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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친박(親朴)의 사상(思想)

② 당청 관계를 통해 본 친박(親朴)의 민주주의

[취재파일] 친박(親朴)의 사상(思想)
- ① 사드를 통해 본 친박(親朴)의 안보관
- ② 당청 관계를 통해 본 친박(親朴)의 민주주의
- ③ 국정 교과서를 통해 본 친박(親朴)의 역사관
- ④ 대한민국 보수주의, 친박(親朴)의 보수주의

헌법 40조.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헌법 66조.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
헌법 101조.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삼권 분립. 대한민국 헌법 정신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도 이렇게 배웠습니다. 하지만, 법과 현실이 꼭 같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와 법원의 궤적은 견제와 감시의 역사가 아니라 회피와 부역의 역사였습니다.

회피와 부역의 역사 한복판에는 역시 친박이 있었습니다. 친박은 여당과 청와대, 이른바 ‘당청’은 ‘한 몸’이라는 말을 애용했습니다. ‘협력 관계’인 동시에 ‘동등한 관계’임을 부각하려는 수사였습니다. 그렇다면, 친박 정권 4년, 과연 여당과 청와대는 동등했을까요.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했을까요. 달리 말해, 친박은 헌법의 원칙을, 민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충실히 따랐을까요. 이번 주제는 친박의 민주주의입니다.

● 악수도 하지 않았던 정진석과 현기환

지난해 5월 18일. 광주 5.18 민주화 운동 행사 참석차 정진석 당시 원내대표는 새벽 6시 37분에 출발하는 광주 송정행 KTX 산천에 탔습니다. 좌석 번호는 1A였습니다. 새벽부터 정진석 의원의 전화는 빗발쳤습니다. 유난히 목소리가 큰 정진석 의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정진석 : 아, 네, 의원님. 현기환이가 잘못한 거죠. 밑에 있는 초, 재선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네, 네, 제가 중심을 잘 잡아야죠. 걱정 마세요.

당시 청와대 현기환 정무수석에 대한 불만이 매우 커보였습니다. 새벽 6시 53분. 기차는 광명역에 섰습니다. 현기환 정무수석이 탔습니다. 현기환 수석도 같은 행사 참석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자리는 2A. 정진석 원내대표 바로 뒷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현기환 수석은 자리 번호만 보고 앉았고, 정진석 원내대표는 눈길을 피하며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5월 취재정보 재구성)

둘의 관계가 이 지경이 됐던 건, 당시 정진석 원내대표가 강성 비박계이자 개혁 성향이 짙었던 3선의 김용태 의원을 혁신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면서 부터입니다. 새누리당이 4.13 총선에 참패한 이후, 혁신의 목소리가 거세지자 정진석 원내대표가 내놓은 카드였습니다.

정진석 의원은 왜 ‘김용태 카드’를 내놨을까. 사실 정진석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는 데는 친박의 지원이 있었습니다. 특히, 19대 국회에서 원내에 없었던 정진석 의원이 비박 후보로 나선 나경원 의원과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친박의 도움이 절실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여기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청와대의 간섭으로 인사권조차 제대로 행사하기 어려웠습니다. 원내대표 선거 전부터 ‘원내대표는 청와대에 복종해야 한다’는 암시가 있었습니다. 정진석 의원은 직접적인 압력도 받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청와대의 뜻을 대변하고 있는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의 전화였습니다.

정진석 의원은 친박계 A 모 의원과 선거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A 모 의원은 원내수석부대표를 요구했지만, 정진석 의원은 “옆 지역구인데 어떻게 하느냐, 충청 지역에서 원내대표와 수석부대표를 모두 하면, 말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습니다. 그 때, 갑자기 친박계 핵심 의원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친박계 핵심 의원 : A가 옆에 있죠?

정진석 : 네, 같이 선거 대책을 논의하고 있어요.

친박계 핵심 의원 : A를 원내수석 시켜주시죠. 그만한 친구가 없어요.

정진석 : 아, 네. 알겠고요, 일단 좀 보시죠.

