을 잃었다.
기억전시관 내부. 오는 4월 7일까지 희생된 단원고 1~10반 학생들의 기억시가 전시된다.
참석한 이들은 바닥에 앉아 시 낭송을 기다렸다. 작가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와 학생들을 위한 기억시를 읽었다. 그렇게 희생 학생 이수빈, 이정인, 이준우, 이진형, 전찬호, 정동수, 최현주, 허재강 학생을 위한 시가 한 수씩 낭송됐다.

낭송회에 참석한 이들은 지그시 눈을 감고 시를 들었다. 시를 낭송하고, 또 듣고 있는 그 시간, 별이 된 아이들은 이들 마음 속에 나타났다. 어떤 꿈을 가진 아이들이었을까, 조용히 상상했다.
시 낭송회에 참석한 사람들
희생된 학생의 어머니와 아버지, 혹은 친구가 직접 나와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7반 전찬호 군의 어머니 남궁미녀 씨는 호흡을 가다듬고 조현설 작가가 지어준 <한라봉 초콜릿>이라는 아들의 기억시를 찬찬히 읽어내렸다.
 

한라봉 초콜릿

                                           作. 조현설 '2학년 7반 전찬호 군을 위한 기억시'

못 사올지도 모른다며
미리 사놓고 떠난 여행 선물
"혹시라도 제가 돌아오기 전에
젖막내가 보고 싶으시면
이 초콜릿을 드세요"
사실은 아빠가 선물로 사주었던
제주산 한라봉초콜릿
능청스레 초콜릿을 선물로 두고 떠난 막내
아직도 엄마 아빠 곁에서 잠을 자는
다 큰 애기 찬호
어렸을 때 많이 다쳐
신장 하나를 잃어버리고도 씩씩하게 자랐는데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
아는 형에게 두 번이나 패딩 점퍼를 빼앗기고도
말이 없던 순한 막내였는데
이번 여행을 마치면
다른 찬호가 되겠다고 손가락을 걸기도 했는데
아직 여행 중인 젖막내 찬호
긴 여행에서 먼저 돌아와
너를 기다리고 있는 한라봉초콜릿
故 전찬호 군을 위한 기억시를 낭송하는 어머니
시를 읽고 자리에 돌아간 전찬호 군 어머니는 한참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눈물을 참기 어려워보였다. 낭송회가 끝나고 다가가 낭송하는 동안 마음이 어땠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찬호 군 어머니 "아직 아이가 사준 초콜릿도 못 먹고 있어요. 아이가 올 것 같아서요.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그래도 여기 오신 분들이 '이런 아이도 있었구나'하고 기억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던 거 같아요. 오셔서 아이를 기억해준 게 정말 고마웠어요."

함께 시를 읽으며 아이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돼보였다.


● "기억하는 것은 곧 희생자들의 부활…진실 찾기의 시작"

시와 소설을 쓰는 교사들의 문학단체 '교육문예창작회' 회원들은 지난해 9월부터 학생들을 위한 기억시를 쓰고 낭송해왔다. 작가 30여 명은 1반부터 10반까지 희생된 학생들을 위한 기억시를 썼다. 작가들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것이 출발'이라는 마음에서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작가 강물 "힘들었죠. 쓰기도 전에 펑펑 울었어요. 저는 2학년 10반 장혜원 학생의 시를 썼는데 어떤 학생인지 전혀 몰랐어요. 시를 쓰기 위해 전달된 자료들 읽어가면서 어떤 학생이었는지 공부했지요. '안부'라는 제목의 시였는데, 아이가 먼저 어머니와 아버지, 언니, 친구, 후배들에게 세상에 대한 안부를 묻고, 우리가 그 아이의 안부를 묻는 내용의 시에요."

