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서울대학교의 한 교수가 대학원생들에게 8만 장에 달하는 논문과 책을 스캔시켰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PDF 파일로는 4천 개에 달합니다. 워낙 분량이 많아서 학생들은 이 일을 '팔만대장경 사업'이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갑질 논란이 불거졌는데 학교 측 대응은 부실합니다.
원종진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기자>
서울대 대학원에 다녔던 한 학생이 교육부에 제출한 고발장입니다.
교수의 부당한 지시로 대학원생 4명이 돌아가며 수만 장의 논문과 서적들을 스캔해야 했다는 내용입니다.
학생들이 1년에 걸쳐 스캔한 분량은 PDF 파일로만 4천여 개.
쪽수로는 무려 8만 장이 넘는 엄청난 양입니다.
[대학원생 A : 다른 교수들은 자기 교수 연구실에 있는 모든 책들을 대학원생들이 디지털화해서 가지고 있다며 자신의 개인 연구자료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다 스캔해달라고 했어요.]
각종 논문과 서적을 빌린 뒤 해당 페이지를 스캔하기 위해 학생들은 휴일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야 했다고 말합니다.
[대학원생 B : 대학원 생활은 퇴근 시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니까 밤에도 당연히 했고 주말에도 나온 학생들이 있었어요. ○○○은 사실 몸이 두 개라는 얘기도 돌았어요.]
이 학과 대학원생들은 이 일을 '대장경 사업'이라고 빗대서 불렀습니다.
[대학원생B : 계속 찍어내니까 학생들은 '대장경 사업'한다고 얘기했어요.]
한 학생은 교수의 과도한 업무 지시에 항의하다 결국 학교를 그만뒀고, 한국을 떠난 뒤에야 용기를 내 교육부에 고발장을 제출했습니다.
[서울대 대학원 총학생회 관계자 : 국가인권위에서도 사적 노동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생은 교수의 사적인 심부름을 하려고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서울대 인권센터는 교육부의 진상 조사 요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해당 교수를 음해하기 위한 고발일 수 있다며, 떳떳하면 직접 고발하라는 입장입니다.
취재에 나서자 해당 교수는 스캔 업무를 시킨 것은 맞지만, 학생들이 그렇게 느끼는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습니다.
(영상취재 : 김남성, 영상편집 : 박선수, VJ : 이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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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원종진 기자, 8만 장 스캔. 좀 더 느낌이 확 오게 설명해줄 수 있나요?
<기자>
제가 들고나온 게 2천 페이지짜리 법률 대사전인데요, 이 책 40권을 한장 한장 다 스캔할 정도의 노동력이 들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또, 복수의 학생들은 오래된 전문서적들도 많아서 품이 굉장히 많이 들었다고, (고서적 같은 것들은 찢어지면 안 되니까요.) 네, 그래야 했다고 복수의 학생들이 증언하는데요, 해당 교수는 "자세한 것은 인권 센터에서 이야기하겠다"고 취재진에게 밝혔지만, 복수의 학생들이 "저녁 늦게, 주말까지도 동원됐다"고 증언했습니다.
<앵커>
교수의 해명을 아까 리포트에서도 들어봤지만, 그렇게 납득이 잘 되진 않는 것 같아요.
<기자>
대학교수는 대학원생들의 논문 심사권, 또 유학 추천서를 써주는 등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해당 대학원생 여럿이 저희에게 증언하고 자료를 보여줬다는 것은 이들에겐 어찌 보면 마지막 절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해당 교수는 '부탁'이었다, 그리고 (논문) '공유' 차원이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과연 이렇게 막강한 권한을 누리는 교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는 학생이 과연 몇이나 될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단지 공유가 목적이었으면 논문 제목이나 책 제목을 알려주면 되지, 이 많은 양을 굳이 스캔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그런데, 학교 인권 센터 측이 교육부에서 조사하라고 했는데, 안 움직이고 있다는 거잖아요?
<기자>
인권센터의 대응도 취재해보니 조금 이상했는데요, 고발인이 자신의 실명과 연락처까지 교육부에 고발할 때 제공했고 교육부에서도 조사를 여러 차례 요청했는데, 아직 직권조사에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서울대 인권센터는 몇 년 전에 자체 조사를 통해 학내 교수들의 대학원생 노동력 착취 문제가 심각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었는데 그냥 발표만을 위한 조사를 한 건지 되묻고 싶습니다.
<앵커>
인권 센터가 자세히 조사를 해봤으면 좋겠네요. 잘 들었습니다.