이후 정진석 의원은 당사자가 바로 옆에 있는데 인사 청탁을 직접 넣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7월 정진석 오찬 재구성)
새누리당 정진석
● 청와대의 인사 개입…‘정진석의 반란’

김용태 의원은 그간 친박을 거침없이 공격했고, 이 때문에 친박은 김용태 의원을 눈엣가시로 여겼습니다. 특히, 4.13 총선을 앞둔 공천 파동에서, 친박이 노골적으로 공천에 개입했다고 주장해왔던 김용태 의원을 친박이 달갑게 볼 리 없었습니다. 정진석 의원이 김용태 비대위원장을 내정한 것은 청와대에 대한 반기로 읽혔습니다. 하지만, 정진석 의원은 김용태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당 대표 역할을 하는 비대위원장직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정진석 : 용태가 해줘야겠어. 비대위원장.

김용태 :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정진석 : 진심이야. 외부위원들 몇 명 접촉해 봤는데, 이런 당에 와서 뭘 할 수 있겠냐고 해. 주변에 물어보니 혁신은 너랑 걸맞다고 하네.

김용태 : 친박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청와대는 또 어떻게 하실 거고요?

정진석 : 나도 지금 청와대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어. 현기환이 나한테 전화해서는 당내 수석부대표를 친박 A를 시키래. 날 감시하겠다는 거야. 내가 같은 충청도라 지역 안배를 고려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니까, 현기환이 “이게 당신의 숙명이다”라고 하는 거야. 청와대가 수석까지 임명하나? 원내대표가 수석도 임명 못해?

김용태 : (한참 설득이 지난 뒤) 전권을 주셔야 할 겁니다. 혁신을 하려면 4.13 총선 공천 파동부터 짚어야 해요. 책임져야 할 사람부터 책임 물어야 합니다. 제가 비대위원장 되면 낙천자들 다 모아놓고 낙선자 대회를 열겁니다. 인적 쇄신 시작입니다.

정진석 : 알았어. 같이 해보자. 네가 원하는 방향대로 생각해보자.
(5월 14일 정진석-김용태 통화 재구성)

하지만, ‘정진석의 반란’은 얼마가지 못했습니다. 비대위원장 선임을 위해서는 전국 대표자 기구인 ‘전국 상임위원회’에서 재적 과반의 추인을 받아야 하는데, 친박은 군사 작전 같은 ‘회의 보이콧’으로 회의 자체를 무산시켜버렸습니다. 재적 과반을 채우지 못한 겁니다. 당시, 상임 전국위를 무력화시키는 모습이 취재 기자의 눈에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친박계 A의원은 의원 회관 책상 위에 상임전국위 명단을 올려놓고는 동그라미와 엑스 표시를 하며 연락을 돌렸습니다.

친박계 A의원 : 형, 오늘 안 오지? 나 형 좋아하는 거 알지? 그 형이랑 친한 OOO 의원도 올 필요 없다고 전해줘. 누가 다수인지 확실히 보여주자고. 응, 그래. 형 고마워!
(2016년 5월 취재정보 내용 재구성)

정진석 의원은 이 날을 치욕의 날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광주로 가는 KTX 열차 안에서 현기환 수석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건, 이에 대한 불쾌감의 표시였습니다. 전국 상임위원회 무산은 청와대의 실력 행사 때문이었고, 그 중심에 현기환 정무수석이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정 의원은 이후에도 청와대의 인사 개입은 계속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청와대가 새누리당 몫 상임위원장과 상임위 간사 명단까지 적어 내려 보냈다는 겁니다. 정 의원은 최순실 사태가 터진 직후 열린 비공개 의원 총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폭로했습니다.