작가는 기억하는 것은 곧 부활이자, 진실 찾기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작가 강물 "저는 기억은 부활이라고 생각해요. 혜원이에 대한 시를 쓰는 과정에서 혜원이를 떠올리고 낭송하고 듣고 읽는 사람들이 혜원이를 떠올림으로써 혜원이는 우리 안에서 부활하고 함께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이 아이들이 바다 속에 갇히게 된 진실을 꼭 밝히는 건 이 아이들을 잊지않고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잖아요. 출발이 기억이라고 생각해요. 이 작업이 그것의 한 가닥이에요."
시 낭송하는 작가 강 물
●"희생자 한 명 한 명에게 꿈이 있었음을 기억해줬으면"

2학년 3반 김도언 학생의 어머니이기도 한 기억저장소 이지성 소장은 참사 희생자들 한 명 한 명에게 꿈이 있었다며, 그걸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낭송을 기획하게 됐다고 한다.
 
"단원고 학생 250여 명이라고들 하는데 한명 한명 소중한 이름, 생일, 꿈이 있잖아요. 그 한 명 한 명의 꿈을 알리고 기억하길 바랐어요."

소장은 기억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가 가슴 아픈 일이다 보니 잊고자 하는 분들이 계시죠. 시간 지나면 기억이 흐릿해지고 망각하게 되고요. 힘들지만 기억을 상기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각하고 행동해야 진실이 밝혀지잖아요. 그러려면 그날의 분노와 슬픔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억하는 건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인 거죠."


매주 금요일 저녁 7시면 단원고 희생자 261명을 기억하는 시가 낭송될 것이다. 4월 7일까지 기억시가 전시되고, 3주기인 4월 16일을 앞둔 오는 4월 14일까지 기억시 낭송회는 계속 된다. '금요일엔 함께하렴'이란 부제처럼, 매주 금요일이면 누구든 가서 시를 들을 수 있다.

이렇게 곳곳에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그날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래도 아직 세월호 진실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건, 희망의 불을 꺼트리지 않으려는 이런 마음들이 이어져왔기 때문 아닐까.

아래 몇 가지 시를 옮겨적었다. 기자도 한 소절 한 소절 아이들의 삶을 떠올려보며 읽어봤다. 소절마다 작가들 꾹꾹 담아낸 아이들의 삶이 눈에 선했다.


오빠 생각
                                作. 조현설 '2학년 7반 정동수 군을 위한 기억시'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산에서 우는데

일 나가는 엄마 대신
간식을 챙겨주고
학원시간도 챙겨주던 동수 오빠

언젠가 라면 국물을 엎어
내 발등을 데게 한 죄로
내가 종처럼 마구 부렸던 오빠
떼를 써도 화를 내지 않던 동수 오빠
덩치가 남산만한 사내가
순하기는 소 같았던 오빠

꼭 한 번 나한테 화낸 일이 기억나
축제 행렬에 정신이 팔려
오빠의 손을 놓쳐버렸던 날
오랫동안 내 손을 놓지 않았던 그날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우는데

로봇공학자를 꿈꾸던 동수 오빠
오빠가 만들던 사나운 건담 파이터가 되어
다시 한 번
내 손을 잡아주면 안 될까?




밤톨이

                                          作. 신경섭  '2학년 7반 이수빈 군을 위한 기억시'

일찍 벌어진 밤톨이로 너는 세상에 나왔어
아빠의 팔에 있는 점을 물려받은 채로
세 살 때부터 글자와 숫자를 익히로 원리를 터득했어

잘 생겼죠, 키도 크고, 듬직하고, 축구 잘하고, 공부 잘하고...
반장으로서 리더 역할도 훌륭히 해내는 재주 많은 학생입니다
이지혜 선생님은 학기말 생활기록부 미리 써야하는
운명을 예감이라도 하신 걸까?
애초에 그런 예감은 없어
국민의 안전을 돌보지 않는 정부와 위정자가 있을 뿐이라고

이수빈 넌 밤톨이 짠돌이 수빈 밤짜수. 못하는 게 없는 부러운 친구
수빈이는 그런 반장이라서
어쩌면 담임선생님이랑 오래 남아
반 친구들의 안전을 확인했을거야



*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아름다운 재단에서 운영 기금을 지원 받았지만, 올해부터는 시민들의 후원금에 의지해 운영하고 있다. 후원금은 416기억전시관 운영과 세월호 참사 자료 수집하고 기억하는 데 사용된다. 기억저장소 후원 안내) 홈페이지 접속 http://fund.416memor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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