정진석 : 청와대는 원 구성까지 개입했습니다. 의원들의 투표로 상임위원장을 선출하고, 원내 지도부의 협의로 간사를 정하는 게 원칙이지만, 청와대 현기환 정무수석은 위원장과 간사 명단을 정해 내려 보냈습니다. 저는 이 명단을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현기환 수석과 척을 졌습니다.
(지난해 11월 4일 비공개 의원총회)

● “박근혜 레이저가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정진석 의원은 원내대표 재임 시절 청와대를 위시한 친박과 비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어쩔 때는 친박 편을 들었고, 또 어쩔 때는 비박 편을 들며 균형을 맞췄습니다. 한 당직자는 남인과 서인을 차례대로 숙청하며 왕권을 유지했던 조선의 19대 왕 숙종의 ‘환국 정치’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힘의 배분에는 성공했지만, 근본적 개혁에는 실패했다는 엇갈린 평가가 나왔습니다.

정진석 의원의 균형 전략은, 청와대와 맞섰다가 원내대표 자리를 내줬던 유승민 의원에 대한 학습 효과가 컸을 지도 모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과 척을 지면 자리 보존을 할 수 없다는 선례가 이미 있었습니다.

2015년 초, 유승민 의원은 자기 목소리를 비교적 강하게 냈습니다. 사드 배치 문제를 비롯해, 박근혜 정부의 기조인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습니다. 청와대와 친박은 유승민 몰아내기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중립 성향 의원들까지도 너무하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중립 성향 B의원 : 대통령이 너무 하시는 것 같아. 그래도 의원들이 뽑은 원내대표인데, 참. 아쉽네.

기자 : 근데 왜 가만히 계세요? 대통령이 그렇게 무서워요?

중립 성향 B의원 : 그게 말이야. 박근혜 레이저가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그래. 이런 사례가 있어. 김종인 전 대표가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캠프 공동 선대위원장이었을 때야. 이 양반 보통이 아니잖아. 그런데 박근혜 당시 후보가 김종인 위원장을 만나자고 했는데, 그 꼬장꼬장한 양반이 박근혜 후보를 기다리면서 넥타이를 만지고, 머리도 만지고, 그러는 거야. 거울 보면서. 아마 본인도 기억 못하고 있을 거야. 그 깡 센 김종인도 박근혜 앞에서는 군기가 바짝 들었던 거지.
(2015년 7월 티타임)

누구도 함부로 기어오를 수 없던 의전의 여왕. 심기 건드렸다간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공포의 리더십. 친박은 대통령의 뜻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본격적인 유승민 쫓아내기에 돌입했습니다.

친박계 핵심 윤상현 의원은 ‘유승민 축출을 위한 의원총회’를 앞두고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걸 공개적으로 말하라는 압박이었습니다.

윤상현 : 의원님, 여당 원내대표라는 사람이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의원총회 때 공개발언 하나 해주세요.

초선 C의원 : 뭐라고 하면 되나요?

윤상현 : 별거 없습니다. 청와대와 이렇게 각을 세워서 되겠느냐, 이렇게 가다간 총선 망한다, 그러면 되죠.

당시 한 친박계 의원은 윤상현 의원이 20명 정도 초선 의원들에게 연락을 돌렸다고 말했습니다.
(2015년 6월 취재정보 재구성)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 발언으로 유승민 의원의 원내대표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여당의 원내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입니다. 정치는 국민들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선거 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2015년 6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국무회의 모두 발언)

당시 국무회의에 배석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 : 나 그 때 정말 오줌 싸는 줄 알았어.

기자 : 그렇게 살벌했나요?

청와대 관계자 : TV로 봐서 몰랐죠? 현장에 있는데, 정말 엄청났다니까요?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말하는데, 정말 쩌렁쩌렁 울리는 그 목소리 하며, 그 눈빛 하며. 국무위원들이 쫄아서 다들 고개 숙이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까 D장관은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더라고요.
(2016년 11월 티타임)
유승민
● ‘유승민 왕따’에 나선 장관들

대통령의 살벌한 발언에 장관들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사람 바보 만드는 데는 왕따만큼 좋은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2015년 7월,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에서 사퇴하기 직전에 D장관이 유 의원을 찾았습니다. 부탁할 일이 있던 모양입니다. ‘배신의 정치’ 국무회의에서 손을 벌벌 떨었던 D장관이었습니다.

D장관 : 대표님, 지금 청와대에서 통과를 원하는 법이 산적해 있습니다. 꼭 이 법만큼은 통과를 부탁드립니다.

유승민 : 네, 알겠습니다. 노력해 볼게요. 일단 시간, 날짜 잡아서 당정 협의를 하시죠.

D장관 : 아, 당정 협의요? 그런데, 당정은 좀. 부담스러워서.
(2015년 7월 취재정보 재구성)

당정 협의는 여당과 정부가 정책의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여기서 정책의 큰 줄기가 잡힙니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입니다. 그런데, 물밑에서는 장관이 법안 처리를 부탁하면서도 공식적인 당정 협의는 또 못하겠다고 버텼습니다. 당시 유승민 의원의 측근은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유승민 측근 의원 : 이게 무슨 일이지? 뒤에서는 부탁하면서, 또 공식적인 회의 자리는 부담스럽다는 거야. 유승민이랑 정부가 만나서 협의하는 모습 보이지 말라는 거지. 혹시라도 대통령이 뉴스 볼까봐 두려운 거야. 유승민은 청와대가 인정한 원내대표가 아니니까. 장관들이 이렇게 알아서 기는 거야. 왕따를 시켜도 유분수지, 정말.
(2015년 7월 취재정보 재구성)

이뿐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7월 있었던 추가경정예산 당정 협의에서도 유승민 의원은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친박계 좌장 최경환 의원이었습니다. 여당의 원내대표와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만나 손을 맞잡아야 하는 자리였는데, 청와대의 뜻이 전달됐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당정은 예정대로 개최됐지만, 유승민 의원은 물론 측근으로 분류됐던 김세연, 김희국, 이종훈 의원도 모두 불참했습니다.

유승민 측근 의원 : 박근혜 정부와 유승민이 악수하는 그림을 못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 거지. 이렇게 대놓고 왕따를 시키네. 유승민 내쫓는 건 내쫓는 거고, 밉든 어떻든 추경 협의는 해야 할 것 아니야? 추경은 청와대가 하나? 야당이랑 협상하는 건 국회라고. 정책보다 중요한 게 대통령 눈치인 거야.
(2015년 7월 취재정보 재구성)

청와대의 유승민 찍어내기는 성공했습니다. 유승민 의원은 이듬해 총선에서 공천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했습니다. 정치권을 달궜던 새누리당 공천 파동의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청와대가 어떻게 공천에 개입했는지, 그 뒷얘기는 책 한권으로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청와대의 개입은 직설적이었고, 적나라했습니다. 기회가 될 때 그 과정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청와대
● 청와대의 상임위 ‘질문 지침’

2015년 5월 1일 국회 운영위원회. 당시 청와대 업무보고는 청와대가 박근혜 대통령의 건강에 대해 공개 브리핑을 한 게 논란이 됐습니다. 청와대는 남미 순방을 마치고 온 박근혜 대통령이 몸이 좋지 않음에도 외교 투혼을 펼쳤다는 걸 부각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국가 기밀인 대통령의 건강을 외부에 공표하는 건 부적절했다는 야당의 공격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청와대는 국회 운영위 여당 측 의원들에게 ‘질문 지침’을 내렸습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건강에 대해 브리핑하는 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란 내용이었습니다. 비박계였던 민현주 전 의원은 그 뜻을 거슬렀다가 호되게 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민현주 전 의원 : 대통령 건강 문제를 반복해서 브리핑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이 문제로 인해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2차사면 문제라든지 또 성완종 리스트 관련해서 집권 여당을 비롯한 청와대가 물타기 하는 것이 아니냐는 국민들의 불편한 오해를 사는 것은 저희 여당으로서는 굉장히 불편한 상황입니다.

이병기 비서실장 : 제가 그 발표 과정에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마는 모르기는 몰라도 순방의 피로가 겹치셔서 그다음 일정, 아마 제 생각에 그 도착하신 다음 날에 국무회의가 예정되어 있었고 그 후에도 여러 일정이 있는데 못 나가시게 될 경우에 대한 여러 가지 억측들이 또 많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정회 직후,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민현주 의원을 찾았습니다. 한참을 뚫어지게 민 의원을 쳐다보더니, “정말, 대~단~하~십~니~다.”라며 비꼬듯 말했습니다.
(2016년 7월 취재정보 재구성)

국회 상임위원회는 의원들이 양심을 걸고 현안을 질의하거나 국정을 감사하는 자리입니다. 현안에 대한 치열한 토론과 공방이 이뤄지는, 의회 정치의 중추 역할을 담당합니다. 국민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의원의 자질을 평가합니다. 하지만, 청와대가 질문까지 내려주고, 대답까지 각본 형태로 내려주고 있었던 겁니다. 명백한 의사진행 방해였고, 국회의원은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라는 헌법 위반이었습니다. 한 의원은 한창 논란이 됐던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정유라 비호 의혹’의 진실을 털어놨습니다.

새누리당 전 의원 : 청와대는 민감한 현안이 있으면 질문지를 내려줘. 지난번 정유라 관련해서 새누리당 교문위 몇몇 의원들이 비호했다는 의혹이 있었잖아. 그 때도 청와대가 다 질문지를 뿌린 거였어. 일종의 질의 지침인 거지. 국무위원들은 그에 대한 답을 준비해 오는 거고.

기자 : 어떤 경로로 하나요? 의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직접 내려주는 방식인가요?

새누리당 전 의원 :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상임위 간사한테 주면, 간사가 그걸 의원들에게 뿌리는 거야. 장관도 질문을 아니까 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할 수 있지. 주로 비례 대표들에게 그런 질문 지침이 내려와. 지역구 의원들은 자기 현안이 있으니까 어느 정도 자기 시간을 주는 데, 비례 대표는 지역 현안이 없으니까 시키기 편한 거야.
(2016년 11월 오찬 내용 재구성)
김무성
● 김무성의 굴욕…“내가 무대 한 방 먹였다!”

비박계 김무성 의원은 2014년 7월 전당대회에서 친박계 서청원 의원을 제치고 당 대표로 선출됐습니다. 하지만, 당 최고 의결기구인 최고위원회의는 서청원, 김태호, 이인제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힘은 김무성 의원보다 사실상 친박에 실렸습니다. 쉽게 말해 청와대는 당 대표는 내줬지만, 최고위원회를 가져왔습니다. 김무성 의원은 이런 권력구도 때문에 “당 대표 시절 수모를 겪었다”고 자주 말해왔습니다.

청와대가 어떻게 김무성 의원을 어떻게 배척했는지에 대한 보도는 차고 넘칩니다. 2014년 10월, 김무성 의원은 중국 상하이에서 개헌론을 이야기했다가 대통령이 거부감을 드러내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꼬리를 내렸습니다. 언론은 대통령과 비박 간의 첫 대결에서 대통령이 승리했다고 해석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공당의 대표가 개헌의 소신을 밝힌 것에 대해 대통령이 불쾌감을 드러낼 이유가 없었고, 김무성 의원도 항복할 필요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2015년 10년,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도입하려고 하다가 청와대와 친박이 ‘공천 쿠데타’라며 격한 반응을 쏟아내자 “여당 대표에 대한 모욕이다. 오늘까지만 참는다.”며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20대 총선 공천 파동까지 김무성 의원 개인 입장에서는 당 대표 시절 내내 권력 투쟁의 역사였을 겁니다. 굵직한 것 말고도 김무성 개인 입장에서는 꽤나 불쾌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첫 만남부터 그랬습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김무성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된 다음 날인 2014년 7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신임 지도부를 초청해 상견례를 합니다. 당시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 잘 모시겠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라는 보도가 나왔지만, 내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상견례 자리 배치가 이상했습니다. 테이블 왼쪽부터 김기춘 비서실장, 김무성 대표, 박근혜 대통령, 이완구 원내대표, 조윤선 정무수석이었고, 그 맞은편은 왼쪽부터 윤상현 사무총장, 김을동 최고위원, 김태호 최고위원, 이인제 최고의원, 주호영 정책위의장 순이었습니다. 즉, 상석인 대통령 맞은편 자리에 김태호 최고위원이 앉았고,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 보좌하는 자리나 다름없는 대통령 바로 오른쪽에 위치했던 겁니다.

김태호 : 아, 제 자리가 대통령님 바로 맞은편인가요? 제가 당대표가 된 기분인데요? 하하하하하.

김태호 최고위원이 이렇게 기뻐하고 있던 사이, 김무성 의원은 그냥 쓴 웃음만 짓고 있었습니다. 김무성 의원은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몸을 약간 왼쪽으로 돌려 몸을 낮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사진이 많이 찍혀 보도됐습니다. ‘몸을 낮춘 김무성’이 됐습니다.

이는 문고리 3인방 중에 한 명이었던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의 작품이란 말이 여의도까지 들렸습니다. 주변 취재를 해보니, 안봉근 비서관은 주변 사람들한테 “내가 자리 배치로 무대(김무성의 별명) 한 방 먹였다!”며 낄낄 웃었다는 소문까지 났습니다.

이런 일은 계속 생겼습니다. 그해 말 당 지도부와 대통령 면담에도 김무성 의원은 대통령 맞은편에 앉지 못했습니다. 또 대통령의 바로 오른쪽 자리였습니다. 역시 뒷말이 무성했습니다.
(2015년 3월 취재정보 재구성)

● 결국, 친박의 사상은 무엇인가.

“원내대표의 권한. 첫째, 의원총회 및 원내대책위원회의 주재. 둘째, 소속 국회의원의 상임위원회 등에 대한 배정. 셋째, 원내수석부대표 및 원내부대표의 추천과 임명, 정책위원회 부의장과 정책조정위원장 및 부위원장, 위원의 임명. 넷째, 기타 국회운영에 필요한 사항의 처리. 다만, 권한행사시에는 정책위원회 의장의 의견을 들어 배정한다.”
(새누리당 당헌 93조)


친박은 자신들의 당헌조차 위배했습니다. 원내 인사권을 장악하려 했고, 원하지 않는 인사가 오면 노골적인 방식으로 압박하며 실력 행사를 했습니다. 민주주의의 밑바탕이 되는 절차 정의는 퇴색됐습니다.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헌법 46조)

청와대와 친박은 개별 의원들과 국무위원들이 질의응답조차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만들었습니다. 헌법 정신은 훼손됐습니다. 청와대와 친박은 이렇게 당을 장악했습니다. 당 대표가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정치적 입장을 무참히 짓밟기도 했습니다. 청와대와 친박은 이렇게 당을 장악했습니다. 이에 대한 기회비용은 국민의 알 권리였고 민주주의였습니다.

최순실 사태가 나기 전 한 새누리당 당직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도 친노가 유지되는 건 적어도 철학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패권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결속력은 비단 ‘노무현’이란 인물로 묶여진 것만은 아니었다. 최소한의 철학이란 게 있었다. 하지만 친박은 철저히 ‘박근혜’란 인물 하나 때문에 결속돼 있다. 철학은 없다. 박근혜가 무너지면 친박은 무너지는 거다. 나는 이게 두렵다. 새누리당은 친박 당인데, 그러면 당이 무너져 버릴까봐서.”

정말 그랬습니다. 박근혜가 무너지니 친박이 무너졌고, 당이 무너져버렸습니다. 친박은 대통령에게 조금이라도 흠집이 나면 안됐습니다. 박근혜의 흠집은 친박의 존립을 흔드는 일이었습니다. 자연히 내부 비판은 용납할 수 없었고, 토론은 불가능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축출했습니다. 자신들이 만든 당헌 당규도, 심지어 헌법도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친박이 대한민국 정치사에 저지른 가장 큰 죄는 절차 정의와 민주주의라는 큰 가치를 박근혜와 동일시했다는 점일 겁니다.

결국, 친박의 사상은 박근혜 그 자체였습니다. 모든 길은 박근혜로 통했습니다. 이런 사상의 빈약함은 부메랑이 돼 자신들의 목을 죄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친박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분열과는 거리가 멀다며 자신했던 친박은, 역설적이게도 사상 초유 보수 정당의 분당 사태를 야기한 주인공들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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